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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간신 위충현과 유모 객씨 그리고 목공황제 - 2부. 명나라를 재기불능 파국으로 치닫게 한 주인공 3인방

by 사탐과탐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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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4대 암군 중 한 명인 목공황제라 불린 명희종이 흠모했던 유모 객씨. 그리고 중국 역사상 역대급의 간신배인 구천세라 불린 위충현에 대한 이야기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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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 이어서 위충현과 유모 객씨가 어떻게 명나라라는 큰 제국을 망하게했는지 계속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드디어 오랜 숙원이었던 동림당을 숙청하는데 성공한 위충현은 명실상부 독재자로 올라섰습니다.

그는 자신을 전설속의 성군인 요순임금에 견준다는 의미로 '요천순덕지성지신' 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했죠.

그리고 황제가 만세 소리를 들으니 자신에게는 "구천세" 라고 부르라 명했다고 합니다.

위충현이 황제처럼 수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행차할 때면 거리로 몰려나온 사대부들이 엎드려 절하기 바빴다고 하죠.

또한 자기를 모시는 생사당을 전국 곳곳에 세우고 백성들에게 참배하도록 했으며 절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였다고 합니다.

 

(중드 대명천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동창의 정보망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으며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의 사창가에서 어떤 사내가 무심코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즉각 동창에 체포당해 처형당했다고도 합니다.

이를 미루어보아 위충현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할 수 있죠.

황제 이상이었다고도 감히 말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유모 객씨 또한 명희종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위충현 못지 않는 권세를 누렸습니다.

객씨의 생일에는 명희종이 반드시 찾아갔다고 하며 여름에 더위를 무척 싫어했던 객씨를 위해 함안궁에 시원한 그늘집을 지어주고는 얼음을 계속해서 주었다고 하죠.

또한 객씨는 특별히 원하면 언제든지 궁 안밖을 오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궁중에서 매일 화장을 진하게 하고 가마를 타고 오갔으며 수행인원 또한 수백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죠.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거의 다 위충현과 객씨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당들이었죠.

그들은 조정에 들어가다가 멀리서 등불이 찬란하다 못해 은하수가 흐르는 것 같은 광경을 보면 객씨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죠.

그래서 모두 기다리고 있다가 객씨의 가마가 다가오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면서 부인 천세를 세번 외쳤다고 합니다.

또한 명희종이 보좌에 오를 때면 그 옆에 항상 객씨가 앉는 자리를 두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집안 노비들에게는 위충현처럼 "구천세세노태태"라고 부르게 했으며 매일 세번 문안인사를 올릴 때에는 "노태태천세, 천세, 천천세" 라고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고작 유모의 신분으로 그 어떤 황태후보다 막강한 권세를 누린 것이죠.

 

(중드 대명천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위충현과 유모 객씨가 나라를 제대로 말아먹고 있는 와중에도 명희종은 오로지 망치질하며 목공에만 몰두하거나 유모 객씨와 간통할 생각만했으니 참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황제였습니다.

 

당시 '천하의 권세를 가진 자는 첫째는 태감 위충현이요, 둘째는 객 내저요, 셋째가 황상이다'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였다고 하니까요.

이제는 더 가지고 누릴것도 없어진 위충현과 객씨 부부는 아에 자신들의 핏줄을 황위에 올리려는 모략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위충현의 조카인 위량경의 딸을 황후로 만들어 황태자를 낳게 만들려는 속셈이었죠.

 

당시 명희종의 황후인 장황후는 심계가 깊은 여인이었는데 위충현과 객씨가 조정을 유린하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죠.

 

당연히 위충현과 객씨 또한 호시탐탐 장황후를 제거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장황후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객씨 부부로써는 아직 조카 딸이 승은을 입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크나큰 봉변이었던 것이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객씨는 한가지 묘수를 부리게 됩니다.

 

(중드 대명천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미 조정의 궁녀는 모두 객씨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장황후의 등을 안마할 때 일부러 힘을 세게 해서 결국 유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장황후의 부친인 장국기가 양녀로 삼았던 딸에게 살인자라고 소문을 내어 명희종에게 이 소문을 믿게 했죠.

객씨는 이것을 장황후와 연루 시켜서 폐위시키려 했지만 명희종에게 다행히 부부의 정은 남아있었던 것인지 장황후가 잘못되는 것만은 막았습니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객씨 부부의 권세는 다행히 그리 길진 못했는데 명희종이 황위에 오른지 7년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세상을 뜨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죠.

 

명희종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객씨 부부는 어떻게든 권세를 이어나갈 생각으로 태아 상태인 황제의 아이를 황위에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장황후의 강렬한 반대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객씨 부부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미 명희종의 아들들을 죄다 제거했기 때문에 당시 황위 후계자로 명분이 있었던 이가 명희종의 동생인 신왕 주유검이었죠.

 

(중드 대명천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명석했던 장황후는 객씨 부부를 견제하면서 곧바로 주유검이 황위를 계승할 수있게 도왔습니다.

명희종은 죽기 직전에 철이 들었는지 주유검에게 "내 동생은 앞으로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형수를 잘 돌봐 주거라" 라고 유언을 남겼죠.

주유검은 새로 황위에 올랐다지만 여전히 객씨 부부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신하들부터 환관들까지 모조리 객씨 부부의 사람들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에 명희종과 같이 허수아비 황제인 척 했죠.

위충현의 조카 위량경에게 면사철권을 하사하고 위충현에게 달라붙은 신하들에게도 상을 주는 등 위충현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다행히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충신들이 위충현과 그 부하들을 탄핵하기 시작했고 결국 등쌀에 못이겨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주유검은 배려하는 척하며 위충현에게 본인의 고향인 봉양으로 내려가라고 명을 내립니다

위충현은 짐 싸는데만 3일이 걸렸고 이삿짐이 수례 40대 분량이나 나왔다고 하니 말 다했죠.

위충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훗날을 도모할 생각으로 자금성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중드 대명천하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주유검은 기다렸다는듯 위충현에게 체포령을 내렸고, 위충현은 쫓아오는 병사들과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못한채 자포자기한듯 목을 메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후에는 목이 베어져 효수되었고 시체는 그를 증오하던 사람들에게 수천 수만 조각으로 분해되는 '천참만륙'을 당했다 합니다.

재산 또한 전부 몰수되었으며 일족들도 모조리 처형되었죠.

 

유모 객씨도 곧바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그 동안의 비리와 악행들을 모두 자백했으며 그대로 몽둥이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어지럽힌 객씨 부부와 추종 세력들은 모두 정리되었지만 이미 명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막장지경까지 치달아 있었죠.

위충현이 죽은 지 불과 17년만에 청나라의 침공과 이자성의 난을 끝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위충현은 중국 역사상 무수한 간신배 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는데 유모 객씨와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간신배 하나로 제국이 순식간에 무너질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인물이었죠.

 

만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황제가 하라는 정치는 하지않고 평생 망치질과 유모에게 빠져 버린 목공황제 그리고 이 목공황제를 교묘히 이용하여 벼락출세한 위충현과 유모객씨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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