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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바토리 에르제베트. 젊음을 위해 처녀의 피를 갈망했던 전무후무한 연쇄살인마

by 사탐과탐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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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왕족 출신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노화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처녀들의 피를 원했다고 하는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바토리 남작 또는 바토리 부인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1560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명문가인 바토리 가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신한데다가 상당한 미인으로 알려졌으며 궁중의 예법을 배워 현모양처에 가까운 여인이었습니다.

1575년 에르제베트는 15세에 나더슈디 페렌츠 백작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주로 전쟁터에서 지휘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남편과의 부부 생활은 그다지 즐길 수 없었죠.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결혼 (영화  카운테스)

 

그러던 중 남편이 전쟁 중 전사하여 에르제베트는 44세에 체이테 성의 유일한 주인이 됩니다.

 

성주가 되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사사건건 간섭해대며 잔소리하던 시어머니 오르숄야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나이를 먹으며 피부가 점점 노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게 되었죠.

 

바토리 에르제베트 (영화  카운테스)

 

그러던 어느 날 시녀가 에르제베트의 머리를 빗기다 실수로 머리를 좀 심하게 잡아당기자 화가 나서 시녀의 뺨을 때린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는 계기가 됩니다.

반지 낀 손으로 시녀의 뺨을 때려서 반지에 긁혀 시녀의 피가 튀었습니다.

 

나중에 에르제베트는 피를 닦았는데 피가 묻었던 피부가 평소보다 좀 더 하얗게 보여서 이후 처녀의 피가 자신의 노화를 막고 젊음을 되찾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바토리 에르제베트 (영화  카운테스)

 

이렇게 첫 희생자는 머리를 잡아당겼던 시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간질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간질 증상이 일어난 에르제베트는 그녀를 부축하려는 하녀의 팔을 물어뜯어버렸고 하녀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그녀의 발작이 멈췄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에르제베트는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는 모습을 즐기게 되었죠.

 

먼저 시녀들을 살해한 에르제베트는 근처 농민들의 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성으로 데려온 뒤 피를 짜내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처녀들의 피를 짜내기 위해 여러 가지 잔인한 기계들을 이용했습니다.

 

수십 명의 처녀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는데 연회가 끝나면 그녀들을 모두 알몸으로 벗겨 차례차례 죽인 뒤 기계를 이용해 짜낸 피를 모두 욕조에 모아 옷을 벗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아직 죽지 않은 처녀들의 신음을 들으며 흥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영화  바토리)

 

또한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직접 팔이나 가슴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시고 그 고기를 먹었다고도 전합니다.

 

처음에는 여자들을 살해하고 남은 시체는 신부를 불러 정식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체가 점점 많아지고 죽은 사람의 숫자도 많아지다 보니 신부도 의심스러워서 장례를 거부하는 등 장례의식 마저도 여의치 않아지자 그냥 아무 데나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짓을 하다 보니 주변 마을에서 여자들이 씨가 말랐고 성으로 들어간 여자아이들이 하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두려워진 주민들이 딸을 성으로 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마차를 내보내 강제로 여자아이들을 납치했으며 그래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피를 얻을 수 없자 귀족의 딸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기 시작합니다.

 

귀족적 소양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 안에 귀족 여학교를 설립하고 한 번에 25명씩 입학생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평민들은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벌레보다는 좀 낫지만 아끼는 말보다는 좀 못한 존재였기 때문에 에르제베트가 마음껏 죽여도 별다른 후환이 없었지만 귀족의 딸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자 화를 초래하게 되었죠.

 

에르제베트의 손에 붙잡힌 희생자들 중 한 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부에 신고했고 그녀의 모든 행각이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뒤 군대가 투입되어 전원이 검거되었고 에르제베트의 성을 수색하던 귀족 지휘관과 군인들은 그 참혹한 행각에 모두 경악했다고 합니다.

 

에르제베트가 이처럼 죽인 여자의 수는 1,568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일기에는 1600년부터 1611년까지만 기록되어 있었으며 모두 612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쓰여있습니다.

 

그녀는 연쇄살인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본인은 귀족이라 출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범행에 적극 가담한 에르제베트의 집사 및 하녀들은 전원 목이 잘린 후 화형에 처해진 반면 그 시대 법률로는 귀족을 사형에 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무기징역에 처해졌는데 이는 사형의 대안이 될 만큼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넣어 주는 구멍 외에는 모든 것이 밀폐되고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탑 꼭대기의 독방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는 형벌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지내다가 결국 감금된 지 4년 만인 1614년 54세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무덤은 자신이 살았던 성 부근의 교회에 있었으나 어느 시점에서 고향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난 후 에르제베트의 죽음은 정적들이 바토리가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모함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종교개혁 이후로 바토리 가문은 대대로 칼뱅교를 믿었기 때문에 종교분쟁의 희생양 아니냐는 설도 있죠.

 

1985년에 헝가리의 역사학자 나기라즐로는 에르제베트가 연쇄살인마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첫째, 재판 기록에는 보통 구체적 죄명과 범행 내용이 정확히 명시되는데 에르제베트의 재판 문서에는 오직 마녀이기 때문에 종신 구금형을 선고했다고만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당시 조사관들은 에르제베트가 일기장에 살해 명단을 적었다고 밝혔지만 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르제베트의 시녀들은 범죄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재판 전 화형 당했는데 이는 모두 에르제베트의 결백을 증명할 증인을 없애려는 수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에르제베트의 사촌 오빠이자 당시 헝가리 국왕 마티아스가 에르제베트에게 전쟁 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분노하며 그녀의 재산을 몰수하려고 없는 죄를 꾸며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소 612명에서 최대 1,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 규모가 전쟁이 아니고서야 연쇄 살인으로는 전무후무한데 재판 기록에 없다면 은폐했거나 진실이 아니었던 것이겠죠.

 

어쨌든 그녀의 영지와 재산은 자녀들이 물려받았고 바토리 가문과 나더슈디 가문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헝가리의 귀족과 지배층으로 남았으며 헝가리의 상류층들에는 상당수 에르제베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실존 인물로써 피의 여왕이자 연쇄살인범, 악녀이자 악마를 숭배한 여자로 알려져 있지만 어쩌면 사실은 남편을 잃고 나라로부터 버림받아 마녀로 몰려 누명을 쓴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초상화

 

여러 영화에서도 그녀는 다양한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2008년 개봉한 영화 '바토리'에서는 그녀가 살인을 즐기던 미친 여자가 아니었고 재산을 노리던 황제와 정적들에 의해 마녀로 몰린 여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전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벌인 연쇄살인마 일까요?

아니면 마녀로 몰려서 죽임당한 불쌍한 귀족일까요?

지금까지 바토리 에르제베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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