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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사마염. 서진을 세운 인물이자 서진을 망하게한 원인이 된 인물

by 사탐과탐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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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세운 인물이자 서진을 망하게한 원인이 된 인물 사마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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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라가 세워지는 데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렇게 세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 되는 경우도 많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서진의 초대황제 사마염 또한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를 망조로 이끈 무책임한 군주였습니다 

 

삼국지의 유명한 책사 사마의의 손자이자 사마소의 장남으로 태어난 사마염은 중국 역대 통일왕조의 초대 군주 중에서 집안 덕을 가장 많이 본 인물이라 평가받고 있는데요 

 

이미 할아버지인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켜 사마씨 일가가 위나라의 최고 실세가 되었고 백부인 사마사와 아버지 사마소는 조 씨 황제들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죽이면서 진공, 진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할 정도의 권세를 누리던 상황이라 사마소가 늙어 죽은 시점에서 30세에 진왕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마염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조환을 내쫓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역대 중국 통일왕조의 창업군주 중 가장 제 힘을 안 들이고 천하를 거저먹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사마염도 천하 통일을 하기 전이었던 즉위 초반에는 태의령이었던 정거라는 사람이 바친 꿩의 머리 가죽을 이어 만든 호화스러운 모자 또는 가죽 옷인 치두구를 불태워버리고 다시는 이런 걸 바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을 정도로 청렴하고 유능한 이미지로 통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게 정말 그의 본심에서 나왔던 행동인지 아니면 당시 현명하고 덕이 있는 여성으로 이름 높았던 그의 어머니 문명황후 왕원희의 눈치를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태후였던 왕원희는 직접 베를 짜고 진수성찬을 멀리하며 몸소 검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니 아무리 황제라도 아들이 돼서 치두구 같은 사치품을 가까이하기에는 눈치 보일 만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진나라가 건국된 지 3년 만에 왕원희가 52세의 나이로 죽자 사마염은 '엄마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당시 서진의 인구가 1600만 명 정도로 짐작되는데 그중에서 무려 만 명이나 되는 처녀를 잡아와서는 몽땅 후궁으로 만들고 누구를 골라잡아 함께 뜨밤을 보낼지가 애매하니 양이 끄는 수레에 타고 양들에게 '니들 맘대로 가라'라고 한 뒤 양이 멈추는 곳을 골라잡아 그곳의 후궁들과 밤을 보낸 일화가 유명하죠

 

그래서 일부 후궁들은 자기 방 앞에 양이 좋아하는 소금물을 뿌리거나 잎사귀를 꽂아놔서 양들이 자기 방을 찾아오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즉위초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버렸던 치두구도 나중에는 여섯 벌이나 갖고 있을 정도로 사치를 부렸다고 합니다

 

사마염의 사치와 관련된 일화가 몇 있는데 그가 신하를 지방관에 임명할 때 후보 한 사람은 사치벽이 심한 당빈이라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양종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들을 두고 사마염은 '사치가 심하면 좋지만 술병은 평생 못 고친다'라며 사치벽이 심한 신하를 임명했다고 하죠

 

중국사 최악의 사치와 낭비로 악명 높은 석숭과 왕개가 전설의 돈ㅈㄹ 대결을 벌인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지만 사마염은 그들을 꾸짖기는커녕 허허 웃으면서 구경만 했다고 합니다

사마염이 저지른 많은 실수 중에서 서진이 망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는데 너무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던 만큼 아들 또한 많았던 사마염은 스물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이제 겨우 8살밖에 되지 않은 둘째 아들 사마충을 황태자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사마충은 원래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학문에 뜻이 없어 황제가 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죠

때문에 신하들은 계속해서 황제인 사마염에게 사마충이 다음 후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건의를 올렸고 결국 사마염은 사마충의 자질을 시험해 보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사마염은 우선 태자의 거처인 동궁의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그들을 태자와 떨어뜨려 놓은 뒤 태자 사마충에게는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를 편지로 보내 그가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라고 지시했죠

이에 태자비였던 가남풍은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 대리 답안지를 작성하게 만들었는데 황태자의 수행원이었던 장홍이 그 대리답안지를 보고는 답안지가 사마충의 수준과 맞지 않게 너무 뛰어난 것을 지적하며

"태자께선 학문이 깊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답안지에는 옛 사례를 인용해 가며 작성한 부분이 많으니 황제께서 이것을 보시면 바로 눈치를 채실 것입니다"라고 조언했죠

 

이에 가남풍은 장홍에게 지시를 내려서 사마충의 수준에 맞는 낮은 수준의 대리 답안지를 만들었고 사마염은 사마충의 대리답안지를 보고는 만족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인식으로 봤을 때 사마염은 자신의 아들이 똑똑하지 않다는 느낌은 받고 있었지만 사마충이 어느 정도로 멍청한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하죠

 

아버지로서도 한 나라의 황제로서도 실격인 셈인데 이런 사마염의 무책임한 태도 덕분에 사마충의 황태자 자리가 확정되면서 서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마염의 또 다른 실수는 바로 황태자비를 잘못 들인 것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사마충이 12살 되던 해에 그의 결혼 상대를 찾던 사마염에게 아내인 양황후가 가충의 딸인 가남풍을 태자비로 들일 것을 청했죠

사마염은 가남풍이 교만하고 질투심이 강하며 음험한 계략을 잘 꾸미는 성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재능 있는 대신인 위관의 딸을 태자비로 맞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되는 양황후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기어이 가남풍을 사마충의 결혼상대로 결정해 버립니다

 

그렇게 잘못된 며느리를 들인 덕분에 서진의 후계자는 백치 소리를 듣는 사마충으로 확정 돼버렸는데요

사마염이 죽고 사마충이 황제가 된 이후 가남풍은 온갖 문제를 일으킨 끝에 다른 황족과 제후들이 난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그 반란을 계기로 팔왕의 난이 일어나면서 서진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서진의 상황으로 볼 때 이런저런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냥 사마염 수준 정도는 되는 황제가 후대에 왕위에 올랐거나 가남풍 대신 위관의 딸이 사마충의 아내가 되었거나 해서 가남풍이 설치지 못하게 만들기만 했어도 팔왕의 난에 이어 영가의 난으로 이어지는 서진의 멸망은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죠

 

서진을 멸망으로 이끈 문제들 중 몇 가지는 충분히 사전에 예측 가능한 일이었던 데다가 그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이 사마염에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마염은 그렇게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그 문제들을 방관하면서 자신이 세운 나라가 멸망의 길을 걷도록 만든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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