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무적함대를 박살내고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왕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녀는 왜 지금까지도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걸까요?
그녀는 영화 주인공 뺨칠 정도로 엄청나게 굴곡진 삶을 살았었는데요
그래서 실제로 튜더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 그녀가 단골로 등장합니다
지금부터 영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장본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1533년 9월 7일,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탄생은 순탄치 않은 왕실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죠.
헨리 8세는 원래 첫 번째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여 딸 메리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남자 후계자를 원했었기 때문에 실망하게 되었고
자신의 아들을 낳아줄 다른 여인을 물색하던 중에 앤 불린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결국 로마 교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해 버렸죠.
이 과정에서 영국 교회가 로마 가톨릭에서 독립하는 상황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으로 태어난 엘리자베스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2살 때인 1536년, 어머니 앤 불린이 반역과 간통 혐의로 처형당해 버렸죠
이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졸지에 서자 취급을 받게 되는데요.
어린 나이에 그런 큰 상처를 겪은 엘리자베스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철의 여인으로 성장하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헨리 8세는 이후 여러 번의 결혼을 더 했습니다.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와의 사이에서 아들 에드워드를 얻었고,
마지막 여섯 번째 부인인 캐서린 파는 엘리자베스에게 좋은 계모가 되어주었죠
캐서린 파의 노력으로 엘리자베스는 다시 왕녀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1547년에 헨리 8세가 사망하고 고작 9살이었던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는데요.
에드워드는 열렬한 개신교였고, 영국의 종교 개혁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죠.
아버지 헨리 8세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오래 살았으면 아버지를 능가하는 왕이 되었을 거라는 평가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15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국왕이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왕위 계승권을 두고 엄청난 분란이 생기게 되었지만
결국 엘리자베스의 이복언니였던 메리가 다음 왕위 계승 순서에 따라 왕위에 올랐습니다.
에드워드와는 다르게 메리 1세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영국을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자 했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신교도들이 박해를 받았고, 메리는 '피의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그 시기에 엘리자베스 또한 상황이 매우 위험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개신교로 알려져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메리 1세에게는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그러다 1554년 '와이어트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엘리자베스는 이 반란과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아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메리 1세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결국 석방되어 하트필드 저택에서 조용히 은거 생활을 하게 되었죠
은거 생활 당시 엘리자베스는 꾸준히 정치적 지혜를 쌓으며 훗날을 기약하는데
이때 쌓았던 내공이 훗날 여왕이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1558년 11월 17일, 메리 1세가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자연스럽게 25세의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녀의 즉위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모두 그녀를 환영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즉위 직후부터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보여줬습니다
우선 추밀원 의원을 39명에서 19명으로 축소했고, 성직자 정치가를 줄이는 대신 실무 경험이 있는 인재들을 등용했죠
그래서 윌리엄 세실과 니콜라스 베이컨 같은 유능한 인물들이 그녀를 보좌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성장하면서 직접 목격했던 종교 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기 시작했는데요.
그녀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을 멀리했죠
1559년에는 '예배 통일법'을 제정하여 영국 전역에서 공통 기도서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죠
다만 여성이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기독교의 전통 때문에
'수장'이라는 명칭 대신 '최고 통치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이를 통해 그녀는 종교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었죠
그녀의 중도적인 종교 정책은 오늘날까지 영국 국교회의 특징으로 남아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가능한 한 전쟁을 피하면서 영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했죠.
그 덕분에 스페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프랑스와의 전쟁을 유리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통치 기간은 영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로 불리는데요
이 시기 동안 영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정말 엄청나게 큰 발전을 이루었죠.
특히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사건은 영국이 해상 강국으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불타는 함선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박살 내며 대승을 거두었죠.
이를 계기로 그동안 섬에만 틀어박혀 있던 영국이 유럽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또한 국가 공인 해적인 사략선을 이용해 스페인 선박을 약탈하는 것을 허가했습니다.
존 호킨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이들이 국가 공인 해적질을 하면서 막대한 재물을 긁어모았고
그 재물들은 고스란히 국고로 채워지면서 영국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죠
영국은 다른 유럽의 열강들보다 대항해시대에 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최대한 해외 무역과 탐험을 장려하여 영국이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는데요
하지만 그녀가 다져놓은 기틀로 인해 훗날 제국주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영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식민제국을 가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편 영국은 군사력과 경제력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어 냈는데요.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많은 문학인들과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배출하면서 '엘리자베스 시대'라 일컫는 영국 문화의 황금기를 열었죠.
그리고 연극은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자리 잡았으며 문학 외에도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가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면서 교육 분야도 크게 성장했죠
엘리자베스는 '처녀 여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구혼자들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코틀랜드,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구혼자들이 찾아왔는데요.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들 모두에게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외교 수단으로 일부러 결혼하지 않고 결혼 가능성을 이용했던 거죠.
스페인한테는 "적대시한다면 프랑스에 시집가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프랑스에는 그 반대로 말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는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연인과의 스캔들이 자자했습니다
특히 로버트 더들리 경과는 한때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더들리의 아내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결혼 계획은 무산되었죠
그렇게 정치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었던 엘리자베스의 통치 말년에는 여러 가지로 고난과 역경들이 겹치게 됩니다
공유지의 사유화로 인해 대량의 난민이 발생했고, 스페인과의 전쟁이나 아일랜드 반란 진압 등으로 군사비가 증가하면서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죠.
또한 독점 특허권을 남발하여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엘리자베스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는데요.
특히 의회에서 행한 '황금의 연설'은 너무나 유명하죠.
그녀는 이 연설에서 "국민의 사랑이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하다"고 말하며 단번에 의회의 지지를 얻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을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도 있었는데요
바로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가 눈에 가시였었죠
하늘이 도운 것인지 때마침 메리가 스코틀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메리는 결국 엘리자베스에 의해 19년간 유폐 당한채 살다가
1587년 반역 혐의로 처형당하고 말았죠
세월이 흘러 45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1603년 3월, 70세의 나이로 엘리자베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손으로 처형했던 메리의 아들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그가 제임스 1세로 영국의 왕위를 잇게 되었죠
사생아라는 논란부터 불안한 입지를 이겨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박살 내버린 진정한 걸크러쉬,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으며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까지 단번에 사로잡은 연설력 등
엘리자베스 1세는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나라 통치를 완벽하게 해내서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안정된 시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반드시 그 나라의 기틀을 닦아놓은 여러 국왕이 있기 마련인데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가 그 역할을 혼자서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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