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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이의방. 문신들과 의종의 개무시로 인해 모두를 도륙내고 나라를 뒤엎어버린 장본인

by 사탐과탐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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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하던 무신인 이의방은 어느날 문신들을 모두 도륙내고 의종까지 폐위시켜버리는데요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연 최초의 무신 집권자 이의방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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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중기에 무신들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던 시기와 그 무신들의 정권을 가리켜 무신정권이라고 부르죠 

오늘은 그 시기의 권력자들 중에서도 1170년 8월 일어났던 무신정변을 주도하면서 무신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시대를 활짝 열었던 이의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의방은 1121년 전라도 전주에서 대장군 이용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착세력이자 호족이었죠

고려의 18대 국왕인 의종 말에 군관직인 산원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근위대의 대장에 해당하는 견룡행수의 직위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견룡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호위하는 국왕의 친위부대였는데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런 근위부대일수록 오히려 정변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무신정변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무신과 문신 간의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국왕이었던 의종은 재위 초기에 문벌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무신들을 중용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재위 말기에 들어서는 거꾸로 무신들보다는 문벌귀족들과 환관을 우대하며 즉위 초반에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무신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무신들은 원래부터 자신들과 사이가 나빴던 문신들뿐만 아니라 군주인 의종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까지 점점 커져가고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 그때로부터 30년 전쯤인 1144년에 일어났습니다

섣달그믐에 모든 신하들이 모인 행사에서 내시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버린 것인데요

 

이에 정중부는 크게 화를 내며 김돈중을 두들겨패버리고 쌍욕을 퍼부었는데 문제는 김돈중의 아버지 김부식이 자기 아들이 무개념짓을 한건 생각도 안 하고 아들이 두들겨 맞은 것에만 화를 내면서 당시 국왕인 인종에게 정중부를 고문한 후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인종이 그걸 또 허락해버린 것이죠

아무리 문신이 무신보다 우대받던 시절이라고 해도 먼저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의 아들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고 그것이 통한 것입니다

 

이후 인종이 정중부를 은밀하게 도망다니도록 도와줘서 정중부가 실제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정중부는 김부식 일가에게 큰 원한을 품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훗날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죠

이후 인종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의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1170년 8월의 어느 날 현대의 태권도와 비슷한 국가적 무술인 수박의 시합을 벌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여기서 신참 문신인 한뢰가 종 3품의 연로한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려버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뺨을 맞은 이소응이 바닥에 나가떨어지며 뒹굴었는데도 의종과 문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손뼉을 치며 크게 비웃었다고 하죠

61세의 노장인 이소응은 당시 고려의 무신들에게 존경받는 원로였고 한뢰는 종 5품에 나이도 20대 후반밖에 되지 않는 풋내기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체육대회에서 20대 후반밖에 되지 않은 새파란 비서관이 환갑을 넘어선 3성 장군의 뺨을 때리자 대통령과 그 수행원들이 오히려 뺨을 맞은 중장을 비웃은 셈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장면을 본 무신들은 극도로 분노했는데 그중에서도 젊은 시절 김부식 부자에게 모욕을 당했던 정중부의 분노가 가장 컸죠

정중부는 즉시 한뢰에게 아무리 네가 문신이라지만 이소응은 종 3품 대장군인데 감히 네 따위가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고함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리에 있던 의종이 한뢰를 꾸짖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정중부에게 뭐 그런 일 가지고 화를 내냐며 한뢰를 두둔했다는 것인데요

 

의종의 그런 태도에 결국 그동안 참고 참았던 무신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무신들 중에서도 과격파였던 이의방과 이고는 즉시 순검의 병사들을 소집해 평소 의종의 놀이터였던 보현원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수박 대회에서 이소응을 비웃었던 임종식과 이복기가 참살당한 것을 시작으로 이소응의 뺨을 기세 좋게 때렸던 한뢰마저 죽여버린 무신들은 평소 원한이 있던 문신들을 찾아다니면서 학살을 반복했죠

 

정중부를 비롯한 고위직 무신들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던데 비해 이의방은 문신의 관을 쓴 놈들은 하급관리라 할지라도 모조리 죽여서 화근을 남기지 말라며 문신들을 철저히 찾아내 죽여버렸습니다

이에 의종은 이의방에게 응양군과 용호군의 직위를 동시에 주며 어떻게든 그를 달래 보려 했지만 이의방은 기어이 의종까지 폐위해 버린 후 그를 거제도에 유폐시켜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이의방은 의종의 동생인 명종을 다음 왕으로 추대한 후 스스로 대장군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장악하며 고려 역사상 최초의 무신 집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신정변에 반대하던 한순과 한공, 신대여 등의 무신들을 숙청했고 같이 정변을 일으켰던 이고가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거꾸로 이고를 제거해 버린 후 나머지 반대파까지 모두 없애버리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켰죠

 

그렇게 경쟁자들을 제거해버리고 기고만장해진 이의방은 당시 최고 권력기구였던 중방에 기생들을 데리고 와서 여러 장수들과 술을 마시며 떠들었는데 북치는 소리와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왕이 있는 대궐에까지 들려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173년 8월에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과 살아남은 일부 문신들이 폐위된 의종의 복위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키자 이의방은 토벌대를 보내 김보당의 난을 평정해버렸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두 달 후 아예 후환을 제거해버리겠다며 부하 장수인 이의민을 경주로 보내 유폐돼있던 의종을 시해해버리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저질러버리면서 그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됐습니다

이후에도 이의방은 자신에게 맞서는 정적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며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해나가고는 있었지만 이미 그때는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이 이의방의 계속되는 횡포를 보고 그를 제거해버리려는 마음을 굳힌 뒤였죠

 

그렇게 이의방이 1174년 12월에 선의문 밖에서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과 승려 종참에게 목숨을 잃게 되면서 이의방의 시대는 끝이 났지만 이후로도 고려는 1270년에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죽기 전까지 무려 100년의 시간 동안 무신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무신정권의 시대를 맞게 되죠

지금까지 이의방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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