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전국시대 진나라와 조나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명장 백기가 이끄는 진나라가 결국 승리를 거머쥐지만 문제는 엄청난 수의 포로가 생겨 버렸죠.
진나라 총사령관이던 백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기원전 265년. 진나라의 명장 백기는 한나라를 공략 중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한나라의 영토가 남북으로 쪼개지게 되었고 한나라의 상당이라는 지방이 진나라에 의해 고립되고 말았죠.
그러자 상당의 태수는 상당을 진나라에게 내주느니 차라리 조나라에 주겠다며 조나라에 항복을 해버렸습니다.
이에 힘겹게 싸워 거의 다 차지한 땅이었던 상당을 조나라에게 빼앗기게 된 진나라는 당연히 열받을 수밖에 없었죠.
진나라는 기원전 262년에 장수 왕흘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상당을 빼앗기 위해 출진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상당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모두 조나라로 도망을 가버렸고 진나라의 재상인 범수는 그들을 추격하라 명령했죠.
왕흘은 그들을 추격하다 장평이라는 지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기서 맞닥뜨린 적장은 바로 조나라의 명장 염파였죠.
몇 차례 칼을 주고받으며 간을 보던 염파는 정면승부로는 진나라 군사를 압도할 수 없겠다 싶어서 장평에 보루를 설치하고 방어진을 구축해 장기전 모드로 돌입합니다.
왕흘이 몇 번이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상대도 명장이었기에 도저히 뚫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보급에 문제가 생기고 사기가 꺾이던 진나라는 전쟁 패배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조나라 입장에서는 그대로 지키기만 하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습니다.
조나라 침공을 기획한 진나라 재상 범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는데 만약 전쟁에서 패하면 쓰리아웃이라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가지 책략을 쓰게 됩니다.
조나라에 첩자를 보내 방어만 하던 염파를 욕하며 전쟁을 질질 끄는 이유는 염파와 진나라가 몰래 내통 중이고 염파가 진나라로 투항하려 한다는 유언비어와 진나라가 진짜 무서워하는 적장은 조괄이라는 소문을 퍼트렸죠.
조나라의 효성왕은 내심 진나라군을 진작에 격파하고 물리치지 못하던 염파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효성왕은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러자 조나라의 대신이던 인상여는 조괄은 똑똑하지만 경험이 없으니 염파를 그대로 두라고 간언했고 조괄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은 책만 보며 공부만 했지 자질이 부족하다 나라에 해를 끼치는 일을 막아 달라며 효성왕의 명령을 반대했지만 효성왕은 흔들리지 않고 조괄을 장평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때 진나라도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모르게 총사령관을 왕흘에서 백기로 바꿔버렸죠.
진나라 재상 범수의 책략이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조괄은 장평으로 가는 중 25만 명의 병사를 더 모아서 출진했고 기존에 있던 병력 20만을 더해 조군은 총 45만 명이라는 대군이 되었습니다.
진군의 총사령관이 바뀐지 몰랐던 조괄은 왕흘 쯤이야 눈 감고도 이길 수 있다며 의기양양하게 진군을 휩쓸기 시작했는데 백기는 일부러 전투에 져주며 슬금슬금 조군을 유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치는 진군을 쫓아 점점 협곡 사이로 들어오게 된 조군은 결국 매복해있던 진군에 포위를 당하게 되고 포위망을 뚫으려다 조괄은 화살에 잔뜩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버렸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휘관을 잃은 40만 명의 조군은 포위당했으니 도망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왕좌왕하다 죽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진군에 항복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엄청난 수의 포로가 생겨버린 백기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냥 풀어주자니 다시 조나라의 병사가 되어 진나라군에 칼을 들이댈게 뻔하고 그렇다고 일단 잡아두자니 40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포로를 먹여살릴 식량도 없고 골 때리는 일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고심 끝에 백기가 내린 결론은 그냥 다 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백기는 40만 명의 포로들에게 엄청나게 큰 구덩이를 여러 개 파도록 시켰습니다.
포로들은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구덩이를 팠습니다.
백기는 구덩이를 다 판 포로들을 모두 참수하기 시작했는데 그 광경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고 머리가 떨어진 조나라 포로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굴러떨어져 집단으로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자비를 베푼답시고 15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살려서 조나라로 돌려보내 줬는데 그 수는 끽해야 250여 명 정도밖에 안되는 숫자였습니다.
이렇게 진나라와 조나라의 장평대전은 결국 대학살로 마무리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40만 명이나 되던 병사들을 학살했던 백기에 대한 조나라 백성들의 원한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 산서 지방에 있는 '츠바이치 또는 바이치로우' 라는 두부요리는 '백기를 먹는다 또는 백기 고기' 라는 뜻의 요리인데요.
이런 이름의 요리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이곳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장평대전으로 인해 허무하게 죽은 조상들의 복수를 하고 있죠.
장평대전에서 대승한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지만 40만 명의 장정들을 잃은 조나라는 결국 30년 후 나라가 멸망하고 마는 뼈아픈 전쟁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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