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대약진운동의 대실패로 잠시 권력을 내려놓게 되었지만 다시 공산당을 장악하기 위해 술수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어린 청소년들을 선동하여 자신을 신격화하는 동시에 반대되는 세력들을 탄압하게 한 것이죠.
홍위병이라 불린 이 어린 청소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없는 만행들을 저지르고 마는데요..
1960년대 모택동은 중국을 중공업화해 영국과 미국을 추월하겠다며 대약진운동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능력 없는 사람들이 지휘를 하다 보니 대약진운동은 수천만명의 아사자만 남기고 대폭망으로 끝나게 되었죠.
모택동은 처음엔 이 대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에는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잡은 권력인데 놓칠 순 없었던 모택동은 중국 전체를 뒤흔들어 다시 권력을 잡을 계획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 중국에선 대약진운동 실패로 공산당의 문제점과 관료제의 폐해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고 젊은 세대들도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죠.
그러자 젊은이들은 공산당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모택동이 싸놓은 거대한 똥을 수습 중이던 유소기와 등소평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반정부적 시위를 공산당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군대와 경찰들을 투입시켜 마구잡이로 때려잡았습니다.
이에 모택동은 이 사태를 기회로 삼아
부르주아와 자본주의 세력들이 다시 사회로 침투하고 있다!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청년들이 바로 잡아야한다!
출처 입력
라며 연설을 했고 유소기와 등소평에게 핍박받던 젊은이들과 학생, 그리고 홍위병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죠.
그러자 그 대단한 모택동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자 흥분한 청년들은 중국 전국에서 모택동을 외치며 들고 일어나게 되었는데요.
극단적으로 모택동을 섬기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젊은 청년들은 '홍위병'이라는 역대급 쓰레기 집단이 되어버립니다.
이 홍위병들은 비록 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중국 공산당의 군대인 중국인민해방군과는 관련이 전혀 없었죠.
그냥 학생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과격한 집단 정도였고 군 조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홍위병들은 "이게 다 관료제와 썩어빠진 옛 문화들 때문이다!" 라며 처음엔 주요 타겟이 부패한 관료들이었지만 이 쓰레기 집단이 통제가 안 되기 시작하며 광기에 사로잡혀 여러 분야로 공격 범위를 넓히게 되죠.
거기다가 모택동은 "홍위병이 뭘 하든 태클을 걸지 말라." 라고 지시했는데 홍위병들은 이제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홍위병들은 대학교수나 예술가들 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을 잡아 길거리로 끌고와 공개처벌을 한답시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버렸습니다.
이때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은 지식인들의 수는 헤아리지 못할 수준이었죠.
또한 정권을 우리가 다시 회수한다며 정부기관을 장악했고 각 부처의 장관들도 때려 죽이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문서고로 쳐들어가 기밀문서들을 불태워 버렸으며 혁명외교를 한답시고 외국의 외교관들까지 조리돌림 해버렸죠.
그리고 음악은 공산당이 허락한 것만 가능했고 무술이나 전통문화들은 죄다 금지시켰습니다.
그 유명한 소림사도 파괴되었고 수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무술 비급서 등도 다 불태워졌죠.
그들은 모택동의 지시를 받들어야 한다며 거리나 가게들의 간판을 총이나 칼, 폭탄 등의 그림으로 바꿔버렸고 맛있는 음식은 부르주아적이라며 유명한 식당에서 음식 판매를 금지시켰으며 음식점에서는 오직 죽과 '만토우'라고 하는 속없는 찐빵 같은 것만 팔도록 강요했죠.
공장이나 가게들을 습격해서 물건들이나 장비, 자재들을 훔쳐 가기도 했습니다.
공장의 노동자들도 몰려든 홍위병들을 막을 순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죠.
또한 신호등의 빨간등이 정지신호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혁명을 상징하는 적신호는 전진신호가 되어야 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이를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자동차의 우측통행도 미국 제국주의의 유산이라며 바꿀려고 했지만 영국이 좌측통행이다 보니 결국 바뀌진 않았죠.
그들의 악행은 점점 더 거침이 없어졌습니다.
꽃은 곡식을 키울 땅을 차지한다며 꽃집을 다 때려 부쉈고 개와 고양이는 부르주아들의 짐승이라며 집단 학살 당했죠.
비둘기는 곡식을 먹는 짐승이라며 마구잡이로 잡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홍위병들이 행한 가장 개념 없는 짓거리는 바로 5,000년의 중국의 역사를 스스로 모조리 파괴시켜버린 것이었는데요.
이들은 '옛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라는 명분으로 옛 조상들, 황제들 등의 무덤들은 다 파헤치거나 봉분을 없애버려 평평하게 만들어 버렸고 문화재들도 훼손하거나 불태워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공자의 묘까지 파헤쳐져 평탄하게 만들어져 버렸고 묘비나 비석들도 모조리 파괴되었으며 공자의 후손들의 무덤까지 파헤쳐져 시신의 형체가 남은 시신들은 나무에 메달기까지 했습니다.
민족영웅이던 원숭환의 묘라던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웅인 악비의 묘들도 구시대 산물이라며 묘를 파헤쳐 버렸고 악비의 유골은 태워 가루로 만들어 버렸죠.
그 외에도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기록물이나 도자기, 서예, 미술품 등을 비롯해 성, 궁궐, 서적, 사원, 종교시설, 황실 대대로 내려오던 유물들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역사적 사료들 모든게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의 묘가 파헤쳐 지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조선왕조실록, 팔만대장경 등이 불태워져 버린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심지어 국가 주석이던 유소기는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했고 감옥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했죠.
거기다가 당서기였던 등소평 역시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당하고 집단 농장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으며 등소평의 아들이던 등복방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남긴 했지만 하반신 불구로 살게 되었죠.
홍위병은 모택동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렸고 그들은 심지어 보수파와 조반파, 이 두 개의 파로 나뉘면서 서로 권력 다툼까지 했는데요.
나중에는 모택동의 아버지가 부농이라며 공격하기에 이르렀고 게다가 다른 나라의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을 비판하기까지 했죠.
그러자 모택동은 1968년 7월 28일에 홍위병의 지도자들을 불러 운동을 그만하라고 명령했고 홍위병들을 농촌으로 보내 살게 하는 일명 상산하향운동을 벌였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농민에게 배워야 한다"는 모택동의 말에 따라 홍위병들은 줄줄이 농촌으로 보내졌고 이후 도시 거주권을 박탈당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했죠.
처음엔 기분 좋게 농촌으로 내려간 홍위병들은 집도 없고, 밥도 안 주고, 노동력 착취만 당하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강제 노동에 항의하다가 부르주아로 몰려 맞아 죽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여자 홍위병들은 농촌에 도착한 순간부터 지옥이 펼쳐졌죠.
성추행과 성희롱은 기본이었고, 강간을 당해 아이를 임신하면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정상적인 관계인데, 뭐가 어때서?" 라며 농촌으로 쫓겨간 홍위병 여학생들을 나몰라라 했죠.
그렇게 맹목적으로 모택동을 숭배했던 홍위병들은 사랑해 마지않던 모택동에게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정작 홍위병들이 깨부술려던 관료들, 즉 기득권 세력들은 전혀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요.
중국 공산당을 건국한 1세대들의 자식들이 모여서 만든 중공 최대 세력인 태자당은 아직도 건재하며 현재 중국 주석인 시진핑 역시 태자당 출신이죠.
시간이 지나 등소평이 다시 복귀하고 중국 사회가 점점 안정권에 접어들자 홍위병들의 만행은 엄청난 비난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홍위병들은 문화대혁명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몰락의 길을 걸었고 이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 일부는 보복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자신이 홍위병이었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하죠.
잃어버린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해 학생들을 부추긴 모택동이나 모택동이 시켰다며 그런 만행을 저지른 홍위병이나 둘 다 노답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중국이 중국한거 같긴 하네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를 불과 약 10년 만에 다 파괴시켜버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집단, 홍위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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