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역사 탐구

빙애. 영조에게 반항하면서까지 포기못한 사랑하는 여인을 미쳐 날뛰며 때려 죽인 사도세자

by 사탐과탐 2023. 1. 3.
반응형
미쳐 날뛰는 사도세자에게 맞아죽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빙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아실만한 조선의 역사중에 아주 유명한 사건 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바로 사도세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쟁취한 사랑. 빙애라는 여인이죠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가까이 한 여자들은 많지만 잠시만 그렇게 대하시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자식을 낳은 나인에게도 털끝만큼도 더 봐주는 일이 없었는데 빙애에게는 그렇게 대수롭게 대하시더라' 라고 기록되어있을 정도로 사도세자가 총애한 후궁이었습니다

하지만 빙애는 훗날 너무나도 처참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녀에게는 대체 어떤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빙애의 성은 박씨이고 숙종의 세번째 왕비인 인원왕후의 침방 나인이었죠

어느날 사도세자는 대비전에 문안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곳에서 빙애를 처음 보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실에선 웃어른의 나인을 건드리는것은 금기였기 때문에 빙애를 후궁으로 삼고 싶어도 그렇게 할수가 없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사도세자는 그녀를 절대 포기 할수 없었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면서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들이려 했지만 영조 또한 이를 허락하지 않았죠

그러던 중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사도세자는 기다렸다는듯이 할머니의 처소로 달려가 빙애를 강제로 끌고왔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게 되었지만 이일은 아버지인 영조에게는 비밀로 했죠

그리고 아랫사람들 또한 입단속을 시켰으며 동생이던 화완옹주를 협박해 그녀의 집에 빙애를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수는 없었고 어느새 그 사실이 새어나가 영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인원왕후가 죽어 국상중이던 기간에 심지어 할머니 처소의 나인을 강제로 범했다는 사실은 영조를 굉장히 분노하게 했습니다

격분한 영조는 당장 빙애를 출궁시키라 명했죠

그러자 사도세자는 다른 궁녀 중 한명을 가짜 빙애로 만들어 영조의 명을 받드는척 하며 대신 출궁 시켰고 그 후부턴 몰래 궁을 빠져나가 화완옹주의 집에 드나들며 빙애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이 사실도 영조에게 발각 되어버렸고 열받은 영조는 당장에 빙애를 먼곳으로 내치려고 했는데 사도세자는 황급히 그런 영조의 앞을 막아섰죠

그리고는 빙애를 후궁으로 삼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아버지 영조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영조 또한 한 성깔 하던 인물이라 절대 안된다 반대하였고 그러자 사도세자는 궁내의 양정합 우물에 몸을 던져버렸죠

그러자 즉각 내시들이 우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을뻔한 사도세자를 구해냈습니다

목숨을 걸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얻으려 했던것이죠

 

그렇게 까지 하니 영조도 결국에는 허락을 해줬고 빙애를 특별상궁으로 임명해 그녀는 종6품 수칙(守則)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나누며 1남 1녀의 자식을 얻게 되었죠

하지만 빙애는 영조에게 단단히 찍혀버려 사도세자의 자식까지 낳았지만 끝까지 후궁 봉작을 받지는 못했고 다른 후궁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심지어 혜경궁홍씨도 그녀에게 질투가 났는지 사도세자가 꾸며준 빙애의 처소를 보고 "없는 세간이 없더라" 라고 질투 섞인 말을 하기도하고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는 "그것의 됨됨이가 요악하다" 라며 기록하기도 했다고 하죠

 

한편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의대증이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의대란 왕이나 세자, 왕비등이 입는 옷을 말하는데요

옷을 입을때마다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굉장한 불안증세를 보이는 그런 병이었죠

그래서 사도세자는 옷을 입힐때마다 발작증세를 보이며 미쳐 날뛰었는데 옷을 찢어버리기도 하고 주변의 있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사도세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궁인이 생기기까지하자 어쩔수없이 혜경궁 홍씨가 그의 옷시중을 들었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과거에 사도세자가 던진 바둑판에 얼굴을 맞고 눈이 빠질뻔 하는등 그가 휘두르는 폭력을 경험한적이 있던터라 그의 옷을 입힐때마다 굉장히 두려워 했었죠

그런데 빙애가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자 혜경궁 홍씨가 도맡아 해오던 사도세자의 옷을 입히는 일을 빙애가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좀처럼 사도세자의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으며 옷을 입힐때마다 사도세자가 주위사람을 두들겨 팰 때 그녀는 이런 광기 어린 폭력을 온몸으로 막으며 아랫사람을 지켜주던 정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이러한 두렵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이미 눈돌아가 난리를 치고 있던 사도세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호통을 칠 정도로 강직한 품성을 가진 여인이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날, 역시 용포 입는것을 거부하던 사도세자는 또 다시 광기에 사로잡혀 주위에 있던 내시와 궁녀들을 막 두들겨 패기 시작했는데 이날도 역시 빙애는 그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이미 맛이 간 사도세자의 눈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빙애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대로 그는 자신을 막아선 빙애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눈 돌아간 사도세자는 빙애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은전군도 알아보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 버렸죠

다행히도 궁녀들이 연못에 뛰어들어 빠진 은전군을 건져내 살았지만 그의 무자비한 폭행을 무방비로 당하던 빙애는 결국 남편이던 사도세자에게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며 목숨까지 버리려했던 남자에게 무참히 살해 된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이일은 모두에게 비밀로 붙여져 영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많은 시간이 지난후, 나경언에 의해 이일이 영조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신의 자식을 낳은 사랑하는 여인까지 때려죽인 일을 벌인 사실에 영조는 큰 충격을 받았고 영조 또한 강직하고 선한 그녀의 성품을 좋게 보고 있었기에 즉시 사도세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니가 처음에는 우물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후궁으로 삼아달라던 여인을 어떻게 니 손으로 때려 죽일수가 있느냐? 그사람의 성품이 강직했었던걸 생각하면 분명히 너의 이상한 행실을 간언하다가 죽임을 당한것이 분명하다!" 라며 그의 광기어린 행동을 꾸짖었죠

사도세자도 처음엔 억울하다고 울고불며 대꾸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에게 광증이 있어 그렇게 됐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다 훗날 사도세자 자신도 빙애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갖힌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죠

훗날 대한제국이 건국된 1899년 9월 1일.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어 장종(莊宗)의 묘호를 받으면서 궁녀 신분이었던 빙애도 종1품 귀인(貴人)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또한 2년 뒤인 1901년에는 정1품 빈으로 추증되어 경빈(景嬪)의 작호를 받아 경빈 박씨가 되었죠

 

여담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우물에 던져져 죽을뻔한 은전군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요

그는 훗날 역모에 휘말려 이복형이던 정조에 의해 고작 스무살의 나이로 사사당하고 만것이죠

어떻게 보면 사도세자와 엮인 인물들은 모두 끝이 좋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남자의 손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여인 빙애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