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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만귀비. 명나라 황제 성화제가 총애하던 19세 연상 후궁이자 잔인해 마지않던 악녀

by 사탐과탐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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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귀비는 성화제보다 19살이나 연상이던 후궁인데요.
하지만 누구보다 성화제의 총애를 받았죠.
그 총애를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만귀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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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역사상 황제나 왕들은 누구나다 여자를 밝히는 경우도 많았고 정실부인 외에도 많은 첩이나 후궁을 거느린 왕들도 많았죠.

대부분의 왕들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자신보다 어린 여자를 후궁이나 첩으로 들이기 마련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후궁은 정실부인보다 더 총애하기도 했죠.

게다가 아무리 폭군이라도 자신의 후계자나 자식들을 건드리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대했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 때 굉장히 독특한 경우가 있었죠.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얼굴도 예쁘지 않았고 몸매도 예쁘지 않았으며 황제보다 19살이나 연상이던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아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이야기인데요.

그녀는 중국 명나라 헌종, 성화제의 애첩 '만귀비' 입니다.

 

만귀비의 이름은 만정아로, 1428년에 산동 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4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귀양을 가게 되면서 그녀는 궁녀로 들어가게 되었죠.

그렇게 그녀는 손태후를 모시는 궁녀가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만정아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똑똑했기 때문에 주인이던 손태후가 이런저런 음모를 꾸미고 일을 시켰을 때 능수능란하게 잘 해냈을 정도였죠.

그녀의 나이가 19세가 되었을 때 훗날 성화제가 되는 주견심이 태어났는데요.

아버지였던 영종이 포로로 잡혀가기도 하고 자신도 태자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일이 제자리를 되찾으면서 자신도 황태자가 되었죠.

 

그리고 손태후는 태자인 주견심을 잘 모시라며 똑똑한 만정아를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주견심의 친모였던 주귀비가 살아있었지만 황실의 법도가 너무나도 엄격해 서로 쉽게 만나지도 못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주견심은 친어머니였던 주귀비보다 나이차가 거의 어머니 벌이었지만 항상 자신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만정아에게 더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죠.

 

사실 만정아는 몸이 뚱뚱하고 외모도 예쁘지 않았던 여인이지만 특유의 총명함과 성숙미를 내세워 화려한 테크닉과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주견심의 혼을 빼놓았고 그렇게 그를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주견심은 이런 만정아에게 푹 빠져버려 그때부터 그녀에게 헤어 나오질 못했죠.

 

그렇게 만정아와 주견심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만정아는 훗날 주견심이 황제가 되면 자신의 신분 상승은 물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시간이 흘러 주견심은 황위를 이어받아 성화제가 되면서 만정아를 황후로 삼고 싶었지만 신하들과 태후의 반대로 인해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오씨를 황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만정아는 후궁의 작위 중 하나인 귀비로 책봉해 이때부터 그녀는 만귀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죠.

오황후는 외모로 보나 나이로 보나 그리고 집안이나 품성 등 모든걸 따져도 만귀비보다 못한게 없었지만 성화제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만귀비 만을 찾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보니 만귀비의 기고만장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만귀비는 황후보다 아래인 후궁의 위치였지만 성화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궁내의 모두가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었죠.

게다가 성화제는 어디를 가든지 그녀를 데리고 다녔을 정도였는데요.

 

그녀의 권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조정 대신들도 만귀비의 눈치를 보면서 아부하기에 바빴고 나중에는 대신들의 인사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했으며 상을 내리거나 벌을 주는 것까지도 만귀비 마음대로 할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이런 농단에 충신들은 성화제에게 간언했지만 황제의 귀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죠.

 

그러다보니 만귀비는 원래 자신이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위치에 있던 오황후 앞에서도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였고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빡친 오황후는 만귀비의 버릇을 고치고자 그녀를 불러 야단을 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만귀비는 곧바로 성화제를 찾아가 모든걸 일러바쳤고 성화제는 격분하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오황후를 폐위 시켜버렸죠.

 

그 이후로도 성화제는 만귀비를 황후로 앉히려고 했지만 어머니 주태후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이후 현비로 있던 왕씨를 황후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전 황후였던 오황후의 사례를 보고 들은 왕황후는 만귀비의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았다고 하죠.

 

이후 만귀비는 48세의 나이로 아들을 낳게 되었고 이에 성화제는 매우 기뻐했는데요.

당시 나이가 많았던 그녀는 이후에는 자식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너무나 희박했었고 이 아들은 장차 황제도 될 수 있는 자식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소중했던 황자였던 것이죠.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황자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 이후부터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잔혹한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는데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임신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화제의 다른 후궁들이 아이를 가지기라도 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 아이를 유산시켜 버린 것이죠.

 

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녀는 곧장 아이를 유산하는 약을 보냈고 후궁들은 만귀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그 즉시 궁 밖으로 쫓겨났죠.

 

그런데 어느 날 백현비가 만귀비를 속이고 아들을 낳았는데요.

성화제는 매우 기뻐했지만 이듬해 만귀비는 독약을 사용해 백현비와 그녀의 아들을 죽여버렸죠.

궁내의 모든 사람들이 백현비와 황자가 죽은 이유와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궁녀 기씨는 성화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요.

이 소식 역시 만귀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만귀비는 사람을 시켜 유산하는 약을 그녀에게 보냈죠.

하지만 그 약을 배달해온 사람의 배려로 기씨는 약을 먹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사실을 만귀비에게 들통이 나기라도 하면 자신과 아들의 목숨이 달아날 것이 두려웠던 기씨는 그 아이를 한 환관에게 건네면서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달라고 했죠.

이 일을 불쌍하게 여긴 환관은 그 아이를 몰래 궁 밖으로 빼돌려 누구도 모르게 그를 길렀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주우탱으로 훗날 명나라 성군으로 추앙받는 효종 홍치제가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주우탱을 숨긴 환관이 성화제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는데 성화제가 그에게 "짐이 지금 늙었지만 아들 하나 없구나" 라고 한탄하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들은 환관은 성화제 앞에 엎드리며 "사실 폐하께도 자식이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깜짝 놀라며 그게 무슨 말이냐 물으니 환관은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성화제에게 아뢰었죠.

그리고 이렇게 궁 밖에서 몰래 황자를 키운 이유도 만귀비가 황자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라고 했지만 성화제는 만귀비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만귀비의 죄를 묵인해 주었습니다.

 

또한 성화제는 아들이 있다는 것에 아주 기뻐하면서 그 아이를 궁으로 데려오라 명했고 그를 태자로 앉히면서 태자의 생모인 기씨도 비로 책봉했습니다.

하지만 만귀비는 분노에 사로잡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기씨를 독살해 버렸고 성화제는 만귀비의 소행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처벌하지 않은 채 기씨의 장례만 후하게 치러주었다고 하죠.

 

게다가 만귀비는 태자 주우탱까지 죽이려고 들었는데요.

만귀비의 그런 성격과 행실을 다 알고 있던 주태후는 분명히 태자에게도 화가 미칠 거라 생각해 태자를 태후궁에서 길렀고 그래서 다행히 만귀비의 악수에서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만귀비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태자 주우탱을 죽이거나 몰아내려고 많은 계략을 썼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태자까지 죽이려 한 만귀비의 만행을 성화제 역시 모두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그녀에게 하지 못하게 한다던가 그녀를 처벌한다던가의 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우탱을 죽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만귀비도 더 이상 이 짓도 질렸는지 다른 후궁들이 임신을 해도 유산시키려고 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는데요.

 

주우탱이 태자가 된 이후 여러 아들을 두었고 그렇게 성화제의 총 14명의 아들 중 11명이 성인이 되었으며 딸은 6명 중 4명이 성인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 그녀는 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었고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녀가 죽자 성화제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정사도 돌보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슬픔에만 잠겨 있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만귀비가 갔으니 내가 더 살아서 뭣하겠냐" 라고 탄식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만귀비가 죽은 그 해에 성화제 역시 4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 세계 역사상 왕이나 황제의 후계자를 죽이려는 시도를 하다가 일가족 전체가 몰살당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만귀비와 같이 태자를 죽이려고 했지만 아무 조치 없이 그대로 둔 걸 보면 성화제가 만귀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만귀비가 아이를 낳았던 때의 그녀의 나이는 48세로 꽤 많은 나이였는데 성화제가 그녀를 그렇게 총애한 이유는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고 하죠.

원래 외모 이외에도 사람에게는 수많은 매력 포인트가 있기 마련인데 그녀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나 보네요.

 

아들뻘인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황제의 후궁들이나 자식까지 죽이려고 했던 악녀, 만귀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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