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의 장량이라고 불리는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일등공신이 되어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 인물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자신의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간신 한명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킹메이커'란 남을 최고의 자리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조력자를 말하는데요.
중국의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이나 촉나라를 세운 유비의 옆에 있었던 제갈량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와 같은 킹메이커들이 존재했는데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도전과 한명회라 할 수 있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종과 성종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무려 두 명의 왕의 장인이 된 인물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3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최고의 권력을 누린 것으로 유명한 한명회입니다.
한명회는 1415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인 여주이씨 부인이 임신한 지 7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해서 칠삭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미숙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의 형체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해 그의 부모는 아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포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명회의 유모가 될 예정이었던 여종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아기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몰래 이불로 둘둘 말아 따뜻한 방에 뒀다고 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가 죽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랐다고 하는데요.
몇 년이 지나 사람의 형태를 다 갖춘 뒤에야 비로소 유모는 집안 어른들에게 한명회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한상질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명나라에 가서 조선이라는 이름을 국호로 쓰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이며 한상질의 동생이자 한명회의 종조부인 한상경은 조선의 개국공신에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었는데요.
한명회가 사극에서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자란 것처럼 나오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손에 꼽는 금수저 출신이었던 것이죠.
한명회는 40살까지 과거에 여러 번 응시했으나 워낙 평소에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데다가 공부머리는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것인지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결국 문종 2년인 1452년 고위직 관리의 친족에게 시험 없이 관직을 주는 음서로 관리가 되는데요.
본인 실력이 아니라 잘난 조상을 두었다는 것 하나로 특혜를 받고 관직에 진출하게 된 것이죠.
그가 처음 맡게 된 일은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을 지키는 경덕궁직이라는 직책이었는데요.
당시 개성에 와서 벼슬하는 서울 출신 사람들끼리 '송도계'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었는데 한명회도 이 모임에 가입하기를 원했지만 말단직에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단순한 거절 정도가 아니라 "경덕궁직도 벼슬이냐?"라고 한바탕 비웃음을 당하는 등 아주 개망신을 당했다고 하죠.
하지만 한명회는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지만 인맥을 만드는 소질이 뛰어났으며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이 당시부터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가 되는 권람과 많은 친분을 쌓고 훗날 자신을 위해 활약할 수 있는 양정, 유수 등의 무인들과도 교류했으며 심지어는 깡패나 무뢰배들과도 어울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세종과 문종이 사망하고 단종이 즉위하자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명회는 과거시험으로는 자신이 도저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자신을 높은 자리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는데요.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수양대군이었죠.
당시 그는 김종서의 압박과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는 안평대군에 의해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근심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한명회는 수양대군과 친분이 있는 그의 오랜 친구 ‘권람’에게 자신을 수양대군에게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하죠.
처음 보자마자 수양대군이 한명회를 마음에 들어한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명회는 과거에 급제하지도 못한 데다 고작 경덕궁의 문지기였으며 체격과 인물까지 시원찮았기 때문에 인물을 뽑을 때 외모 또한 중요시하던 조선 시대에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양대군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따질 여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의 목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었죠.
그를 모시고 있던 권람도 능력은 뛰어나지만 모략을 꾸밀 줄 아는 모사는 아니었습니다.
수양대군의 이러한 상황이 한명회에게는 더없이 좋은 행운이 되었죠.
이때부터 한명회는 수양대군과 자주 교류하며 그의 오른팔이 되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는데요.
특히 많은 깡패와 무뢰배들을 포섭하고 홍달손을 비롯한 무장들을 끌어들였으며 수양대군의 정적인 김종서와 안평대군 일파의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조가 즉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계유정난을 주도하며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제거해버립니다.
그렇게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집권에 큰 공을 세워 공신 반열에 오르면서 인생 역전에 성공하게 되죠.
수양대군은 거사 직전까지도 세력과 사람이 없어서 실패할 것을 걱정했는데요.
이때 한명회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나라를 안정시켜야 된다며 수양대군을 설득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지대한 공 때문에 세조는 한명회를 두고 "나의 장량이다."라고 평가했죠.
이후 한명회는 왕실에 두 딸을 시집보내고 정승이 되면서 최강의 권력자로서 권세를 휘둘렀으며 세조가 죽은 후 예종시절에 이어 성종 초반까지 그 권세가 계속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성종에게 시집보낸 막내딸 공혜왕후가 자식 없이 젊은 나이에 죽고 성종이 장성하면서 하늘 높은 줄 몰랐던 한명회의 권세도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성종은 나이 일흔이 된 그에게 궤장(국가에 공이 많은 늙은 신하에게 명예로운 퇴임을 기념하며 선물하는 지팡이)까지 하사하며 권력에서 물러나기를 바랐지만 한명회는 성종의 뜻을 따르지 않고 버텼는데요.
이에 한명회의 끝없는 권력에 대한 욕심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한명회는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는 그곳에 들어앉아 권력에 욕심이 없는 척했죠.
그러면서 스스로를 가리켜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니 강가에 누워 세상을 관조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퉈 압구정에 찾아와서 한명회와 압구정을 예찬하는 시를 수백 편이나 지었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은 모두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었고 다른 신하들과 일반 백성들은 이를 비웃었다고 하네요.
그의 정자인 압구정이 화려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명나라 사신과 일본의 사신들이 와서 구경하려 하자 그는 궁중에서만 쓰는 용봉차일을 쳐서 자신의 정자를 화려하게 꾸미려 했는데요.
그러나 왕인 성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때 한명회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간과 사헌부로부터 무례하다는 이유로 탄핵 대상이 되어 외지로 유배되었으나 금방 사면되어 풀려났다고 하죠.
그리고 1년 후 자신의 정자인 압구정에서 명나라 사신들을 사사로이 불러서 접대한 일로 탄핵되어 관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권력을 잃은 한명회는 2년후 병을 얻어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죠.
실록에 사관은 한명회에 대해 "도량이 크고 성격이 활달했으며 결단력이 뛰어났다"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그만큼 지략가로서의 능력은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악용해 많은 사람들을 해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비정상적인 권력을 휘둘렀죠.
그는 아무런 명분도 없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살생부를 작성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이후로도 단종과 관련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탄압했는데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때 억울하게 처벌받았던 이들의 신원이 숙종대에 다시 복구되었고 정조 또한 이들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와 그녀의 아들 인성 대군이 모두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그의 또 다른 딸인 공혜왕후 또한 젊은 나이에 자식도 없이 사망하게 되는데요.
한명회 자신은 죽은 후 연산군에 의해 무덤에서 시체가 꺼내져 참수당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죠.
지금까지 뛰어난 재능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만 썼던 한명회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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