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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폭군 간신 탐구

경빈박씨. 중전 자리를 탐내고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고 싶어 하다가 가문 전체가 폭망해버린 후궁

by 사탐과탐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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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박씨는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세자로 세우고 싶어하고 중전 자리를 탐냈었습니다.
문정왕후와 대립관계를 맺어오다 두 가지 큰 사건에 연루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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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시대, 중종의 총애를 받는 한 후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전보다는 아래였지만 후궁들 중 가장 높은 품계인 정1품 빈의 위치까지 올랐던 여인인데요.

심지어 중종의 서장자 아들을 낳았으며 스스로도 왕비가 되고 싶어 했고 게다가 중종도 그녀를 왕비로 삼으려 했었던 인물이죠.

 

하지만 욕심이 과했는지 훗날 그녀는 끝내 왕비는 되지 못하고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바로 중종의 애첩이던 '경빈박씨' 이죠.

 

그녀는 경상도 상주에서 박수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연산군 재위 시절, 전국 각지에서 흥청을 선발할 때 그녀의 외모가 굉장히 아름답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죠.

그러나 이후 중종반정이 일어나게 되면서 그렇게 그녀는 중종의 후궁이 되어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아름다웠던 외모를 가졌던 만큼 중종의 총애를 듬뿍 받았는데요.

후궁이 된지 단 1년 만에 종2품 숙의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후에 인 1509년에는 중종의 첫째 아들인 복성군을 낳았죠.

그 이후에도 1512년에는 혜순옹주를, 1514년에는 혜정옹주를 낳았습니다.

 

심지어 혜정옹주를 임신 중이었을 때는 많은 대소신료들이 경빈박씨의 눈치를 보며 아부하기도 했고 하필이면 경빈박씨와 숙의나씨 둘 다 출산이 임박하자 의원들은 숙의나씨는 돌보지 않은 채 모조리 경빈박씨의 출산만 신경 써주다 결국 숙의나씨와 복중 태아 둘 다 사망하기도 했을 정도였죠.

 

왕의 첫째 아들을 낳았기도 했고 중종의 여러 후궁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 그녀는 점점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515년 3월, 당시 중전이었던 장경왕후 윤씨가 훗날 인종이 되는 이호를 낳고 나서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이에 중종의 맏아들 복성군을 낳았던 경빈박씨가 다음 왕비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경빈박씨 또한 몹시 중전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죠.

심지어 중종 역시 경빈박씨를 다음 중전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 중 당시 정승이던 정광필이 맹렬히 반대하고 나섰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경빈박씨가 지체 높은 양반집 규수가 아니고 출신이 미천했던 이유에서였습니다.

 

심지어 장경왕후가 훗날 인종이 되는 원자 이호를 낳았었기 때문에 만약 경빈박씨가 중전이 되면 원자보다 형이었던 복성군과 이호의 족보가 꼬이면서 후계자 문제라던가 서열 문제가 불거질 것이고 그러다 왕위쟁탈전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온 조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러한 이유로 신하들이 강한 반대를 하자 결국 중종은 경빈박씨를 중전의 자리에 올리지 못하고 문정왕후 윤씨를 왕비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중전이 되고 나서도 중종의 경빈박씨에 대한 총애는 사그라들 줄 몰랐고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문정왕후와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경빈박씨의 콧대는 점점 높아졌죠.

 

그녀의 성품은 매우 방자하고 교만해서 중종의 총애를 받고 난 이후부터는 안하무인격으로

너무 제멋대로 굴었으며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 못했고 수많은 부조리한 짓을 많이 벌여 재산을 긁어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욕심도 많아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중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간교한 술책을 부리는데 열심히였으며 경빈박씨의 엄청난 권력에,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좀 얻어먹으려고 뇌물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죠.

 

그리고 문정왕후가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면 중전의 입지도 많이 좁아질 것이 분명했고 경빈박씨 자신은 무려 왕의 첫째 아들을 낳았었기 때문에 훗날 자신이 왕비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문정왕후와 척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527년 어느 날, 경빈박씨의 끝을 모르고 치솟던 권세가 완전히 꺾여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바로 세자가 머무는 곳인 동궁전 후원에서 불에 태워진 쥐가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는데 이 사건은 세자를 저주한 사건으로 인식되었고 훗날 이것을 '작서의 변'이라고 불렀죠.

그러자 온 조정의 눈은 경빈박씨를 향하며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아들 복성군을 세자로 올리기 위한 경빈박씨의 소행이다' 라는 것이었죠.

 

사실 경빈박씨가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세자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작서의 변 사건이 누군가가 경빈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한 흉계였다 하더라도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경빈박씨를 모시던 상궁들과 궁녀들, 그리고 이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 모두를 잡아들여 고문하고 문초를 했지만 아무도 경빈박씨가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사람은 없었고 또한 그녀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전혀 찾을 수 없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이 작서의 변 사건의 결론도 조금 애매하게 났는데요.

대소신료들과 삼사가 지속적으로 경빈박씨와 복성군을 폐서인하고 궁에서 내쫓으라며 주청하자 중종은 계속해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끝없는 상소와 대신들의 처벌 요구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둘을 폐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승정원에 둘을 폐서인 하라는 교지를 쓰라고 했지만 그 누구의 자복도 없었고 범인이라고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승정원에서 교지를 어떻게 적을지 우왕좌왕하며 중종에게 어찌할까를 물었죠.

그러자 중종은 "대비마마께서 경빈이 의심스럽다는 글을 내리셨으니 그렇게 적어라" 라고 하며 은근슬쩍 대비에게 책임을 돌렸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자순대비는 "내가 경빈을 의심했지만 범인으로 확정지었던건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하죠.

 

아무튼 대신들의 강력한 주청으로 인해 중종은 결국 경빈박씨와 복성군을 폐서인하고 박씨의 고향이던 경상도 상주로 귀양을 보냈으며 경빈박씨의 딸이었던 혜정옹주와 아버지 박수림을 비롯한 친인척들을 모두 파직시켜버렸습니다.

하지만 경빈박씨는 유배지에서도 중종을 믿고 있었죠.

중종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 불러줄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 희망은 완전 산산조각 나고 말았는데요.

중종 28년인 1533년, 동궁의 남쪽 울타리 위에 뭔가 흉물스러운 것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이로 사람의 머리모양을 만든 물건이었는데 머리카락도 붙어있었고 눈, 코, 입 등 이목구비까지 있었으며 그리고 그 흉물 앞에는 '이처럼 세자를 능지하고, 이처럼 세자의 아버지를 교살하며 이처럼 중전을 참할 것'이라고 적혀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뒤쪽에는 '병조 서리 한충보 등 15인이 한 일임' 이라고도 적혀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가짜로 사람의 머리모양으로 만들었다 하여 '가작인두(假作人頭)의 변'이라고 부르는데요.

처음 조정에서는 한충보를 모함해서 이득을 볼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아무 소득이 없자 어이없게도 한충보를 잡아와 조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충보가 언급한 다른 사람을 조사하는 와중에 당성위 홍여의 하인들이 이 짓을 했다는 자백이 나오게 되었죠.

당성위 홍여는 다름 아닌 혜정옹주의 남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홍여는 바로 잡혀오게 되었고 지독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지만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가 결국 옥에서 사망하게 되었죠.

 

전에 있었던 작서의 변과 마찬가지로 범인이 누군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중종은 이 사건은 경빈박씨에게 잘 보이려 한 자들이 벌인 짓이라며 경빈박씨에게 사약을 내렸고, 아들이던 복성군은 관련이 없으니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라고 명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복성군도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유배명을 내린지 고작 3일 만에 복성군에게도 사약을 내렸으며 두 옹주는 폐서인 되어 도성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죠.

그야말로 경빈박씨의 집안 전체와 자식들마저 모조리 풍비박산 나버린 것인데요.

훗날 복성군과 두 옹주의 신원을 회복해 주기는 했지만 경빈박씨를 비롯한 이들의 죄를 없애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경빈박씨가 복성군을 세자로 올리고 싶어 하긴 했지만 작서의 변과 가작인두의 변을 실제로 실행했는지 아니면 누가 이 일들을 했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어쨌든 이 두 가지 무서운 사건 때문에 일가족이 몰살되는 비극을 맞게 되었죠.

 

실록에도 경빈박씨에 대한 기록은 굉장히 부정적인데요.

그녀는 미천하고 탐욕이 많았으며 교만하여 스스로 왕비가 되길 바랐다고 기록되어 있죠.

또한 복성군의 존재 자체도 세자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서 작서의 변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타겟이 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긴 했었습니다.

 

또한 더러운 성품 덕에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보호해 주거나 대변해 주는 사람조차 없었던 것이죠.

이런 경우를 보면 확실히 착하게 살아야 하긴 한 것 같네요.

 

중종의 총애만 믿고 교만한 행동과 못된 짓만 일삼다가 결국 그 더러운 성격 탓에 모든 이에게 미움을 받아 자신을 비롯한 집안 전체와 자식들마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경빈박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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