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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안시성주. 당태종을 막아낸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한국 역사상 최고로 미스테리한 인물!

by 사탐과탐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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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으로 불렸지만 사실 아니었다!?
당태종을 막아낸 엄청난 업적을 남겼지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한국 역사상 최고로 미스테리한 인물 안시성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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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이세민은 수양제 이후 혼란스럽던 중원을 평정하면서

중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사람 중 한 명이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던 일인데요

수나라와는 달리 초반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전쟁을 계속 이어가던 당태종은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결국 본국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당태종에게 패배를 안긴 안시성의 대장은

그저 '안시성주'라는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정확한 이름을 알 수가 없죠

그런데 17세기 초부터 조선의 지식인들 중에서

갑자기 안시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덕분에 현재까지도 안시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윤근수'가 '월정만필'이라는 수필집을 쓴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라는 내용이 처음으로 나왔다고 하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명나라의 '오종도'라는 인물이 윤근수에게

자신이 '당태종동정기'라는 기록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말했고

감사로 있던 '이시발'이라는 인물 또한 자신이 '당서연의'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윤근수가 월정만필에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라고 기록한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윤근수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준 사람들이 봤다는 당태종동정기와 당서연의는

'당서지전 통속연의'라는 명나라 시절의 소설책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른 고구려인들의 이름이 모두

중국식으로 작명을 한 가상의 인물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양만춘이라는 이름 또한 소설을 지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름일 가능성이 높죠

그 외 정사에서는 그를 두고 안시성주라고만 기록을 해놨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찾아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중국사 최고 명군 중 하나로 칭송받는 당태종을 상대로

우주방어를 펼친 끝에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고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한 독재자 연기소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연개소문이 그를 공격해 오자 역으로 그를 물리쳐버리는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름을 남기지는 못한 것이죠

 

안시성주에 대한 기록은 워낙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으며 어디서 태어났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역사 기록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1차 고당전쟁 때 당태종이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봤다며

안시성주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요

 

642년, 고구려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모시던 영류왕과 그를 따르는 신하들을 모두 살해하고

영류왕의 조카를 보장왕으로 세운 후 스스로 대막리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개소문을 두려워하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는 상황에서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인정할 수 없다며 그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에 화가 난 연개소문이 공격을 해왔을 때도

굳건히 성을 지켜내어 이후로도 계속 성을 맡게 되었다는 소문이었죠

 

다만 이것은 모두 당태종이 들었다는 소문일 뿐

실제 역사기록에서는 정말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대항을 한 것인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확인을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때문에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데

극단적인 의견의 경우 안시성이 고구려에서 벗어나

아예 독립적인 국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다스리는 평양 세력과

안시성주가 속해있는 요동세력 둘로 나눠져 있다는 의견도 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645년 3월, 당태종은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살해하고

포악무도한 짓을 한 연개소문을 자신이 직접 처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수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해 왔습니다

당나라 군대는 요동성과 개모성, 백암성 등 요동 지방의 성 대여섯 개를 연달아 격파하며

마침내 안시성주가 지키는 안시성에까지 도달했죠

 

소식을 들은 고구려 조정에서는 고연수와 고혜진 두 명의 장군에게

15만이라는 대군을 지원해 주며 안시성을 돕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당나라의 군대가 맞붙은 주필산 전투는 당나라의 대승으로 끝났고

고연수와 고혜진은 당태종에게 항복을 하게 되죠

 

연달아 거둔 승리 덕분에 당나라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상황이었음에도

당태종은 안시성이 워낙 험준한 요새인 데다가

그 성을 지키는 안시성주 또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을 시작하기보다는 남쪽에 있는 건안성을 먼저 치자는 의견을 냈죠

하지만 이때 '이세적'이라는 장수가 북쪽의 안시성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면

안시성에 있는 병력들이 후방에 있는 당나라의 보급로를 끊어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안시성을 먼저 함락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면서

당태종도 이세적에게 안시성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당나라의 군사들이 안시성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자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성루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면서 황제를 도발하기 시작했죠

그들의 도발을 본 당태종이 크게 화를 내며 직접 참전하려고 하자

이세적이 그를 뜯어말리며 저 성을 함락시키는 날

저들을 모두 묻어버릴 테니 참아달라는 청을 올리며 그를 진정시켰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안시성의 병사들은 항복해 봤자 죽을게 뻔하니

차라리 끝까지 싸우자며 더욱 의지를 불태웠죠

이후로도 당나라군은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성벽을 넘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투가 장기전으로 이어지자 당태종과 당나라 장수들은 고민에 빠졌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고구려에서 항복해 온 고연수와 고혜진이 차라리 안시성을 포기하고

비교적 공격하기 쉬운 오골성을 함락시킨 다음에

바로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를 멸망시키자는 의견을 냈죠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한 이유는 자신들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고구려에 알려지기 전에

빠르게 당나라가 승리를 거둬야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무사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태종의 오른팔인 장손무기가 만약 지금 안시성을 포기하고 오골성으로 간다면

분명 안시성에 있는 고구려군이 당나라군의 후방을 공격할 것이 뻔하다며 반박을 하자

결국 계속해서 안시성을 공략하자는 결론이 나게 되죠

당태종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는지 그가 고구려군에게 한방 먹였던 일화도 있었습니다

 

안시성을 포위한 당군과 고구려군 사이에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던 중에

당태종은 안시성에서 들려오는 닭과 돼지의 소리를 듣게 되죠

당태종은 갑자기 닭과 돼지를 잡는 소리가 이렇게 나는 것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밤중에 우리를 기습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 말하고는

이세적에게 야간 기습에 대비를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날밤 정말로 수백 명의 고구려군이 성벽에 줄을 매달아 내려왔고

기다리고 있던 당나라군은 그들을 공격해 물리쳤죠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안시성이 함락될 것 같지 않자

'이도종'이라는 장수가 성의 동남쪽 주변에 토산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화살을 쏴서 안시성을 압박할 생각이었죠

안시성도 당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성을 더 높이 쌓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당군이 공성병기를 이용해 성벽을 부수기 시작하자

안시성은 목책으로 부서진 부분을 수리해 가며 당나라군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어찌나 처절한 전투였는지 토산을 쌓는 것을 감독하던 이도종도 싸우다가 부상을 당했고

당태종 또한 전투에 직접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하는 등

양군 모두 다치는 병사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고 하죠

당나라군은 토산을 쌓는데만 무려 50만 명의 병사들을 동원하면서

2개월 후에 기어이 토산을 완성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고

이도종은 '부복애'라는 장수에게 고생 끝에 만든 토산을 지키도록 명령했는데요

 

하지만 이때 고구려의 정예군 수백 명이 기습을 해오면서

당나라군이 만든 토산을 빼앗는 데 성공한 후 그곳을 지키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분노가 폭발한 당태종은 부복애를 참수해 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10월이 되자 일찍 추워지기 시작하는 북방지형의 특성상

풀이 말라버리고 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병사와 말을 먹일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리자 당태종도 결국 철수를 명하게 됩니다

당태종이 물러나면서 성을 잘 지켜낸 안시성주에게 비단 100 필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비록 패배했지만 황제로서의 체면을 지키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안시성주가 소문대로 뛰어난 인물임을 알자 진심으로 그에게 감탄한 것일 수도 있겠죠

 

당나라 측 기록에 의하면 이 전쟁 기간 동안

당나라 군대는 약 8천 필의 군마와 천명의 병사들을 잃은데 비해

무려 4만 명의 고구려 군을 죽였으며 10개의 성을 함락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패배를 덮기 위해 기록을 날조한 것이 의심되며

오히려 죽은 고구려군의 수와 당나라군의 수를 바꾸면 말이 된다고 하죠

 

왜냐하면 당태종이 퇴각하면서 고구려 정벌을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당시 퇴각하는 당나라군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또한 기록돼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큰 전력 손실을 입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거대제국인 당나라를 물리친 안시성주의 업적은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이나

선비족을 격퇴하며 고구려를 구해낸 고노자

위나라의 관구검이 공격해 왔을 때 결사대를 끌고

그들을 막아내며 동천왕을 피신시킨 밀우 등

고구려의 역사 전체를 봐도 손에 꼽을만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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