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 불어닥친 충격적인 경제대공황 검은 목요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전지역이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공장 등 많은 산업시설까지 파괴되어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들마저 제대로 생산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사상자도 어마어마했던만큼 유럽은 전후 복구에 몰두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이때 피폐해진 유럽을 대신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때 유럽에 군수물자와 식료품, 여러 물품들을 수출하면서 엄청난 경제 호황기를 맞게 되죠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자 돈이 어느정도 있던 사람들이 더많은 돈을 갖게 되면서 국민 소비가 증가했고 그만큼 문화나 예술, 산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각종 미인대회도 열렸고, 할리우드에서는 수많은 상업영화들이 개봉했으며 뉴욕에는 높은 건물들이 줄줄이 세워졌죠
그리고 거리에는 유행하던 300~400달러짜리 라쿤 코트를 입은 멋쟁이들이 넘쳐났습니다
당시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이 약 80달러 정도였는데 거의 4배에 달하는 사치품을 입고다니던 그런 시대였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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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심지어 '광란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미국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계속해서 공장을 지었는데요
그만큼 엄청난 물량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라디오,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 새로운 가전제품들도 봇물 터지듯 출시 되었죠
이런 제품들도 원래는 사치품이었지만 이때는 없는집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이 당시에 미국이 세계 제조업의 약 42%를 차지했었고 특히 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약 80%를 장악했을 정도로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것이죠
당시 미국의 31대 대통령 후버가 미국의 모든 가정이 냄비 안에는 닭고기를 차고에는 자동차를 넣게 될거라고 했다고 하죠
이런 물질적 사치와 더불어 라디오와 재즈도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흥겨운 재즈음악이 도시 곳곳에 울려퍼졌으며 매일밤 끊이지 않는 현란하고 광란의 파티들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미국은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죠
당시 미국은 1920년부터 1929년까지 경제성장률이 약 42%에 달했으며 실업률은 4%이하였습니다
이런 경제 호황으로 인해 정말 어마어마한 주식 광풍이 불어닥쳤는데요
당시 주식에 투자를 한다고 하면 은행에서 가진돈의 10배를 대출해주었을 정도였죠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모으고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 교수는 주식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에 보답이라도 하듯 미국 증권시장의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달렸고, 1929년 9월에는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381이라는 최고점을 기록하기도 했죠
그러자 유럽에서는 전쟁 후 재건 자금으로 쓰일 돈까지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투자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식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죠
이러한 광적인 주식 열풍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았는데 이미 눈돌아간 미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미국정부는 시장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방관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보니 당시 수익이 전혀 없던 부실기업도 주식 상장이 가능했었고 기업에 대해 아무런 정보나 데이터도 없는데 사람들은 소문만으로 그 기업의 주식을 마구잡이로 샀으며 그렇게 부실기업이라 할지라도 주가가 몇배로 뛰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식에 투자하면 돈을 벌수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또한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졌는데 당시 상위 1% 계층이 미국 전체 부의 약 4분의 1를 차지했을정도였으며 미국 사람의 약 80%는 통장에 돈이 한푼도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에게 의문스러운 점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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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물건은 많은데 물건을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물건을 살 사람은 한정적인데 끊임없이 공장을 늘리며 생산에만 치중하다보니 공급만 넘쳐나고 있었고 수요는 거의 없었던 것이죠
그러자 물건은 점점 창고에 재고로 쌓이게 되었고 물건이 팔리지 않자 공장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도시 뿐만아니라 농촌에도 참혹한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1차 세계대전때 식량을 수출하면서 대박을 쳤던 농촌은 경제 호황기때도 무리하게 대량생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중부의 축복의 땅인 대평원에서도 휴지기 없이 엄청나게 생산을 해댔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식료품을 더이상 수출할길이 없자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또한 무자비한 개간으로 인해 대평원이 사막화되버리면서 결국 무서운 자연재해 더스트 보울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어이없는점은 농산물값이 폭락하자 농장의 주인들은 농산물을 땅에 묻어버리거나 썩혀서 버렸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배를 곪아 과일과 식료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던 것이죠
그러다 결국 1929년 3월에 연방 준비 은행과 전문가들로부터 주식 거품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식시장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9월 20일 영국 증권 시장의 주가가 급락하자 혹시나 미국에도 주가 폭락 사태가 닥쳐오지 않을까하는 공포가 미국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주가는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주식이 거래 되었죠
그러던 1929년 10월 23일 수요일이 되자 미국 전력회사 웨스팅 하우스 주가가 폭락해버렸고 그이후 여러 우량주들의 주가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태로 수요일 주식시장이 마감되었죠
그러자 사람들은 투자한 주식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밤잠 설치는 날을 보냈고 10월 24일 목요일,바로 그날이 되었습니다
목요일 주식시장이 개장하자 마자 난리가 났죠
어제밤 불안에 잠을 설쳤던 사람들은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대규모로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한것입니다
주가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자 투기꾼들은 겁에 질려 더욱 매도 주문이 쇄도했고 개장한지 2시간도 채 되지않아 100억달러가 사라져 버렸죠
거기다가 우리나라의 한국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제네럴 일렉트릭 주식이 396달러에서 210달러까지 폭락 해버렸습니다
또한 1929년 9월 3일에 381이라는 최고점을 기록했던 다우존스 주까지수가 10월 24일에는 299로 뚝 떨어졌죠
이에 오후 12시 30분, 시카고와 버팔로의 거래소가 거래를 중지하고 급하게 문을 닫았지만 이미 11명의 투자자가 투신을 한 이후였는데요
약 30분이 지난 오후 1시, 월스트리트 주식 중개인들이 긴급 회동을 가졌습니다
주식 중개인들은 다함께 여러 상장사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입해 폭락 사태를 수습하기로 합의를 했죠
그러자 주가 폭락은 잠깐 진정되었지만 실제로 아주 잠깐 동안이었는데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경제규모가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커져버렸기 때문에 일부 자산가들의 돈으로 해결할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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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매도 폭탄을 막아내는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날 거래된 주식은 과거 최대 거래량인 400만주를 훌쩍넘는 약 1290만주나 되었고 주식 대폭락을 한 이날을 '검은 목요일'이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지옥같던 목요일이 지나간 이후 주말동안 신문을 통해 이 일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이 되자 같은 사태가 반복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고 주식시장의 붕괴는 미국 전역으로 퍼진 뒤였기 때문에 화요일이되자 다우 지수는 230을 기록했으며 주식거래량은 1640만주에 달했습니다
이 1640만주 매도라는 기록은 40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다고 하죠
이날 10월 29일 화요일을 검은 화요일이라 불렀고 1929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엄청난 주가가 떨어진 이 사건을 월스트리트 대폭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는데요
11월이 되자 주식값은 더 떨어졌고 사람들의 주식들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으며 결국 수많은 회사가 부도가 나 망해버렸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은행들이 빌려줬던 대출금들을 무자비하게 회수했지만 회사가 망해버려 대출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또한 대량 인출 사태인 뱅크런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미국 경제는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었죠
1932년 7월 8일의 다우존스 지수는 41까지 떨어져버렸으며 이는 다우존스 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1896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낮은 값이라고 합니다
이 다우존스 지수가 대공황 직전의 수준까지 회복한 것은 20여년 후인 1954년이었죠
계속되는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1932년 7월까지 약 3년여의 기간 동안 시가총액의 90%가 증발해버렸고 수만개의 회사들과 약 9000여개의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회사와 은행이 파산하자 사람들도 역시 살기 힘들어졌는데 일자리를 잃은데다 은행에 저금했던 돈도 찾을수 없어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닥치게 된것이죠
희망을 잃은 일부 사람들은 월스트리트의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실업자는 1300만명까지 늘었죠
거리는 구직을 위해 나온 실직자들로 가득찼고 이후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25%에 달했는데 IMF때 대한민국의 실업률 최고치가 7%인걸 생각해보면 미국의 실업률은 끔찍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낙관론에 기대어 머뭇거리는 사이 금융시장에 개입할 골든타임을 놓쳐버렸고 그렇게 전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 일어나게 되었죠
당시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미국이었기에 그 어떤나라도 미국을 도와줄수 없었고 미국 경제의 붕괴는 세계 경제의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구호단체들의 무료급식을 통해 겨우 끼니를 해결했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먹을걸 찾는 사람도 많았죠
전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대도시 주변에 판자촌을 형성했는데 이곳을 당시 미국 대통령 후버의 무능함을 비난하는 의도를 담아 '후버빌'이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구직을 위해 자신의 이력을 적은것을 크게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으며 옷 살돈이 없자 밀가루 포대를 덮어쓰고 살았죠
그러다보니 밀가루 회사에서는 광고효과를 노리기 위해 밀가루 포대를 예쁘게 만들어 팔기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과거 손님이 무언갈 달라고 주문하면 점원이 갖다주던 마켓방식에서 인건비를 아낄수도 있고 물건값도 더 싸지게 하기 위해 손님이 직접 물건을 고르는 슈퍼마켓도 등장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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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와 체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대로 높아진터라 각지에서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에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였죠
1932년 말 공화당을 꺾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존의 자유 방임주의와는 다르게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간섭하는 정책을 펼쳐 대공황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뉴딜 정책인데요
1차 뉴딜에서는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돈을 인출하는것을 막기 위해 상황이 진정될때까지 미국의 모든은행을 휴일로 정해 업무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농산물을 사들여 농산물 값이 떨어지지 않게 했으며 테네시강 유역에 26개의 대형 댐을 건설하는 공사를 해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수력발전, 농업 증대, 홍수 조절 등 지역 경기를 부양시킬수 있었죠
또한 대공황 당시 가장 소외되었던 청년층의 구제 해주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국토개발사업에 투입했고 약 30억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들 덕분에 미국의 여러 국립공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적당한 월급을 받을수 있는 법을 만들었고 회사가 물건의 생산량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했죠
그리고 음악인, 연극인 등 문화예술인에게 정부지원금을 줘 그들이 예술활동을 하며 먹고살수있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소외된 계층에도 용기를 주고 나라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기를 원했던 정책이 바로 뉴딜정책이었죠
하지만 이 뉴딜 정책에도 대 공황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는데 순식간에 대공황을 극복할수 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제 2차 세계대전이었죠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것을 계기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한 미국은 이후 무기나 보급품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막대한 투자와 생산 덕분에 경제도 다시 성장세로 전환되었습니다
또 하나 의외의 사실은 대공황에 미국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자들은 어려움은 커녕 오히려 더욱 부자가 되었는데요
부자들은 망한 공장과 떨어진 주식들을 싼값에 모조리 사들였고 보통때보다 더 싸졌던 모든것들을 사들일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대공황이 지나가고나서 이때 산것들이 값이 뛰기 시작하자 다시 팔게 되면서 자본가들은 더 큰 부자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경제 대공황, 검은 목요일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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