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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영화 죠스와 12살 어린이 덕분에 30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미 해군의 흑역사

by 사탐과탐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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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죠스와 12살 어린이 덕분에 2차세계대전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미 해군의 흑역사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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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의 펜사콜라라는 해변도시에 살고 있던 12살 소년 헌터스콧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영화 죠스를 보게 되죠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로버트 쇼가 태평양 전쟁에서 침몰한 미 해군 인디애나 폴리스호의 승조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디애나 폴리스호 침몰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당시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생각보다 조사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인디애나폴리스호의 생존자 150명을 상대로 일일이 인터뷰를 해가면서 자료를 모았다고 하죠 

그 과정에서 스콧은 인디애나폴리스호를 지휘하던 선장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스콧이 인디애나폴리스호의 선장 찰스 맥베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탄원운동을 벌이면서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죠

이후 1999년 맥베이 선장의 구명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맥베이 선장은 죽은지 30년이 지난 후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지금부터 자세히 보시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945년 7월의 어느날, 약 1만톤급 미 해군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호는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태평양 사이판 인근의 티니언 섬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싣고 간 고농축 우라늄은 원자폭탄으로 만들어진 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 600m에서 투하돼 폭발했죠

 

그 후 인디애나폴리스 호는 새로운 임무를 받게 됩니다

바로 필리핀으로 가서 이미 적들과 싸우고 잇는 미 해군과 육군을 지원하라는 것이었죠

이후 인디애나폴리스는 잠시 괌에 들렀다가 28일에는 필리핀의 레이테 해군기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디애나폴리스 같은 대형 전투함의 경우 자체 스크루의 소음이 워낙 커서 음파로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를 싣기가 어렵기 때문에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호위함이 필수로 동행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당시 미 해군은 이 임무를 극비임무로 취급하고 일본 해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디애나폴리스가 단독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물론 고농축 우라늄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동안에는 워낙 극비를 요구하는 중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호위함 없이 움직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후 원폭재료를 목적지에 내린 후에 필리핀의 레이테섬으로 이동을 시작한 시점에서는 더 이상 비밀을 지킬 필요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상부에서는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았죠

 

때문에 단독으로 항해를 하던 인디애나폴리스호는 결국 일본군 잠수함에 발각됐고 이후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으면서 침몰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1,196명의 승조원 중 무려 300명이 폭발직후에 사망했고 나머지 900명에 가까운 승조원들은 바다로 뛰어들었죠

 

배의 선장은 어뢰에 맞은 직후 바로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구조대는 배가 침몰한지 4일 후에나 도착하면서 900명 중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316명만이 간신히 살아남게 됩니다

수백 명의 해군 병사들이 골든타임을 놓쳐 바다에 수장된 셈인데요

당시 생존자들은 약 5일간 바다 위를 떠다녔는데 식수나 의약품이 매우 부족했던 탓에 탈진한 승조원들은 심한 경우 환각증세까지 겪으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게다가 그 주변 해역은 상어 떼가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했죠

상어들은 처음에는 시체를 그다음에는 주변의 부상자를 노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8월 2일 도착한 해군 구조기가 선원들을 구하는 도중에도 상어가 생존자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선장 맥베이는 살아남은 승무원들을 끝까지 지휘하면서 모든 승무원들을 구해낸 후 마지막에 구조되었습니다

구조 직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은 전쟁에 이겼지만 누군가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죠

그 희생양은 바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맥베이 대령이었습니다

 

정작 미 해군 측에서는 침몰 직후 인디애나폴리스호가 보낸 구조신호를 감지했음에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었는데요

몇몇 수신소에서는 당직사관이 술에 취해서 자거나 놀고 있던 탓에 그리고 또 다른 수신소에서는 일본해군의 함정이라고 판단한 탓에 그들이 보낸 구조신호는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거울과 조명탄까지 동원해가며 구조신호를 계속 보냈던 맥베이 대령과는 반대로 말이죠

 

하지만 해군본부는 맥베이 선장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채 순항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군사재판에 넘겨버렸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이 사건은 해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참사였고 이 소식이 미국 곳곳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미국 내에서도 해군의 실책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에 해군에서는 맥베이 선장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이죠

 

그렇게 맥베이 선장은 적의 어뢰공격을 받았을 때 지그재그로 회피기동을 하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죄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2차 대전에서 침몰한 미군 전함이 무려 380척이나 되는데 수많은 전함의 선장들 중 유일하게 맥베이만 군사재판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후 맥베이는 간신히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사면령 덕분에 복직을 한 후 1949년에 소장 계급으로 군 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그는 군을 전역한 후 죽은 승무원가족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항의가 섞인 전화, 편지 등을 수도 없이 받으면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는데 그 와중에 부인이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하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1968년 11월 6일 커네티컷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며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죠

 

그렇게 묻혔던 맥베이의 진실이 1997년 헌터스콧에 의해 밝혀지며 사람들로부터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워너 의원 앞으로 당시 인디애나폴리스호를 격침시킨 일본 잠수함의 함장이었던 하시모토 모치츠라가 편지를 보내 자신은 당시 인디애나폴리스에 대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재판을 받아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인디애나폴리스가 격침당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뿐 상황이 그렇게 된데 맥베이 대령은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밝혔는데요

 

게다가 당시 인디애나 폴리스호의 구조신호를 받은 해군수신소에서 의도적으로 구조신호를 무시했던 정황까지 추가로 밝혀졌죠

결국 2000년 빌클린턴 대통령이 맥베이 제독을 복권시키고 그를 포함한 316명의 생존자들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하게 됩니다

이후 살아남은 승조원들은 맥베이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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