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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어니스트 섀클턴. 남극대륙 횡단에 실패하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대원들을 살린 인물

by 사탐과탐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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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대륙 횡단에 실패하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634일을 견디면서 모든 대원들을 살려낸 '위대한 실패'를 이뤄낸 리더십의 교보재가 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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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남극대륙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남극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요

남극은 중국과 인도를 합쳐놓은 것만큼 엄청난 크기의 대륙이라고 합니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곳이기도 하고 가장 추운 곳이라고 하죠

 

남극과 북극 중 어디가 더 추울까? 라는 의문도 자주 들긴 하는데 답은 남극이 더 춥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관측 기록으로는 1983년 7월 21일, 남극의 보스토크 기지에서 -89.2℃가 지구상 역대 최저 기온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하죠

 

비공식적인 관측기록 중 최저온도는 2004년 7월 23일에 -98.6℃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무지막지하게 열악한 환경인 이 남극에서 지구의 최남단인 남극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인물은 바로 '로알 아문센' 이라는 인물이죠

하지만 오늘은 이 위대한 탐험가 로알 아문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남극점에 도착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실패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는 로알 아문센도 극찬에 극찬을 할 만큼 '위대한 실패'를 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오늘 이야기할 이 인물은, '어니스트 섀클턴' 이라는 인물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는 1874년 2월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아버지가 의사가 된다며 고향을 떠났고 섀클턴은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지내게 되었죠

그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책 보는걸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섀클턴은 영국 상선대 사관이 되고 나서 1901년에 처음으로 남극으로 탐험을 떠나게 됩니다

이 탐험대 대장은 영국 해군 중령 '로버트 스콧' 이라는 인물이었죠

당시 남극 정복은 나라끼리의 자존심 대결이었던 지라 영국에서도 대부분 해군들로 이루어진 탐험대를 파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콧이 지휘하는 이 탐험대는 결국 데리고 간 개 22마리를 다 잃고 스콧과 섀클턴 역시 설맹에, 동상에 괴혈병까지 걸려 남극 정복은 실패하고 말았죠

이후 1907년이되자 섀클턴은 이제 탐험대의 대장이 되어 다시 남극으로 탐험을 떠나게 되는데요

이때 그와 그의 팀은 굉장한 성과를 거두게 되죠

 

탐험대 대원 중 한명인 제임스 애덤스가 지휘한 등반대는 남극 최대의 화산인 에러버스 산의 정상에 올랐고 앨리스테어 맥케이가 지휘한 분견대는 자남극점을 정복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섀클턴이 지휘하는 본대는 석탄 조각을 발견해 지질학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나중에는 남극점에서 불과 156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죠

 

남극점의 코앞까지 도착했지만 문제가 생겼는데 남극점으로 향하는 와중에 식량이 다 떨어져가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대로 남극점을 향해 강행한다면 그곳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 결국 식량이 고갈되어 굶어죽을게 뻔했던 것이죠

결국 섀클턴은 모든걸 포기한 채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탐험대 대원은 모두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탐험대가 극지를 탐험하고나서 모두 돌아온건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섀클턴은 영국에서 기사 작위와 훈장까지 받게 되었죠

 

그리고 그는 돌아와서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죽은 사자보다는 산 당나귀가 낫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섀클턴이 처음 남극으로 떠날 때 탐험대 대장이던 로버트 스콧은 섀클턴이 남극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초조해 했는데요

그렇게 남극점을 자신이 먼저 정복하기 위해 1910년 부랴부랴 준비해 남극으로 떠나게 되었죠

 

온갖 고생을 다 해서 결국 남극점에 도착하긴 했지만 세계 최초의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바로 로알 아문센 이라는 노르웨이 탐험가가 더 빨리 남극점에 도착했던 것이죠

그렇게 꿈이 좌절된 스콧의 탐험대는 철수를 시작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에 결국 모두가 목숨을 잃고 마는 처참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섀클턴은 남극점 최초 정복이라는 목표는 이미 끝이 났기 때문에 목표를 수정할수 밖에 없었죠

어쩔 수 없이 수정한 목표는 바로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라고 일컬어지는 무시무시한 탐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죠

 

1914년 3월, 겨우겨우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섀클턴은 탐험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탐험대원을 모집하기 위해 놀랍도록 솔직한 공고문을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 지속되는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 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을 얻을 수 있음' 이라고만 적어놓았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남자들의 모험심을 제대로 자극했는지 5천명이라는 숫자의 지원자들이 몰렸고 그렇게 27명의 우수한 대원들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렇게 섀클턴의 탐험대는 출발이 불가능 할것이라 생각되었지만 그러나 다행히 얼마 안가 전쟁이 끝이 날 것이라 예상했고 심지어 전 유럽이 휘말리는 엄청난 세계대전으로 번질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당시 해군장관이던 위스턴 처칠이 출발을 명령해 탐험이 시작될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마침내 그들은 남극으로 출발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은 인내라는 뜻을 가진 '인듀어런스(Endurance) 호' 였는데요

이 배의 이름을 모티브로 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우주선의 이름도 인듀어런스 호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웨들해에 진입한 섀클턴 탐험대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되죠

그것은 바로 계절상으로는 한여름이었지만 바다가 얼어버려 인듀어런스호가 해빙에 갇혀버리고 만 것입니다

탐험대는 그렇게 1915년 1월 20일부터 10월 27일까지 약 9개월간 오도가도 못한 채 정처 없이 남극해를 표류하게 되죠

 

그러다 두번째 위기가 찾아오는데 바로 겨울이 찾아오고 나서 배 주위에 얼어붙어있던 해빙이 배에 계속 압력을 가하더니 결국 인듀어런스호의 선체를 쥐어짜 박살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국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탐험대원들은 대부분의 소지품을 버리고 쓸모있을만한 물건들만 들고 배에서 탈출했죠

이때 섀클턴은 자신이 들고 왔던 귀중품들을 다 버리면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는데 중요한 물품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사진기를 챙겼는데 섀클턴은 투자자에게 투자받는 대신에 모험 도중 찍은 사진들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계약을 맺었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또한 대원 중 기상학자인 래너드 허시는 밴조라는 악기를 가져왔는데 이것도 섀클턴이 챙겼다고 합니다

 

이후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사기를 북돋아 주는데 허시가 연주해 주는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죠

아무튼 탐험대가 배에서 탈출한 곳은 부빙의 위였기 때문에 이곳을 빠져나가 육지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동 중에 계속 부빙이 얇아지고 갈라지기도 하자 이대로 수많은 물자들을 끈 채 무사히 육지로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결국 탐험대는 이동을 멈추고 계속 천천히 움직이는 유빙 위에 페이션스 캠프를 설치한 뒤 이동 전에 잠시 설치했던 캠프에서 남아있던 짐과 조각배 세척을 끌고 왔죠

그리고 내린 섀클턴의 결단은 다른 섬으로 배를 타고 가는것이었습니다

 

마침내 페이션스 캠프를 설치했던 부빙도 갈라졌고 그동안 자신들을 가둬 두었던 얼음들도 거의 다 사라지자 거기 있던 탐험대는 세척의 조각배에 나눠 탄 뒤 이동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날씨는 계속 흐렸고 물살은 너무 거칠었으며 큰 얼음 덩어리 위에 좀 쉴려고 올라갔다가 얼음이 갈라지면서 대원 하나가 물에 빠지는 사고까지 겪었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1916년 4월 15일 그들은 엘리펀트 섬에 상륙하게 되죠

탐험대가 바다로 나선 후 497일 만에 도착한 육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캠프를 설치했죠

하지만 그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엘리펀트 섬은 무인도였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섬에 있던 바다표범과 펭귄 등을 사냥하는 것과 그리고 홍차 밖에 없었죠

또한 불을 피울 연료도 부족하기 시작했고 더 위험한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구조선이 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들은 그곳에서 모든 물자가 떨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얼어 죽는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던 4월 20일, 섀클턴이 중대한 발표를 했죠

바로 조각배를 타고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가서 구조선을 불러오겠다는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너무 무모하고 실현 불가능한 정도의 계획이었는데요

제임스 커드 호라고 이름 붙인 10미터도 안 되는 조각배 한 척을 가지고 남극해를 건너겠다고 한것이고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의 거리는 무려 1300km에 달했던 것이죠

 

심지어 그 작은배로 통과해야 하는 바다는 드레이크 해협이라는 바다로 초속 30m에 달하는 태풍급 바람이 불고 20m짜리 파도가 치는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바다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 배에는 아무것도 없고 돛대 하나만 달랑 달려있었는데 원하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었어야 했죠

그리고 육분의 하나랑 크로노미터 하나만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는데 까딱 잘못하면 사우스조지아 섬을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식량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섀클턴의 계획 자체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도 얼마안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원들은 이 위험한 임무에도 앞다투어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섀클턴은 5명의 대원을 뽑았고 그 6명은 조각배를 타고 남극해로 향했죠

 

섀클턴은 섬에 남은 대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을 전했는데요

"한 달 후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땐 이곳을 탈출해라" 라는 명령이었는데, 사실 대원들이 갈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죠

어쨌든 그렇게 출발한 섀클턴은 가는 내내 폭풍에 시달렸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들이 자신들을 덮쳤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디든 꽉 붙잡고 있는 수밖에 없었죠

 

결국 파도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젖어 버렸는데 밤이 되자 젖어버린 침낭마저 얼어붙었으며 침낭 6개 중 2개는 젖은 상태에서 얼어버리기까지 해 너무 무거워져 그냥 두면 배가 가라 앉을수도 있었기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4개의 침낭으로 교대로 수면을 취해야 했죠

또한 가지고온 노 4개 중 2개도 같은 이유로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물통이 새면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가는 바람에 식수마저 부족해졌죠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마지막날인 5월 9일에는 수백톤짜리 배가 침몰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폭풍까지 불었습니다

섀클턴은 대원들에게 "뭐든 꽉 잡아!"라고 소리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죠

이들은 온몸으로 추위와 파도를 맞아가며 그렇게 버티고 버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6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1916년 5월 10일, 그들은 모두 살아서 사우스 조지아섬에 상륙했죠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는데요

그들은 하필이면 사람들이 사는 곳 정반대 쪽으로 도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배를 타고 원래 목적지로 가려고 했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해류에 휩쓸려 망망대해로 떠내려갈수도 있었죠

육로로 가는것도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사는곳까지 가려면 여러 개의 눈 덮인 산을 건너야 했던 것입니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탈진 상태의 대원들을 모두 데리고 산을 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섀클턴은 3명은 그곳에 남겨두고 나머지 3명만 산을 넘기로 했죠

남은 대원들에게 반드시 구하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출발한 섀클턴 일행은 이를 악물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등산로가 있는것도 아니고 등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눈덮힌 산을 올라야 했던 것이죠

 

완전히 기진맥진한 일행은 가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앉아있다가 곧바로 잠에 빠질뻔했지만 섀클턴이 발로 걷어차며 깨웠던 덕분에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그들은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드디어 스트롬니스 만의 후스빅 항에 도착할 수 있었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여태껏 산을 넘어온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굉장히 놀라면서 한편으론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섀클턴 일행은 배를 한척 빌려 반대편에 남겨놓았던 3명을 구조하는데 성공했죠

이 소식을 들은 영국 국왕도 섀클턴에게 축하 전보를 쳤고 신문에서도 섀클턴 소식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한편 엘리펀트 섬에 잔류한 대원들은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죠

그들은 섬에서 바다표범과 펭귄을 잡아 먹으며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개와 해초를 채집하기도 하고 먹다 남은 뼈를 끓여 먹기도 하면서 버티고 있었죠

 

그곳에 남은 대원들을 통솔한 사람은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섀클턴이 반드시 구조하러 온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씨가 맑아질 때마다 "대장님이 오늘 오실지도 모르니 짐을 싸놓아라" 라는 명령을 계속 했다고 하죠

한편 섀클턴은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구조선을 구하기도 어려웠던데다가 세 번이나 구조하러 갔지만 얼음에 막히거나 배가 부서지는 등의 이유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죠

또한 당시엔 1차 세계대전 중이라 배를 구하기도 힘들었고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4개월이라는 시간만 유유히 흘러가버렸습니다

그러다 섀클턴은 마침내 칠레 정부가 빌려준 엘코호를 타고 엘리펀트 섬으로 향할 수 있었죠

 

1916년 8월 30일, 고작 4일치의 식량 밖에 남지 않았던 엘리펀트섬에 남겨진 대원들은 여느 때와 같이 식량을 만들기 위해 조개잡이와 해조류를 따러 나갔습니다

그러다 섀클턴이 타고 온 엘코호를 발견했죠

배를 본 대원들이 배가 왔다고 소리치니 모든 대원들은 캠프 밖으로 뛰쳐나왔고 섀클턴이 그들을 보고 모두 무사하냐고 묻자 놀랍게도 이들 중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고 섀클턴 탐험대 대원들은 8월 30일을 기적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비록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목표는 실패를 했지만 탐험대 대장이었던 섀클턴이 즉각 목표를 전 대원의 생환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이루어낼수 있었던 일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남극 대륙을 횡단하려 했다면 모두가 죽었을테지만 섀클턴은 목표보다 대원들의 생명을 더 귀중하게 여겼던 것이죠

그리고 훗날 사람들은 이 일을 '위대한 실패'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후 1922년 섀클턴은 또다시 남극 탐험대를 꾸려 퀘스트호를 타고 원정을 떠났지만 사우스조지아의 그리트비컨이라는 곳에서 쓰러졌고 한동안 병을 앓다가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섀클턴의 부인 에밀리에게서 섀클턴을 사우스 조지아 섬에 묻어달라는 전보를 받았고 과거 함께 살아남은 기상학자 레너드 허시가 그의 시신을 그리트비컨의 묘지에 안장했다고 하죠

그리고 허시는 그의 장례식때도 과거 탐험 때 가지고 갔던 밴조로 브람스의 자장가를 연주해 애도를 표했다고 합니다

 

섀클턴의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은 이유는 절대로 살아남을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대원을 살렸고 그의 실패담은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죠

그리고 그는 영국 BBC 선정 영국의 가장 위대했던 탐험가 순위 중 5위를 기록했고 가장 위대한 영국인 11위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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