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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앨리슨 딕비 테이텀 워터. 중절모 쓰고 우산들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전장의 미친 젠틀맨

by 사탐과탐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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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 쓰고 우산들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전장의 미친 젠틀맨 앨리슨 딕비 테이텀 워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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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제2차 대전당시 총과 포탄이 오가던 전장 속에서 우산과 칼 한 자루만을 들고 활약을 했다고 알려진 미친 영국의 군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인물인 '앨리슨 딕비 테이텀 워터'는 1917년 잉글랜드 슈롭셔에서 태어났으며 11살 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자신의 아버지가 적군의 가스공격에 사망한 것에 큰 충격을 받고 1935년 샌드허스트 왕립군사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그는 1937년 1월 21일 졸업을 한 후 1937년 3월 13일부터 영국령 인도를 거쳐 제2 용기병 근위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1942년 자신과 마찬가지로 군인생활을 하고 있던 동생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수부대에 자원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영국의 신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신사의 상징인 우산과 중절모를 항상 가지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죠 

 

그는 평소에도 부하들 앞에서 지휘봉대신에 우산을 휘두르며 지휘를 하곤 했는데 

부하들이 왜 우산을 들고 다니냐는 질문을 하자 "오직 영국신사만이 전쟁터에 우산을 들고올테니 적군과 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겠느냐" 라고 대답하며 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1944년 9월에 있었던 마켓가든 작전에서 아른헴다리를 점령하기 위해 낙하를 하면서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진 그의 전설이 시작됐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딕비가 지휘하던 중대를 태운 수송기가 원래 계획된 목표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그들을 잘못 떨궈버린 탓에 딕비의 부대는 적진 한가운데 떨어진 채 수킬로미터를 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들이 사용하던 무전기마저 고장 나버렸지만 딕비는 평소 무전기가 고장날것을 대비해서 나폴레옹의 부대처럼 나팔로 신호하는 법을 휘하 장병들에게 훈련시켜뒀기 때문에

 

침착하게 독일군의 정찰부대를 모조리 피해 갈 수 있었고 중간에 마주친 독일군 2개 중대와 전투를 벌여서 상대편 150명을 모조리 무장해제시켜버리기도 했죠

전투 도중 군종신부가 적에게 포위당하자 우산과 권총을 든 채로 포위망에서 신부를 구출한 그가 "걱정 마세요 신부님 저희에겐 우산이 있어요"라는 명언을 남기자 신부는 대체 우산으로 뭘 할 수 있냐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에 딕비는 만약 전투 중에 비 오면 어쩔 거냐는 식으로 농담을 던졌지만 머지않아 그의 우산의 진짜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왔죠

바로 독일군 기계화보병 부대와 전투를 하는 도중 장갑차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딕비가 장갑차의 관측창으로 우산을 찔러 넣어서 안에 타고 있던 독일군 운전병의 눈을 찔러 부상을 입힌 후 그 안에 타고 있던 병사들 전원을 생포하는 위엄을 보여준 것입니다

 

심지어 이때 그는 영국신사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며 철모가 아닌 중절모를 쓴 상태였다고 하죠

극한의 미친 컨셉러가 우산 하나로 장갑차를 제압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 공수부대의 침투를 뒤늦게 알아차린 독일군이 대규모로 병력을 보낸 탓에 그들의 부대는 결국 포위되었고 딕비는 독일군에게 생포당해 포로가 되었죠

 

계속된 전투로 몇 군데 부상을 입었던 그는 야전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동료인 토니 프랭크 대위와 같이 창문을 깨고 탈출한 후 옷에 달려있던 단추와 바늘로 간이 나침반을 만들어 방향을 찾은 후 근처 네덜란드 마을로 가서 그곳에 있는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기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딕비는 청각장애인 네덜란드인 페터 젠센이란 이름으로 가짜 신분증을 만든 후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숨어있던 공수부대의 대원들 150명을 찾아낸 후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그들 모두를 자전거에 태우고 유유히 적진을 통과해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죠

 

이때의 활약으로 대영제국공로훈장을 수여받은 딕비는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과 케냐에서 근무하다가 퇴역한 후 1993년 케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잭 처칠과는 쌍벽을 이루는 인물인것 같네요

진짜 세상엔 별의 별 사람이 다있는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2차 세계대전에서 총 대신 활과 장검을 들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던 잭 처칠 중령입니다

"전투에 검을 차고 나가지 않는 장교는 복장불량이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죠

1906년에 태어나 영국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백파이프 경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고

 

세계 양궁대회에 영국대표로 나가기도 했으며 군을 제대한 후에는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영국군 장교로 입대하게 되는데 이때 컨셉에 미친 정신무장과 행동을 하면서 전설로 남게 되죠

그는 총대신에 스코틀랜드 전통검 한 자루와 백파이프 그리고 장궁을 든 채 전투에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적의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 속에서도 꼿꼿이 서서 '돌아갈 집 따윈 없다네'라는 곡을 백파이프로 연주하며 선두에 서있다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돌격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행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미치광이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1940년 영국군의 프랑스 원정군에 들어간 그는 매복 중인 독일군 순찰대를 발견하자

"내가 저기 앞에 있는 독일군을 활로 쏴 죽이면 동시에 공격하라"라고 말한 뒤 곧장 활을 꺼내선 정말로 독일군을 저격해 쓰러트렸는데 이 기록은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활을 이용해 적을 사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일반 보병은 시시하다며 영국 코만도스에 자원을 하게 되죠

잭 처칠은 1941년 12월 27일 자신이 맡은 코만도스 부대를 이끌고 영국군과 노르웨이군의 합동작전인 양궁 작전에 참여해서 지휘관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두에 앞장서서 자신의 특기인 백파이프로 '캐머런 남자들의 행진'이라는 곡을 연주한 후 연주가 끝나자마자 수류탄을 던지며 독일군 벙커로 돌격해 적 해안포의 진지들을 모두 박살 내버렸다고 합니다

 

1943년 코만도스의 지휘관으로 카타니아 상륙작전에 참가한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3대 무기인 브로드 소드와 활 그리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전투에 뛰어들었는데 자신을 엄호해줄 소총수 단 한 명 만을 데려간 채로 브로드 소드를 든 채 '코만도오오!'라는 외침과 함께 돌격해 혼자서 독일군 박격포 부대를 박살내고 42명의 독일군 포로를 잡은 공으로 훈장을 수여받게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의 광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44년 유고슬라비아 전선에서는 40명의 코만도스와 함께 바라크 섬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적의 거센 박격포 공격을 받고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백파이프로 '다시 안 돌아올 거야?'라는 곡을 연주하다 적군의 수류탄에 맞아 정신을 잃은 뒤 포로신세가 되었죠

이후 포로수용소에서 노역하다가 두 번에 걸친 시도 끝에 겨우 탈출에 성공한 그는 다시 영국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다시 복귀한 그는 일본군들이 자신처럼 전장에서 쏘라는 총은 안 쏘고 칼을 들고 몰려다닌다는 얘기를 듣고는 검과 검으로 제대로 된 승부를 할 수 있겠다는 이유로 일본군과 싸우기를 몹시 기대하며 버마 원정대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놈의 미국만 아니었으면 10년은 더 싸울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하며 아쉬워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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