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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스페인독감. 전세계에 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우리나라 3.1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던 사건

by 사탐과탐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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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우리나라 3.1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던 사건 스페인독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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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요즘이죠 

그런데 혹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세계에 유행하며 수천만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스페인 독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만 보면 이 질병이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오해를 하기 쉽지만 사실 이 전염병에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보도 검열을 하느라 이 독감에 대해 다루지 못했던 반면 스페인은 당시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검열로부터 자유로웠던 탓에 이 독감을 집중보도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질병에 대한 정보를 세계 각국에 빠르게 전달하면서 여러 나라들이 대처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줬는데 오히려 질병의 이름자체가 스페인 독감이 돼버렸으니 스페인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병이 최초로 생겨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였던 캠프에서였을 거라고 짐작되며 이후 병사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유례없이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기록에 따르면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와 캔자스등에서 발병자가 생겼다는 게 최초로 보고되었으니 출처로 따지자면 스페인이 아니라 미국 독감이라고 불리는 게 맞을 겁니다

이 질병이 특히 무서운 이유는 머나먼 옛날의 경우 전염병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다 보니 손쓸 길이 없어 당한 것이라 해도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이미 공중보건 체계가 어느 정도 잡혀있던 근대화된 사회가 만들어진 후임에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인데요

 

그 당시 세계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만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천만까지 된다고 하니 마치 지금의 전염병 사태처럼 그야말로 전세계를 강타했다고 볼 수 있죠

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약 1000만 명 정도인데 최소 2배에서 많게는 5배가 넘는 사람들이 희생된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오세아니아의 국가인 사모아는 인구의 90퍼센트가 감염돼서 3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산마리노는 이 질병 하나 때문에 국가 멸망의 위기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당시에도 지금처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국가들이 생겨났는데요

미국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의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했고 또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경우에는 며칠 동안 유치장에 가두는 엄벌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도쿄에서도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하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또한 이 스페인 독감을 피해 가지 못했는데요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한반도에서는 이 질병을 무오년 독감이라 불렀는데 1918년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대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당시 1678만 명의 조선인들 중 무려 절반이나 되는 742만 명이 이 병에 감염되었으며 그중에서 1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3.1 운동으로 희생된 사망자의 수가 약 7500명인데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그 스무 배가 넘는 셈입니다

 

당시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이라고 해서 이 병이 피해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에 있던 34만 명의 일본인중 약 16만 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그중에서 1300명이 사망했다고 하네요

1차 대전에 참전하지도 않은 조선에 스페인 독감이 퍼진 이유는 바로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본군 중 다시 조선으로 배치받았던 사람들로부터 전염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스페인독감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1차 감염은 1918년 초 미국 중서부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거쳐 같은 해 7월에는 호주까지 퍼져나갔죠

하지만 1차 감염은 조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8월 말부터 시작된 2차 감염이 바로 9월 말부터 만주를 통해 조선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1918년 9월부터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스페인 독감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10월이 되면서부터는 거침없는 속도로 빠르게 질병이 퍼져나갔는데요

때문에 각지의 학교가 휴학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와 관청들 또한 제대로 된 업무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개성시에서는 한 달 사망률이 평소의 7배까지 치솟았고 충청남도 예산군과 홍성군에서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망해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농가에는 사람이 없어 추수를 하지 못한 논이 절반이상이었다고 하네요

평양에서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되면서 집배원들까지 단체로 감염돼서 업무가 마비된 우체국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당시 일제의 총독부가 이 사태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들은 스페인 독감의 1차 감염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될 때도 이 질병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으며 2차 감염이 진행되고 한참이 지난 10월 중순이 돼서야 뒤늦게 관심을 갖고 대비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총독부는 그동안 전염병 관리가 식민지 통치의 핵심이라고 떠벌려왔는데 그것이 말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죠

뿐만 아니라 일제는 이런 소식이 퍼지면 조선인들의 민심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전염병과 관련된 보도를 통제하기까지 했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스페인독감 또한 영향이 있었다고 하죠

 

그때까지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한반도를 대신 다스리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정작 대규모 전염병사태가 실제로 일어나자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그저 구경만 했으며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된 후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조선인들의 비위생적인 행동이 이런 참사를 가져왔다고 오히려 조선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런 총독부의 태도는 수많은 조선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점점 높아지던 반일감정이 마침내 3.1 운동에서 폭발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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