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서태후에게 권력을 다 빼앗기고 매일밤 홍등가나 드나들다 결국 비참하게 죽어간 황제 동치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의 3대 악녀 중 한명인 서태후에게는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10대 황제인 동치제 인데요
사실 서태후는 후궁이었지만 동치제가 황제로 즉위하고 나서 태후가 된 사람 이었죠
하지만 동치제는 엄마가 서태후라서 허수아비와 같은 삶을 살았고 죽음 또한 비참 했었습니다
그에게는 과연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동치제는 청나라에서 아버지에게 황위를 이어받은 마지막 직계 혈통 황제 입니다
청나라 역대 황제들 중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가졌던 황제이죠
하지만 동치제는 고작 5살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고 그가 황제가 된 시기엔 백련교도의 난과 1,2차 아편전쟁, 태평천국 운동 등으로 인해 경제가 파탄나고 나라 전체가 엄청난 혼란상태였습니다
동치제의 아버지였던 함풍제는 죽기 직전에 동치제의 섭정을 두 태후가 아닌 8명의 보정대신들에게 맡겼는데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서태후는 공친왕 혁흔과 동태후와 손을 잡고 신유정변을 일으켜 보정대신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으며 그렇게 동치제의 섭정은 서태후, 동태후, 공친왕이 하게 되죠
공친왕은 섭정을 하면서 증국번, 이홍장 등 한족 관료들을 기용해 양무운동을 개시 하기도 하면서 (양무운동 : 근대화 운동) 일시적으로 청나라가 다시 부흥하려고 하기도 했는데 이를 '동치중흥' 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 강남을 점령하고 있던 태평천국을 평정하였고 당시 서구 열강들은 유럽에서 벌어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덕에 그들의 간섭도 덜했던 시기였죠
한편 함께 섭정을 하던 동태후는 서태후만큼 정치적으로 영악하지도 않았고 성격도 온화한 편이라서 권력욕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서태후에게 맡기다시피 해버렸는데요
그런데 두명의 태후 사이에서 아예 갈등이 없었던건 아니었죠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지만 황실 서열은 동태후가 더 높았기 때문에 동태후가 제재를 가할땐 서태후도 별말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동치제도 자신을 엄격하고 차갑게 대하던 친어머니 서태후보다 따뜻하게 대해주고 어리광까지 받아주던 동태후를 더 좋아했는데 동치제의 아내로 간택된 황후도 동태후가 추천한 인물이 선택되자 동치제와 서태후 모자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고 하죠
서태후는 동치제의 아내인 효철의황후도 굉장히 싫어했는데요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정친왕 단화 였는데 정친왕 단화와 그의 동생 숙순은 서태후가 정권을 잡기전 최대의 정적이었던 것이죠
서태후가 하는것 마다 사사건건 반대하고 나서니 서태후는 그들을 증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효철의황후도 굉장히 싫어했기에 동치제와 황후 사이를 이간질 하기도 했다고 하죠
시간이 흘러 동치제가 친정을 할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머니 서태후로부터 권력을 가져오려했지만 이미 권력의 화신이 된 서태후는 잡은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그이후 철저하게 동치제를 정치에서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장성했음에도 실권을 주지 않고 정치에서 배제시키며 섭정을 이어나가던 어머니 서태후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동치제는 주색잡기에 몰두하게 되었죠
야사에 의하면 서태후는 동치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위해 환관들에게 동치제를 데리고 홍등가나 매춘굴에 가도록 밀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청나라 마지막 환관 중 한명이었던 신슈밍은 자신의 책에 '동치제는 매일밤 환관들이 입는 평상복을 갈아입고 환관 한명만 데리고 궁을 몰래 빠져나와 홍등가를 드나들었다' 라고 적었는데 환관들 중 한명이 동치제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했지만 이미 눈돌아간 동치제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고 하죠
그러자 환관들은 동치제의 그런 행실을 공친왕에게 알렸는데 공친왕도 동치제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했지만 동치제는 "니 아들이나 관리 잘해라" 라고 하면서 그의 말도 무시해버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야사에 의하면 동치제는 최고급 유곽에 가면 관리들이나 돈많은 부자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일부러 굉장히 허접한 3류 유곽에 갔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더욱 위생상태가 엉망이었고 동치제 역시 성병에 걸리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친아들인 동치제가 매일밤 홍등가나 유곽에 드나든다는 걸 알면서도 서태후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묵인 했다고 하죠
서태후는 자신의 친 아들보다 권력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동치제는 18살의 젊은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런데 훗날 모택동의 주치의였던 리즈수이가 자신의 자서전에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는데요
리즈수이의 조상이 동치제를 치료한 황실 어의였는데 동치제가 홍등가를 다니며 매춘부와 잠자리를 가지다가 매독에 걸린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서태후에게 보고했지만 서태후는 격분하며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하죠
어의는 황제가 홍등가에 다니다 매독에 걸려 죽었다는 말을 했다간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었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고 뻥을 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편 동치제가 죽기전 병에 걸려 앓아 누웠을때 서태후는 그의 아내 효철의황후도 제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요
어느날 서태후와 효철의황후가 크게 다투는 일이 벌어졌고 이때 황후는 자신은 자금성의 정문인 대청문을 통해 들어온 황후라고 한것이죠
이곳 정문으로는 황제와 결혼을 할때 정식 황후만 들어올수 있는 문이었기에 후궁 출신이던 서태후는 그곳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후궁 출신이라는것이 서태후의 큰 콤플렉스였는데 하필이면 서태후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려 버렸던 것이죠
이후 동치제가 세상을 떠나자 서태후는 황제의 죽음은 황후 때문이라며 동치제의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효철의황후를 저수궁에 유폐시키고 음식 조차 주지 않자 결국 절망한 황후는 금덩이를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효철의황후는 죽고나서도 비참한일을 당하는데요
바로 100년도 지나지 않은 어느날, 군벌이던 쑨뎬잉이 묘를 도굴해 그녀가 삼킨 금덩이를 찾기위해 시신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죠
그렇게 효철의황후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동치제의 아내가 되었다가 평생을 서태후에의해 핍박을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았고 죽어서도 자신의 묘가 파헤쳐지고 심지어 시신마저 훼손당하는 그런일을 당한것입니다
그냥 귀족의 딸로 태어나 귀족집에 시집가서 살았다면 이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잘살았을것 같죠
어쨌든 그렇게 동치제는 후사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버리자 서태후는 자신이 쥐고있던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시 3살밖에 안된 어린 조카 재첨을 양자로 삼아 황위에 올렸고 그렇게 섭정을 지속하며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동치제 다음으로 황위에 오른 광서제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여인 진비 또한 서태후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안가 청나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놈에 권력이 뭐길래 서태후는 자신의 아들, 조카까지 그렇게 대한것이 이해를 할수가 없네요
허수아비로 평생을 어머니 서태후에 의해 휘둘리다가 결국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동치제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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