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에서 상국이라는 최고의 벼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 여불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세상엔 굉장히 대단한 장사꾼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임상옥 역시 대단한 장사꾼이었죠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이 인물은 돈으로 나라를 샀던 장사꾼이라고 할수 있을것 같은데요
이 인물은 바로 중국 역사 뿐만아니라 세계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킹메이커 여불위 입니다
명실상부 전세계 역사상 최고의 장사꾼이라 할수 있을것 같죠
그의 아버지도 대단한 상인이었는데요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여불위 역시 수완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는 원래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위나라의 상인으로 태어났지만 이후 여러 나라를 드나들며 그 지방의 특산품을 다른곳에 파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수 있었죠
여불위는 비록 상인 출신이었으나 비범한 통찰력과 수완을 지닌 인물이었는데요
어느날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에 들어가서 장사를 하게 된 여불위는 우연히 한 인물을 보게 되는데 그는 바로 당시 최강대국 중 하나인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의 아들 영이인이었습니다
여불위는 그를 가만히 보면서 "기이한 물건이니 사둘만하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하죠
당시 영이인은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아들이었기는 하지만 생모가 이미 안국군의 총애를 잃기도 했고 형제들도 너무 많았기에 왕이 될 가능성도 없었으며 진나라에서도 버려지다시피 조나라로 인질로 가게 된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진나라와 조나라가 사이가 나빠질수록 영이인의 목숨도 굉장히 위태로웠고, 처우도 굉장히 나빠졌는데 심지어 그는 먹고살 생활비도 턱없이 부족할만큼 궁핍했던 것이죠
영이인이 죽든말든 소양왕과 안국군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요
심지어 장평대전에서 백기가 조나라의 병사들을 생매장 했을때도 조나라 효성왕은 화풀이로 영이인을 죽일수도 있었지만 죽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죽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영이인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물을 여불위는 눈여겨 봤던 것이죠
그리고 어느날 여불위는 영이인을 찾아가 "제가 공의 집을 성대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영이인은 “당신 집이나 성대하게 만드시오.” 라고 말하며 여불위를 시큰둥하게 대했습니다
그러자 여불위는 "저의 집은 공의 집이 성대해진 뒤에야 비로소 성대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이 말에 흥미를 느낀 영이인은 그때서야 여불위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던것이죠
그리고 여불위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천하를 수확할 씨를 뿌리겠다'며 설득했고 영이인에게 전재산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영이인이 자신의 첩이던 조희를 마음에 들어하자 그녀를 바치는 등 정성을 다해 모셨죠
여불위는 일단 자신의 돈으로 영이인이 조나라 실력자들과 친분을 맺게 하는 한편 자신은 진나라로 가서 안국군의 정처였던 화양부인을 만나 그에대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화양부인은 안국군의 정처였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안국군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화양부인은 정실부인이다보니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만약 안국군의 서자가 왕이되면 자신은 모든 권력을 잃을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점을 파고 들려는 생각을 가졌던 여불위는 영이인에게 화양부인을 꼬셔봐라 조언했고 이에 영이인은 화양부인의 언니에게 수많은 뇌물을 보내 포섭했으며 화양부인에게도 뇌물을 주고 환심을 사 결국 그녀의 양자가 되는데 성공했죠
그리고 화양부인은 영이인에게 초나라의 자식이라는 뜻의 '자초'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던 기원전 257년, 진나라 장수 왕흘이 조나라 수도 한단을 공격해오자 이에 개빡친 조나라 효성왕은 영자초를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리는데요
여불위는 병사들에게 무려 황금 600근을 뇌물로 뿌려 영자초를 조나라에서 탈출시켰고 그의 아내 조희와 아들 영정은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250년,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즉위하면서 영자초 또한 진나라로 돌아가 태자가 되었죠
그렇게 여불위의 계획은 어느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양왕이 55년동안이나 왕위에 있었기 때문에 안국군이 왕위에 올랐을땐 이미 나이가 엄청 많았던 것이죠
그런 이유로 효문왕은 왕이 된지 단 3일만에 세상을 떠나버렸고 영자초가 드디어 진나라의 장양왕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불위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죽든 말든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던 서자 출신에 보잘것 없던 왕족인 영자초를 당시 초강대국중 하나인 진나라의 왕으로 만드는 기적적인 일을 성사 시켜버렸죠
이에 장양왕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여불위에게 수많은 땅을 내리고 문신후에 봉했으며 진나라의 승상으로 임명했습니다
여불위는 처음 아버지에게 뿌리겠다고 말했던 '천하를 수확할 씨'가 드디어 발아 한것이었죠
그렇게 그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막대한 부 뿐만아니라 명예까지 거머쥘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장양왕의 명을 받들어 군대를 끌고가 주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고 진나라 정계의 가장 강력한 실세로 거듭났죠
그런데 장양왕 역시 3년만에 죽음을 맞이 하게 되면서 그의 아들이던 영정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훗날 전국을 통일해 첫번째로 황제가 되는 진시황제 입니다
어쨌든 영정이 12살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약 10년여의 기간동안 여불위는 섭정을 하게 되는데 여불위의 능력 또한 뛰어났던 덕에 섭정 기간동안 큰 혼란없이 무난하게 국정을 이어나갔죠
효문왕과 장양왕이 왕위에 오르고 엄청나게 빠른 시간안에 죽어버리자 여불위가 어린 영정을 왕으로 세워 권력을 독차지하기위해 두 왕을 독살했다는 설까지 나돌정도 였습니다
야사에서는 조희가 영이인에게 바쳐질때 이미 임신중이었고 조희가 낳은 아들 영정은 사실 여불위의 아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위해 그랬다는 설도 있죠
어쨌든 영정이 왕위에 오른후 그는 승상보다 더 높은 자리인 상방(상국)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이후 왕의 아버지와 다름없다는 의미로 자신의 칭호를 '중보'(仲父)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왕보다 더한 위세를 떨치게 된 여불위는 많은 신하들을 포섭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집앞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 3천여명을 식객으로 들였다고 하죠
이때 당시 집에서 여러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고용한 사람만 1만 여명에 달했을 정도로 자신만의 친위대를 키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불위는 학자나 선비, 도인 등에게도 후원해주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덕분에 그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는 꽤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당대의 석학들과 신하들로부터 평판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후 여불위는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역사에 남기기위해 막대한 자금과 수많은 학자들을 동원해 <여씨춘추> 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는데요
여불위는 그 책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은 책이라고 자부하며 여씨춘추를 성벽에 진열해 놓고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더하거나 빼면 천금을 주겠다고 말했죠
'일자천금(一字千金)' 이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태후 조희 였죠
조희는 장양왕이 죽고나서 여불위를 계속 유혹하고 있었고 여불위도 조희는 원래 자신의 첩이었기 때문에 둘은 몰래 서로 만나 밀회를 나누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나라의 태후와 불륜을 계속 이어나가는것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여불위는 조태후에게 노애라는 남자를 보내주었죠
노애는 거시기로 수레바퀴를 들어 올릴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던 덕에 조태후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후 조태후 역시 여불위를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애는 얼마안가 장신후에 봉해져 권세를 얻었으며 둘사이에는 두명의 자식까지 낳게 되죠
그러자 노애와 조희는 자신들이 낳은 자식이 진나라의 왕이 되었으면 했고 결국 영정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발각되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얼마안가 진압되었죠
격분한 영정은 노애를 비롯한 그의 삼족을 멸했으며 두 아들도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어머니 조태후는 죽이지는않고 옹이라는 도시에 유폐 시켜버렸죠
이후 노애를 조태후에게 소개시켜준 여불위에게도 불똥이 튀는데 영정은 그를 일단 파면시킨뒤 나중에 사형까지 집행해 여불위의 권력을 빼앗아 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불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원을 요청했고 끊임없이 항소와 상소가 올라왔으며 수많은 학자와 신하들이 그를 변호하자 결국 파면만 시킨 뒤에 지방으로 쫓아내는걸로 마무리 짓게 되었죠
하지만 그가 쫓겨난 이후에도 여불위의 명성과 인맥이 끊긴건 아니었던지라 계속해서 사람들을 그를 찾아 왔으며 심지어 각국의 제후들이 사신과 신하들을 보내 여불위와 만남을 해오던 것입니다
이 소식은 얼마안가 진왕 영정의 귀로 흘러들어가게 되죠
이때 이미 중앙정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던 영정은 여불위에게 여러 다른 나라와 모의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를 씌웠으며 여불위와 그의 가족들에게 촉 지방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때 영정이 보낸 편지를 받은 여불위는 다시 자신이 재기 한다는것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해 결국 짐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이 편지에는 "아버지를 왕위에 올리는 것 빼곤 아무 것도 한것도 없고 나라를 위해서도 한 일도 없으면서 무슨 염치로 중부로 불리며 호사를 누리고 있는것인가?" 라는 식으로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영자초를 왕으로 세운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큰공인데 조희와 노애 사건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모든 권력과 명성을 잃고 그렇게까지 추락해 버린것이 여불위 입장에는 굉장히 울화가 치밀것 같죠
여불위는 죽기전에 나는 죽어서 왕이 되고 싶으니 땅을 왕관삼아 머리가 바닥으로 향하도록 수직으로 몸을세워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훗날 사마천은 <사기> 여불위 열전에서 그를 가리켜 "이름만 알려진 자"라고 평했는데 말그대로 실속은 없고 소문만 번지르르하게 난 사람으로 여불위를 평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미 끝났다고 볼수 있었던 영이인을 왕으로 만들고 자신도 일개 상인에서 상국의 위치까지 간걸 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권력까지 가지고 싶어 한다던데 부자가 아닌 저는 이해할수가 없는 말이네요
지금까지 상인으로 태어나서 상국이라는 최고의 벼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파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 여불위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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