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자신의 후계자로 점 찍었었던 천재 책략가 곽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하고 겨우 살아돌아간 조조는 살아돌아온 부하장수들과 술을 마시다 갑자기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이때 조조는 “봉효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고하죠
그가 말한 봉효라는 인물은 바로 곽가 였습니다
곽가는 38살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이자 조조가 가장 총애하던 책사 였죠
조조는 순욱의 추천으로 곽가를 처음 만났을때부터 "내가 대업을 이루게 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곽가도 "조공이 진정한 나의 주군이시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만큼 둘은 서로 첫눈에 반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곽가가 주군으로 모실 사람을 찾아서 처음 조조를 찾아갔던건 아닌데요
그는 먼저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원소를 찾아갔었죠
하지만 원소를 보고 실망한 곽가는 원소의 신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공은 인재를 등용하는 기틀을 알지 못하고, 일을 처리할 때도 요령이 없으며 결단력이 없어 패왕의 대업은 정하기 어려울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조조에게 찾아갔던 것입니다
곽가는 패왕이 될 자질이 갖춘 주군을 모시고 그 주군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했던 것이죠
그리고 나서 찾아간 조조를 본 곽가는 곧바로 그를 자신의 주군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십분 발휘 하는데요
곽가는 사람이나 사물을 주의깊게 살피는데 굉장히 뛰어났고 그의 판단력과 전략은 매번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조조는 "곽가만이 나의 참뜻을 이해하고 있다"라고 했을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받게 되었죠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대치할때 손책이 허도를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조조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은 이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곽가는 조조에게 "손책은 성정이 불같아서 행동이 경솔하고 천성은 급한데 꾀는 적습니다
강동을 평정하면서 원한을 많이 샀지만 그에 대한 방비가 부실 합니다
손책은 용맹하긴 하지만 위엄이 없어 분명히 소인배들의 손에 죽임 당할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죠
그러자 곽가의 말대로 얼마안가 손책은 허공의 식객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하북과 오환을 정벌할 당시 조조의 여러 신하들이 유표가 쳐들어 올것을 걱정하자 또 곽가 혼자 "사람들과 한담이나 즐기는걸 좋아하는 유표는 절대 우리 뒤를 치지 않을것입니다" 라고 말했으며 조조에게 의탁해있던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려고 허도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곽가는 후다닥 조조에게 달려와서 "유비는 새장에 가두어 두어야합니다, 밖으로 내보내면 반드시 후환이 될것이니 얼른 추격대를 보내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죠
이에 조조는 곽가의 말을 들어 추격대를 보냈지만 이미 유비는 떠난 뒤였으며 이후 조조의 가장 강력한 반대파 세력으로 급부상 하게 됩니다
그만큼 곽가는 원소와 유비, 유표, 그리고 손책 등 수많은 사람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죠
곽가는 사람에 대한 판단 뿐만 아니라 당시 정세를 판단하는 것에도 통달하고 있었는데요
조조가 여포를 공격할때 맹추위와 군량에 대한 문제들로 인해 철군을 하려하자 조조를 설득해 공격을 제안한것도 곽가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고 모두가 말리는 하북 및 오환정벌도 곽가의 말을 듣고 시작했으며 그만큼 조조는 곽가의 말이라면 뭐든지 적극 수용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죠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군은 202년,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하북으로 병사들을 출진시켰습니다
이때 원소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원소의 아들인 원담, 원상군과 여양에서 대치하게 되었죠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약 8개월간 이어진 전투끝에 결국 원상군은 여양을 포기하고 업으로 도망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의 부하들은 기세를 몰아 업을 공략하자는 의견이 굉장히 많았지만 곽가는 다르게 생각했죠
당시 원소가 죽고나서 원담과 원상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툼이 벌어졌는데 조조가 쳐들어오자 다투고 있던 와중에 힘을 합쳐 조조를 막아냈던 것입니다
그걸 정확하게 깨뚫어 보고 있던 곽가는 조조에게 "여기서 군사를 물려 남쪽에 있는 유표를 정벌하는척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것이죠
그러자 조조의 다른 책사들은 기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원소군을 처리할수 있을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것이었죠
그러자 곽가는 "우리가 계속 공격을 가하면 원담과 원상이 서로 도울것이지만 우리가 퇴각하는 척하고 군사를 물리면 반드시 둘은 다툼이 벌어져 저절로 자멸할 것이니 훗날 저들의 상황을 보아가며 그에 맞게 대응한다면 더욱 하북의 평정은 쉬워질것입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에 조조는 곽가의 계책을 받아들여 군사를 물렸고 그러자 곽가가 예상한대로 원담과 원상은 서로 싸움이 벌어져 원담이 원상에게 패해 조조에게 항복해 온것이었죠
이후 조조는 다시 하북으로 군사를 돌려 진격했고 원소의 아들인 원상은 조조군에 패해 오환으로 도망쳤으며 조조는 기주와 청주, 유주, 병주를 아우르는 엄청난 영토를 다 차지하게 된것입니다
이때 조홍이 원상과 원희를 쫓아 오환으로 진격했다가 밑에 유표와 유비가 빈집인 허도를 털러 올까 걱정된다고 조조에게 말했죠
그러면서 다른 신하들 모두 이제 할만큼 했다며 철군을 주장했지만 곽가는 혼자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곽가는 "우리에게 화근이 되는 세력은 원상과 원희입니다
그들은 거리가 멀고 험난한 것을 믿고 별로 방비를 하고 있지 않을테니 지금 공격하면 그들을 완전히 뿌리뽑는데 어려움이 없을것입니다
만약 그냥 이대로 철수했다가 원상과 원희가 힘을 다시 회복한다면 결코 만회 할수 없는 화를 자초하게 될 것 입니다
유표가 유비를 잡아두는것은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자기 땅을 지키게 하려는 것뿐이니 허도를 비우고 오환 공략에 나선다해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것입니다" 라고 말했고 그러자 그를 무한신뢰하고 있던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받아들였죠
그리고 조조군은 원소의 마지막남은 전력을 뿌리 뽑아버리기 위해 오환정벌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는길이 너무나도 험하고 고생이 심하니 결국 곽가가 병까지 들어버렸고 이에 조조는 불안해하며 다시 회군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죠
이에 곽가는 한가지 계책을 조조에게 알려주는데요
그것은 바로 "지금 하지 못하면 다시는 할수 없습니다
지금 고생을 참아야 훗날의 화근을 제거 할수 있으며 더 큰 패업을 이룰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굉장히 신속하게 움직여 적들의 의표를 찔러야 합니다
진군이 느려 저들이 우리가 오고있다는걸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방비를 튼튼하게 할테니 그러면 공략하기가 쉽지 않을것입니다
짐수레는 여기 남겨두고 가볍고 날랜 차림의 군대로 순식간에 진격하여 적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으면 필히 쉽게 승리할것입니다" 라고 조언했던 것이죠
조조는 또 곽가의 계책을 듣고 그대로 실행해 오환 정벌에 성공했으며 원상은 요동까지 도망치게 되었고 얼마안가 요동 태수로 있던 공손강에게 붙잡혀 죽임당하고 말았죠
그러나 오환 정벌이 끝나고 귀환하던 도중 곽가는 병에 걸리고 말았고 38살의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조조는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여러분들은 나와 동년배 이지만 오직 곽가만이 가장 젊어 훗날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후사를 그에게 맡기려 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말을 했었다고 하죠
조조는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곽가를 점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헌제에게 곽가의 공을 상주하며 곽가의 식읍을 늘려주고 정후라는 시호를 내리게 했죠
곽가가 살아있을때 승승장구하던 조조군은 그가 죽고나서부터는 삐걱대기 시작하는데요
조조에게는 곽가 말고도 뛰어난 모사들이 많았지만 동오정벌을 말리던 가후의 조언이나
촉오동맹을 걱정하던 정욱의 조언, 그리고 적벽대전 당시 배들을 서로 잇자 순유는 이를 걱정하는 조언을 올렸지만 조조는 하나도 듣지 않아 결국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모두가 반대해도 곽가의 말이면 무조건 따랐던 조조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것이죠
그만큼 조조는 곽가만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그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던 것입니다
다른 참모들의 말은 잘 듣지 않았던 조조는 결국 적벽대전에서 끔찍한 대 참패를 당했으며 마초와의 전투에서도 굉장히 불안불안하게 전투를 지속하다가 가후의 이간책으로 겨우 그들을 퇴치할수 있었죠
또한 유비에게 한중을 빼앗기면서 조조의 중원 통일의 꿈도 물건너가고 말았죠
그가 죽고나서 조조군이 흔들릴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곽가였지만 훗날 역사학자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요
곽가가 살아있을때 그의 품행이 좋지 못하다며 진군이 여러번 탄핵을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조조는 곽가의 뛰어난 능력을 사랑했었기 때문에 눈감아 주었던 것이죠
또한 워낙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더 판단할 근거가 부족했던 덕에 지금도 썩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곽가가 오래 살았다면 당시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긴 하죠
그랬다면 조조가 중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위나라의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조조가 가장 총애하던 참모, 곽가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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