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조사는 염파와 이목, 인상여 못지 않게 조나라를 먹여살린 명장이었지만 아들 조괄 때문에 인지도가 없는 인물입니다
오늘은 전국시대 조나라에서 염파, 인상여와 함께 조나라를 지키면서 자신의 나라를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만화 킹덤에서만 쓰이고 실제로는 쓰이지 않았던 호칭이긴 하지만 조나라 삼대천으로 유명한 조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사는 원래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던 하급관리였는데 하루는 그가 정치가로 유명한 전국사군자 중 한 명인 평원군의 집에서 제대로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평원군의 집을 관리하던 사람을 9명이나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죠
자기 집의 사람들이 하급관리에게 죽었다는 말을 들은 평원군은 크게 화를 내며 조사를 문책했지만 조사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공처럼 나라에 귀중한 분이 나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신다면 이 나라의 힘은 약해질 것이고 그리한다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하고도 공께서는 부귀영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한편으로는 조사에게 감탄하며 그를 왕에게 천거하게 되죠
이에 조나라 왕이 조사를 등용해서 나라의 세금을 다스리게 하자 나라의 세금이 공정해져서 백성들이 부유해지고 국고가 풍족해졌다고 하네요
기원전 270년 진나라의 호양이 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그 길목에 있는 조나라의 연여를 공격해 왔습니다
조나라의 혜문왕이 명장 염파에게 이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염파는 길이 좁아서 어렵다는 대답을 내놓았죠
다른 장수인 악승도 염파와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하들 중 오직 조사만이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에 찬 혜문왕이 조사에게 의견을 묻자 "그곳은 길이 멀고 험하고 좁은 곳이라 비유를 하자면 두 마리의 쥐가 좁은 구멍 안에서 싸우는 것과 같으므로 용감하고 재능 있는 자가 승리하게 되어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죠
이에 혜문왕은 기뻐하며 조사를 장군으로 삼아 연여를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조나라 군대가 도읍인 한단으로부터 30리 정도 갔을 때에 조사는 먼저 부하 장수들에게 "나에게 계책이 있으니 멋대로 내 작전에 대해 참견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라고 미리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때 진나라 군대는 무안 서쪽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진나라 군대의 북소리와 함성소리가 무안성 안에 있는 집들의 기와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났다고 하죠
정찰을 나갔던 병사 한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와서는 무안을 속히 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조사는 즉시 그를 참수해 버리고는 보루를 단단히 쌓고 28일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첩자가 돌아가서 장수에게 이를 보고하자 진나라 장수는 "한단에서 30리를 떨어졌는데도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보루만 쌓고 있다고 하니 연여는 이제 조나라의 땅이 아니다"라며 기뻐했죠
하지만 그것은 모두 조사의 속임수였습니다
진나라의 첩자가 돌아가자 조사는 군사들에게 즉시 갑옷을 벗게 하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군해서 1박 2일 만에 연여 근처에 도착했는데요
조사가 곧 연여에서 50리 떨어진 곳에 활을 잘 쏘는 군사들을 배치하고 보루를 쌓자 진나라 군대도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조나라의 책사 중 한 사람이었던 허력이 "지금 북쪽에 보이는 산은 그야말로 요충지라고 할 수 있으니 만약 이곳의 정상을 차지하면 이기고 늦게 도착하면 패할 것입니다"라는 조언을 했죠
앞서 자신에게 의견을 냈던 정찰병을 참수한 것은 모두 속임수였을 뿐 원래 조사가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오히려 허력의 의견대로 진나라 군대보다 한 발 앞서 산을 점령했죠
그렇게 요충지를 차지한 조사는 진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했고 이 공로로 조사는 마복군의 칭호를 받았으며 이때부터 인상여나 염파, 평원군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일화들이 기록돼 있는 '전국책'에서는 기원전 269년 조사가 화우지계로 유명한 제나라의 전단과 전쟁에 관련해서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화우지계란 전단이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1000마리의 소떼에 용무늬를 그린 알록달록한 비단옷을 입히고 뿔에는 칼을 매단 후소들의 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면서 당황한 연나라군을 물리쳤던 기발한 전략을 말합니다
전단은 조사에게 "장군님은 전쟁에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데 이렇게 하면 농사를 지을 장정들이 부족해집니다
옛 제왕들은 3만의 군대만으로도 충분히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조사가 싸울 때마다 10~20만이나 되는 많은 군사를 동원하는 것에 반대했죠
하지만 조사는 "당신은 병법도 모르고 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거 같소
명검이라 불리는 오나라의 간장검은 날카로워서 말과 소를 토막 내고 쇠로 된 그릇을 자를 수도 있지만 그런 명검도 기둥에 부딪히면 부러져버리고 바위에다 내려치면 아예 박살이 나버리는데 지금 고작 3만의 군대로 강한 나라의 군대와 맞선다는 것은 마치 칼로 기둥이나 바위를 치는 것과 같소
옛날에는 대부분이 수많은 작은 나라들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성이라고 해도 둘레 300장에 인구 3,000호가 고작이었고 그래서 3만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이었소
하지만 지금은 일곱 강국만이 남아서 수십만 병력을 동원할 수가 있게 되었소"
라고 말하며 옛날과 크게 달라진 현재의 사정을 지적했고 조사의 말을 들은 전단은 크게 탄식하며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조사의 뛰어난 안목과 공정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아들인 조괄과 관련된 일화인데요
조사의 아들 조괄은 신동이라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심지어 조사가 아들과 병법을 논하다가 먼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이론에는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조사는 아들을 장수로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궁금해하며 이유를 묻자 조사는 무릇 전쟁이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데 조괄은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입만 살았을 뿐 실전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니 만약 저 아이가 훗날 장군이 된다면 반드시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대답을 남겼다고 하죠
실제로 훗날 조사가 걱정한 일이 정말로 터지고 말았는데요
진나라와 결전이 벌어진 장평대전에서 조나라의 왕은 진나라군을 잘 막아내고 있던 염파를 대장자리에서 끌어내린 후에 조괄을 그 자리에 대신 임명했고 이후 조괄은 백기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대패한 후 무려 40만이라는 병사가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조나라는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되죠
조사는 염파, 이목 등과 함께 조나라를 지킨 명장이지만 인지도는 저 둘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편으로 조사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시나 조사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장평대전에서 대패한 조괄의 아버지로 알고 있을 뿐 그가 세운 자세한 업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도 많죠
아들인 조괄이 안 좋은 의미로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아버지가 가려진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사의 능력이 염파나 이목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조나라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죠
다만 전국시대 말기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조사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어버린 탓에 거기 참여하지 못하면서 연여전투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그가 가진 재능을 다 펼쳐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염파와 이목에 비해서 낮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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