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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유선. 뛰어난 명군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리석은 암군도 아닌 인물

by 사탐과탐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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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군주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암군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인물 유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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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 후주전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명한 승상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는 도리를 따르는 군주였지만 환관에게 미혹되었을 때는 어리석은 군주였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흰색 실은 일정한 색깔이 없고 물들여질 뿐이다'

 

이는 바로 삼국지 유비의 아들 유선을 두고 말하는 것인데요

그는 아주 지독한 암군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총명한 군주도 아니었으며 신하가 능력이 뛰어날때는 그나마 괜찮은 군주였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암군의 모습을 다분히 보여줬던 인물이죠

 

현재도 중국 속담이나 중국어에서는 바보나 멍청이와 같이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유선의 아명인 아두(阿斗)를 쓰는 경우도 많을정도로 그는 암군중의 암군으로 묘사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촉한의 마지막 황제인 유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유비와 소열왕후 감씨의 아들로 태어났죠

유선이 불과 1살의 나이였을때 조조는 엄청난 병력을 이끌고 유비가 있던 형주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때 유비는 어쩔수 없이 도망을 치는데요

혼란스러운 틈에 유비의 아내였던 감부인과 미부인, 그리고 유선을 잃어버리고 만것입니다 

 

이때 유선은 조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할뻔했지만 조운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죠

삼국지 연의에서는 이 사건에 추가로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조운이 유선을 구해서 유비에게 가니 유비가 유선을 바닥에 던지며 "아이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훌륭한 장수를 잃을뻔했다" 라는 말을해서 조운이 감격에 또 감격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때 유비가 유선을 바닥에 내던지는 바람에 그가 멍청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삼국지 연의에서만 나오는 이야기라서 실제 정사는 아닙니다

어쨌든 이후 유선이 어릴땐, 손부인의 손에 이끌려 오나라로 건너갈뻔했지만 이때도 조운이 나타나 그를 구해주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땐 유선은 세자로 책봉되었고 221년에 유비가 소열제로 즉위하자 그는 태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해 들어갔던 이릉전투때는 혼자 수도인 성도를 지키게 되었는데요

이때 황원이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는 자신의 친위병을 파견해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죠

 

그렇게 무난한 삶을 살다 223년, 마침내 유선은 17세의 나이로 촉한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모든 내외 정치는 모두 승상이던 제갈량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의례적인 일만 맡고 있었죠

그리고 재위기간 내내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여러차례 북벌을 감행 했을때도 모든걸 제갈량에게 맡긴채 유선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34년에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장완, 비의, 동윤 등의 능신에게 국정을 맡겼으며 군사에 관련된 일은 강유가 도맡아 해오고 있었죠

이후 장완과 동윤이 죽고 훗날 비의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스스로 정치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환관 황호를 총애하기 시작하면서 사치스럽고 향락을 즐기기 시작했죠

 

심지어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자 동생이던 유영이 황호를 비판하며 그를 멀리하라고 조언했지만 오히려 유선은 동생인 유영을 멀리하기까지 했습니다

258년이 되자 아예 황호가 모든 정사를 도맡아 하기 시작했는데요

황호는 자신을 비판하던 강유를 제거하기 위해 강유가 여러번 북벌을 실패하면서 나라가 재정이 나빠졌다는걸 이유로 삼아 강유의 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은 강유의 직책을 유지하게 해주었죠

 

당시 촉나라에는 강유를 대체할만한 경험과 재능을 가진 장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유는 자신이 해임당할것이라는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262년 다시 북벌을 감행했지만 실패하자 수도인 성도나 검각을 내버려두고 답중이라는 곳에 짱박혀 주둔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검각 : 위나라가 촉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했던곳)

 

이에 위나라에서는 "촉이 의지하는 인물은 강유밖에 없는데 그가 답중에 주둔 하고있는 틈을 타 지금 공격하면 절반의 힘으로 두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라고 말하며 263년 5월에 촉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강유는 유선에게 "장익과 요화를 보내 양안 관구와 음평 교두를 나누어 지키게 하여 적의 공격을 미연에 방비해야 합니다" 라는 편지를 보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이미 강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유선은 점괘가 좋지 않게 나왔다며 강유의 요청을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강유의 우려대로 등애는 음평 방면으로 우회하는 길을 선택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 작전은 성공해 촉의 수도인 성도의 코앞까지 와버린 것이죠

당시 성도에는 최소한의 수비대만 남아 있었기에 등애가 이끌고 온 군사들을 막아낼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유선은 신하들을 모아 상의 했지만 등애군을 어떻게 막을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없고 오나라로 도망가자 남쪽으로 도망가자라는 주장만 해댔죠

심지어 초주라는 인물은 그냥 지금 위나라에 항복하자고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신하들은 우리가 그동안 위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에 항복을 받아 주지 않을것이라고 했지만 초주는 "오나라가 항복하지 않았으니 우리를 잘 대우해 줄것입니다

만약 남쪽으로 도망가면 반란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잃게 되면 큰 화를 입을것이고 오나라로 가봤자 나중에 오나라가 항복해버리면 우리는 오히려 더 나쁜 대우를 받게 될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얼른 항복하면 작위와 토지를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라며 유선을 계속 재촉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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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결사 항전을 하면서 강유에게 지원을 요청하자고 주장하는 신하는 유선의 아들 유심을 비롯해 고작 몇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촉나라는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져 도망치거나 항복하자는 의견밖에 나올수 없었던 것이죠

 

결국 유선은 등애에게 항복하기로 결정 했고 이에 반발해 북지왕 유심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항전을 주장했지만 항복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항복편지를 등애에게 보냈으며 등애군이 성도 북쪽에 모습을 보이자 유선은 몸을 묶고 관을 등에 맨 모습으로 등애의 진영을 찾아가 항복했죠

 

그렇게 유비와 관우, 장비, 조운 등 여러 장수들과 제갈량, 법정, 장완, 비의 등이 죽을 고생을 하며 이룩한 촉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만것입니다

이후 종회와 강유가 반란을 실패하자 유선은 낙양으로 이송 되었고 그를 따르는 신하는 극정을 비롯해 몇명밖에 없었죠

그리고 유선은 유주 안락현에서 안락공에 봉해져 안락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훗날 사마소는 과거 촉나라의 신하들과 유선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는데요

사마소는 유선과 신하들을 위해 옛 촉한의 춤과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하죠

그러자 과거 촉한의 신하들은 모두 슬퍼했던 반면 유선은 굉장히 기뻐하고 웃으며 가무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마소는 유선에게 "옛날 촉의 생활이 그립지 않소?" 라고 묻자 유선은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즐겁게 해주시니 촉에서의 생활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낙불사촉 : 樂不思蜀)라고 대답했다고 하죠

그러자 사마소는 어처구니가 없던 나머지 가충에게 "사람이 어떻게 저렇기 무정할수 있는가, 제갈량이 살아있었더라도 멸망을 피하긴 힘들었을텐데 강유가 어찌 멸망을 막아낼수 있었겠나"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유선의 신하이던 극정이 유선에게 혹시 사마소가 다음에 또 묻는다면 좀 슬픈척이라도 하라며 귀띔해줬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날 사마소가 연회를 베풀면서 "촉이 생각나지 않소?"라고 유선에게 또다시 물었는데 유선은 극정이 시키는대로 슬픈척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연기를 하려고 해도 전혀 슬프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눈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사마소가 "극정이 시키던가요?" 라고 묻자 유선은 깜짝 놀라며 사마소를 쳐다보더니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빵터져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이때 유선도 함께 웃으며 계속 신나게 놀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사마소는 다시는 유선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렇게 그는 평생을 잘먹고 잘살다가 271년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국지 정사보다 삼국지 연의를 많이 읽은 촉빠인 우리로써는 유선의 이런 태도가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으며 바보에다가 멍청함의 끝판왕처럼 보여지는데요

그런데 유선에게는 이런 부정적인 평가 외에도 긍정적인 평가도 굉장히 많습니다

 

낙불사촉의 일화에서 유선은 사마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를 한 일종의 훌륭한 처세술을 보여준것이라는 주장이 있죠

만약 유선이 눈물 흘리며 촉나라가 그립다고 했다면 사마소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며 사마소는 대낮에 황제를 시해했던 잔인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얼마안가 제거 당할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폭군이나 암군들은 그들이 직접 골때리는 짓을 해댔던 반면 유선은 잘한것도 없지만 잘못한것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의견도 있으며 유선 자체가 굉장히 착해서 제갈량이 죽은후 이막이라는 사람이 제갈량을 비방하자 크게 노하며 즉시 이막을 하옥하고 처형했는데 이는 유선이 화낸 몇 안되는 기록중 하나라고 합니다

또한 군주가 신하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권력을 맡기는건 쉬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유비의 유지를 그대로 잘 이어 남겨준 인재들을 잘 썼고 이후 제갈량이 정해준 그의 후임들 역시 중용하여 오랜기간 촉나라를 유지했던 점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만약 촉나라가 망하기 전에 유선이 세상을 떠났다면 그는 어쩌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을수도 있을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군주였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고 어리석은 인물이라고 하기도 힘든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던 것 같네요

 

현명한 재상이 있을때는 그에게 모든 국정을 맡겨 좋은 정치를 할수있게 가만히 있었고 나라가 망한뒤에는 굉장히 처신을 잘해서 평생 평안한 삶을 살다 갔던 유선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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