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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사마의와 제갈량의 라이벌 전! 정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by 사탐과탐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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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숙명의 라이벌 사마의와 제갈량의 피튀기는 라이벌전의 승자는 과연 누구였으며 정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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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사마의는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라이벌 관계입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사마의가 비록 제갈량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나오기는 하지만 늘 한 수 뒤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때로는 제갈량의 계책에 걸려서 호로곡에서 불타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심지어는 제갈량이 죽은 후에도 그에게 농락당하는 장면까지 나왔죠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에서의 둘의 대결은 과연 어땠을까요?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시죠

 

제갈량은 6년에 걸쳐 총 5차례의 북벌을 나섰는데 그중에서 사마의와 직접 대결을 펼친 것은 4차와 5차 북벌 두 번뿐이라고 합니다 

1차 북벌 때는 장합과 조진이 대장이었고 2차 북벌 때는 학소와 왕쌍이 그 역할을 맡았죠 

3차 북벌 때는 곽회가 등장해서 제갈량과 맞섰는데 제갈량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며 곽회는 무도와 음평을 버리고 퇴각하게 됩니다 

 

결과야 어찌 됐든 1,2,3차 북벌 모두 사마의는 아예 참전한 적이 없었던 것이죠 

그 당시 사마의는 오나라와 맞서고 있었는데 곽회가 패배하면서 촉군이 무도와 음평을 점령하자 위기감을 느낀 위나라에서는 조진과 사마의에게 촉나라 원정을 지시했죠 

하지만 이때 장마가 쏟아지면서 촉으로 가는 잔도가 끊기고 보급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촉군 영토로 들어가기도 전에 실패를 해버립니다

 

그 후 조진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그때부터는 사마의가 촉나라와의 전선을 담당하는 지휘관이 되었죠

230년이 되자 제갈량은 본격적인 침공에 앞서 평소 자신이 믿는 두 장군을 보내서 위군의 사기를 꺾으려 했는데요

바로 위연과 오의를 남안 등지로 진출시켜서 사마의를 먼저 도발한 것이죠

 

이에 사마의는 위군의 에이스 무장인 곽회와 비요를 출전시켜 위연과 오의를 막게 했는데 위연과 오의가 이들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제갈량이 먼저 기선을 제압합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촉군은 본격적으로 4차 북벌을 시작하며 상규라는 곳으로 병사들을 진군시켰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상규라는 지역은 보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식량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촉군에겐 꼭 확보해야 하는 땅이었는데 그 사실을 이미 눈치챘던 사마의는 곽회를 보내 상규에 있는 촉군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제갈량 역시 사마의의 생각을 읽으면서 위연을 앞세워 곽회의 군대와 맞선 끝에 곽회는 또다시 패하며 달아났죠

 

하지만 이번에는 사마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곽회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듯 우수한 위나라 기병을 이용해 강을 건너 험한 지형에 성채를 세우는 작전을 펼친 것인데요

위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막지 못한 제갈량은 결국 상규를 지키지 못하고 본진이 있는 기산으로 퇴각하게 됩니다

 

사마의의 위군은 퇴각하는 촉군을 쫓아 기산까지 따라간 후 그곳에 촉군이 만들어 놓았던 포위망까지 무너뜨려버렸죠

하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군대를 격파하긴 했어도 제갈량은 퇴각하던 군대를 신속하게 수습한끝에 다시 튼튼한 방어진을 만들었기 때문에 사마의 입장에서도 뚫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사마의는 서두르지 않고 지구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때 부사령관으로 참전한 장합은 자신이 약간의 기병을 데리고 촉군의 뒤로 돌아가 적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싶다는 의견을 냈지만 사마의는 장합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가허와 위평이라는 장수가 사마의를 찾아와 "공께서는 촉군을 호랑이처럼 두려워하시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로 위나라군 진영의 분위기는 좋지 않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마의 입장에서도 지구전을 길게 할 상황이 못되었던 것이 비록 촉군도 식량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위군 또한 식량사정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던 데다 사마의의 부하장수들은 싸움을 피하는 상관의 태도에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었죠

 

때문에 사마의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못하고 결국 제갈량과 결전을 치르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고 기산 근처에 노성이라는 곳에서 촉군을 향해 총공격을 퍼붓게 됩니다

사마의의 본대는 제갈량의 본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부사령관 장합의 군대는 왕평의 군대와 승부를 벌였죠

5차까지 이어진 제갈량의 북벌에서 보기 드문 대 회전이 벌어진 것인데요

하지만 제갈량과 위연이 사마의를 격파하고 왕평은 장합을 격파해 버리면서 이 대회전의 결과는 촉나라군의 대승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때 이룬 승리는 제갈량의 북벌 중 가장 커다란 승리였으므로 촉나라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기 때문에 사마의는 다시 자신의 진영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때 익주지방에서 5월부터 큰비가 계속 내리면서 북벌을 나가있던 촉군 병사들에게 군량을 수송하는데 큰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에 군량 수송을 맡고 있던 이엄이 제갈량에게 후퇴할 것을 권하게 되었고 제갈량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결국 촉군이 물러나게 됩니다

물러나는 촉군을 본 사마의는 장합에게 추격을 명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장합은 추격에 반대했지만 사마의는 억지로 장합에게 추격을 강요했고 이에 제갈량이 복병을 배치해 목문도에서 장합을 기습하면서 결국 위의 명장 장합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정사에서는 장합이 반대했음에도 사마의가 억지로 장합에게 추격을 명해서 괜히 장합을 죽게 만들었지만 연의에서는 그 반대로 사마의를 띄워주기 위해서 사마의가 추격하려는 장합을 말리는 것으로 바뀌었죠

 

한편 장합과는 별개로 사마의도 따로 부대를 이끌고 직접 촉군을 추격했는데 사마의의 부대는 장합과 달리 촉군을 격파하면서 엄청난 전공을 올렸습니다

진서 선제기(사마의전기)에 따르면 만 명에 달하는 촉군이 전사했다고 하죠

이렇게 치열했던 4차 북벌이 끝나고 3년의 시간이 지난 234년 제갈량은 마지막 북벌인 5차 북벌을 떠났습니다

 

이때 제갈량이 오나라 손권과 공동작전을 펼치면서 손권은 약속에 따라 합비신성을 공격했고 곧 위나라와 오나라의 싸움이 시작되자 촉군 또한 북벌을 시작했죠

이때 제갈량이 동원한 병력은 약 10만으로 당시 촉나라의 사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대군이었다고 합니다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무공'이라는 곳으로 진출하려 했지만 이미 촉군이 어디로 진격할지 예상하고 있었던 사마의는 이미 무공에 수비대를 배치해 두면서 촉군의 진격을 막았고 이에 제갈량은 '오장원'에 진을 치게 되죠

오장원에 진을 친 제갈량은 강을 사이에 두고 사마의와 대치하게 됩니다

촉군은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고 사마의는 이를 막기 위해 기병을 파견해 촉군을 기습공격했죠

이때 촉군의 맹염이라는 장수가 사마의의 기습공격을 잘 막아내는 사이에 제갈량은 자신이 개발한 연노라는 쇠뇌를 병사들에게 장비시켜 위군의 기병을 향해 활을 쏘게 만들었는데요

 

화살을 한 번에 무려 10개씩이나 발사하는 무시무시한 연노의 위력 앞에 사마의의 군대가 박살이 나버리면서 촉군은 무사히 다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죠

그렇게 강을 건널 다리가 완성되자 제갈량은 사마의의 허를 찔러 최단거리로 그를 공격하는 루트가 아니라 서쪽의 북원이라는 곳을 통해 사마의의 부대를 노리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위나라의 장수들 중 누구도 그런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오직 곽회만이 제갈량이 북원을 침공해올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조금은 뜬금없는 곽회의 의견을 사마의가 받아들이면서 북원에 원군을 보낸 끝에 촉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회심의 작전이 실패했음에도 제갈량은 포기하지 않은 채 이번에는 동쪽의 양수라는 곳을 통해 사마의의 군대를 공격하려 했는데 마치 신들린 것처럼 이번에도 제갈량의 생각을 읽은 곽회가 이번에는 촉군이 양수로 올 것이라고 사마의에게 진언을 올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위군은 양수에 군대를 파견했고 그곳에서도 촉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두 차례 공격이 모두 실패하자 제갈량은 급하게 승부를 내는 것을 포기한 채 오장원 근처에서 둔전을 실시하고 병사들에게 대민지원까지 지시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촉나라의 병사들은 백성들과 어울리며 농사를 지었고 원래 백성들은 군대가 오면 식량을 약탈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병사들이 자신들의 일을 도와주자 촉나라군에 대한 민심이 아주 좋아졌다고 하죠

 

명재상 제갈량이 자신의 진짜 특기를 제대로 살린 순간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승리를 굳히기 위해 지구전을 펼칠 것을 예상하고 이를 오히려 역이용해버린 것인데요

이렇게 촉군이 민심을 얻으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건 위군이었기 때문에 사마의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여자옷과 노리개를 보내 도발하기도 하고 편지로 안부를 묻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사마의를 도발했고 이에 발끈한 위군의 장수들은 사마의에게 출전을 요구했지만 사마의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그들의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죠

이번에는 촉군의 식량이 넉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량 빨로 이기기에도 쉽지 않아 보였지만 하늘은 사마의의 편이었습니다

 

정작 식량이 넉넉해지면서 촉나라군은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던 제갈량 자신의 몸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요

가뜩이나 과로로 몸이 좋지 않았던 제갈량이 손권의 오나라군대가 만총에게 막혀 합비신성 공략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큰 충격을 받은 채 쓰러졌으며 234년 가을에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자신의 모습을 본뜬 나무인형을 만들어 사마의를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그가 후퇴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제갈량의 죽음을 알게 된 사마의가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해 오자 촉군을 이끌던 강유와 양의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북을 울리면서 마치 위군을 공격할 것처럼 대응했고 이에 사마의는 제갈량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해서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고 하죠

이 일화 때문에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았다는 고사가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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