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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헌제. 삼국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불쌍한걸로 여겨지는 인물

by 사탐과탐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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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불쌍한걸로 여겨지는 인물 한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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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시기는 바로 후한 말인데요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은 아닐뿐더러, 권위도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엄연히 후한의 황제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 이죠

 

삼국지를 본 사람들은 다들 잘 아실텐데요

그는 평생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하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한 많던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마무리 하게 되죠

 

오늘은 정말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헌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헌제의 이름 유협으로 영제의 둘째 아들이었죠

그가 태어났을때 이를 시기한 영사황후 하씨가 그의 친어머니였던 왕미인을 살해해버리자 (미인 : 한대 후궁의 직급 중 하나로 귀인 바로 다음) 유협은 효인황후 동씨의 손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굉장히 총명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자랐죠

 

그러다 189년, 그의 형이던 유변이 소제로 즉위하자 유협은 진류왕에 봉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해 9월, 환관이던 십상시들이 대장군 하진을 죽여버린 십상시의 난이 벌어졌고 소제와 유협은 십상시인 장양의 협박으로 그에게 붙들려 궁을 빠져나와 도망치지만 원소의 병사들이 바짝 뒤를 쫓아오는 바람에 장양은 강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았죠

그런데 덩그러니 남겨진 소제와 유협 앞에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동탁이었습니다

 

동탁은 대체 무슨 일인지 그들에게 물었지만 소제가 겁에 질려 말을 잘 하지 못하자 유협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는데 이때 동탁은 훗날 소제를 폐위 시키고 유협을 황제로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리고 황제의 신변을 확보한 동탁이 낙양에 입성했고 얼마안가 소제를 폐위시킨 뒤 8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유협을 황제로 세우니 그가 바로 '헌제' 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동탁이 이미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실권을 장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치 기반도 없고 쉽게 컨트롤 할수 있을것 같은 유협을 허수아비 황제로 세웠던 것이죠

이후 동탁은 헌제를 협박해 상국이라는 최고로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온갖 폭정을 일삼는데도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각지의 제후들이 모여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자 동탁은 낙양을 불태워 버린뒤 장안으로 천도해버렸죠

 

이에 반동탁 연합군도 흐지부지 해버렸고 장안에서의 동탁의 악행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습니다

하지만 허수아비 황제였던 헌제는 그저 동탁의 눈치만 볼수 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날 연합군의 대장이었던 원소가 헌제를 괴뢰 군주로 규정하고 유주목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이 일은 유우의 완강한 거절로 무산되긴 했지만 한 황실과 헌제의 권위는 지하를 뚫고 내려갔고 이후 각지의 제후들은 황제를 개무시한채 각자 군사를 일으키며 군웅할거의 시작을 알렸죠

그러던 192년, 헌제의 신변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여포와 왕윤에 의해 동탁이 살해되고 만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제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나 싶었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바로 동탁이 죽은이후 동탁의 부하들이었던 이각, 곽사, 장제, 번조가 왕윤에게 살려달라고 했는데 왕윤은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야반도주를 하려고 준비를 하던 와중에 '병사도 있는데 그냥 들이 받아버리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이에 그들은 곧장 수도인 장안으로 쳐들어가버렸죠

심지어 이들은 여포와 왕윤을 격파해버렸고 장안을 함락시켰으며 여포는 도망쳐버리고 왕윤은 죽임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헌제의 신병은 이각과 곽사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것이죠

헌제는 겨우 사악한 늑대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이제는 교활한 살쾡이의 손에 들어가는 처지가 된것입니다

이각과 곽사의 횡포는 동탁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는데요

 

이들이 하도 백성들을 약탈하다보니 백성들은 굶주리다 못해 서로를 잡아먹기까지 했을정도로 궁핍해졌는데 이에 헌제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구휼을 하려고 했지만 중간 신하들이 모조리 삥땅쳐버렸으며 심지어 헌제는 자신의 명마들을 팔아서 쌀을 산 뒤 직접 죽을쒀 백성들에게 나눠줬는데 이를 알게된 이각과 곽사는 헌제가 보는앞에서 죽들을 모조리 몰수 해버렸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이각은 헌제에게 "제가 굶주리고 있는 백성입니다" 라고 했다고 하죠

그러자 헌제는 굉장히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각과 곽사에게 아무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각과 곽사가 서로 패권을 잡기위해 분열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전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헌제는 이 일을 기회로 삼아 장안에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게 되죠

그리고 그는 옛 수도이던 낙양으로 걸어가게 되는데 너무나도 힘들고 비참한 행군이 되었습니다

 

약 1년여간 이어진 탈출에 헌제는 극도의 궁핍과 기아를 겪었고 헌제가 탈출한것을 알게된 이각과 곽사가 추격을 하기 시작하자 이를 따돌리기 위해 한겨울 극심한 추위 속에서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기도 했죠

중간지점인 안읍에 도착했을때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은 기껏해야 10여명 밖에 되질 않았으며 헌제가 조회를 열면 그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낄낄댈 정도로 권위는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헌제를 호위하던 인물들은 산적 출신인 인물들도 있었기에 헌제에게 벼슬을 달라고 반 협박을 일삼자 헌제는 그들에게 아무 관직이나 줄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 장안을 탈출한지 1년정도가 지난 196년 가을에 마침내 낙양에 도착했지만 이미 낙양은 모조리 불타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굶주린 헌제 일행은 스스로 밖에서 야생벼를 채취하는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 조차 잘 먹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죠

이때 헌제를 모시러 온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조였습니다

이때 조조는 황건적과 청주병을 흡수한 뒤 여포를 무찔러 강력한 세력으로 급성장 중이었죠

그리고 조조는 헌제를 자신의 본거지인 허도로 데려갔고 이제부터 헌제는 조조의 허수아비가 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조조 역시 동탁, 이각, 곽사와 마찬가지로 헌제는 충성해야할 천자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위한 수단과 명분에 불과했죠

 

그리고 이때부터 헌제는 모든 권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나라의 국사는 모두 조조가 처리하게 되었으며 헌제는 조조가 가져온 문서에 도장 찍는일 밖에 할수 없었죠

그러다보니 제후들이 받은 헌제의 칙서는 조조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헌제도 어느정도 나이가 찼다보니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나날이 강해지는 조조의 세력을 견제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조조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리고 200년에 헌제는 동승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밀서를 내렸지만 결국 조조에게 발각되어 어릴적부터 헌제를 모셔오던 동승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하들이 모조리 죽임당했고 심지어 임신중이던 동귀인까지 헌제가 보는 앞에서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자신도 목숨이 위험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헌제도 벌벌 떨며 눈물만 흘리고 있을뿐 아무것도 할수 없었죠

 

이후 조조는 원소까지 멸망시키며 중원에서 가장 강력한 제후가 되었고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했지만 그의 강력한 세력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212년에 조조는 위공의 자리에 올라 헌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국사를 처리하기 시작했죠

이에 헌제의 황후인 복황후는 조조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부하이던 목순에게 편지를 줘 아버지인 복완에게 전달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복완은 유비와 손권 등 제후들을 모아 조조를 암살하라는 편지를 써서 목순에게 줬지만 지속적으로 헌제와 그 측근들을 감시하고 있던 조조가 목순을 의심해 그를 붙잡아 조사했다가 복완의 편지가 발견되고 말았죠

그렇게 복황후는 조조군에 의해 머리카락을 잡힌채 질질 끌려나오면서 헌제에게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헌제는 울면서 "나 또한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후 복황후는 조조군에 의해 두들겨 맞아 죽었고 복완을 비롯한 수많은 헌제의 신하들이 죽임당했으며 헌제의 아들 두명도 독살당하고 말았죠

 

이후 헌제는 복황후를 대신해 조조의 딸이던 조절을 강제로 황후로 맞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벌어진 이후 헌제는 모든걸 포기한채 조용히 살아가게 되죠

이후 216년 조조가 위왕에 오르고 220년에 세상을 떠나자 조비가 뒤를 이어 위왕에 올랐는데 얼마안가 조비의 신하들이 헌제에게 찾아와 제위를 양위하라며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협박에 못이긴 헌제는 양위를 하겠다며 조비를 직접 찾아갔지만 조비는 양위를 거부하는 척하며 몇번을 거절하다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듯이 제위를 양위 받았죠

그렇게 헌제는 황제에서 산양공으로 격하 되었습니다

헌제가 폐위된 후 유비는 그가 죽은것으로 오해해 제사를 지내고 시호를 내렸으며 221년에는 한나라의 계보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죠

 

그리고 지방으로 내려간 헌제는 그곳에서 백성들을 매우 어질게 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헌제는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보내다가 234년 53세의 나이로 한많던 세상을 등지게 되었죠

어떤 사람들은 '헌제가 태어났을때부터 하황후로부터 목숨이 위태로웠고 이후에는 계속해서 꼭두각시 황제 노릇이나 했으니 양위후 산양공으로 지내던 말년이 헌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평화롭던 때가 아니었을까?' 하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그가 황제로 즉위했을 당시엔 이미 한나라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고작 8살의 아이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상황이긴 했죠

하지만 헌제는 스스로 한 황실을 다시 부응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지금으로 따지면 고작 초등학생의 나이에 무시무시한 동탁을 주살하라는 명령을 내린걸 보면 정말 담대한 가슴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각과 곽사에게 모조리 빼앗기긴 했지만 자신도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재산을 팔아 백성들을 먹이려는 모습에도 성군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황제의 신분으로 한 황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목숨 걸고 장안을 탈출 한 일과 모든 권력을 장악한 조조까지 암살하려고 했던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죠

어릴적부터 총명했고 그간의 행적을 봤을때 만약 제대로 된 시대에 황제가 되었다면 위대한 성군이 될수도 있었을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지금까지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 될수밖에 없었던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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