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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소양왕. 56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중국 대륙 통일의 기틀을 다진 희대의 정복군주이자 명군

by 사탐과탐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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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중국 대륙 통일의 기틀을 다진 희대의 정복군주이자 명군 소양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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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3대 왕이었던 소양왕은 그 유명한 진시황의 증조할아버지로 진시황이 전국시대 통일을 할 수 있게 기틀을 다진 군주로 유명한데요 

그런데 흔히 소양왕을 두고 천하통일의 기반을 놓은 왕, 영토를 크게 넓힌 왕 압도적 카리스마를 자랑한 왕 등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하통일의 기반을 실질적으로 다진 것은 소양왕이 아닌 외척 위염이었으며 그 시절 대표적인 명장인 백기 또한 위염 일파의 인물로서 천거된 장수였다고 합니다 

 

소양왕은 진나라 역대 군주 중 가장 긴 56년의 재위 기간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42년을 위염의 꼭두각시로 보냈기 때문에 딱히 본인의 업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하죠 

그럼 지금부터 소양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소양왕은 기원전 307년 이전 왕이었던 무왕이 갑작스럽게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죠

당시 소양왕은 수도인 함양에서 먼 연나라에 볼모로 있었기 때문에 다른 후계자들에 비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조나라 무령왕과 당시 진나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소양왕의 외삼촌 위염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의 새로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 본격적인 영토확장에 나선 소양왕은 기원전 279년 초나라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2년 후에는 초나라의 서쪽 영토 대부분을 빼앗은 뒤 위나라와 한나라의 정벌에 나섰죠

이렇듯 소양왕이 주변에 있는 위나라, 한나라, 초나라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당시 진나라와 맞설 만한 나라는 제나라밖에 없었는데 소양왕 23년 연나라의 장수 악의가 주도한 5국의 연합군이 제나라를 초토화시키면서 강대국이라 부를만한 국가는 진나라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진나라 혜문왕 때부터의 친분으로 큰 전쟁 없이 지내던 조나라가 국력을 키워 위나라 한나라와 삼진동맹을 맺게 되면서 결국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장평대전이었죠

그리고 장평대전에서 진의 명장 백기가 대승을 거두면서 더 이상 천하에 진나라를 상대할만한 나라는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이후 소양왕은 주나라와 위나라까지 멸망시키며 천하를 복종시키게 됩니다

 

이렇듯 겉으로만 보면 더없이 화려해 보이는 업적을 가진 소양왕이지만 문제는 그가 왕으로 있을 때 실질적으로 나라를 이끈 것은 바로 그가 아닌 위염이라는 인물이었다는 것이었죠

때문에 소양왕 시기의 업적은 대부분 위염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소양왕이 외척 세력 없이 권력을 휘두른 것은 겨우 10여 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마천도 '양후 열전' 마지막에 진나라가 땅을 넓히고 천하를 호령한 것은 모두 양후(위염)의 공적이라 평가했다고 하네요

물론 소양왕도 꼭두각시 신세에 만족할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위염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정작 본인이 그를 대신할만한 능력이 안 됐던 것이 문제였죠

 

때문에 소양왕과 위염 사이의 갈등은 42년이라는 세월 동안 늘 위염이 소양왕에게 양보하듯 재상 자리를 관두고 나면 단 한 번도 위염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대체한 적이 없던 소양왕이 어쩔 수 없이 위염을 다시 기용하는 식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범수의 힘을 빌려 위염을 완전히 숙청한 이후부터라고 하는데요

위염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위염 일파 중에 바로 명장 백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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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백기가 장평대전으로 조나라 병사 40만을 매장한 후 이제 수도 한단만을 코앞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소양왕은 백기를 숙청한 뒤 다른 장수들을 대신 전투에 내세웠고 그들이 모두 조나라군에 박살이 나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나 버린 것이죠

결국 백기 한 명을 숙청한 결과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소양왕 일파는 이미 숙청해 버린 탓에 세상을 떠난 위염과 백기를 제외한 위염 일파를 다시 등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나라는 재기할 기회를 얻고 말았습니다

 

결국 위염과 백기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 탓에 이제는 예전처럼 그들을 다시 등용하는 식으로 상황을 수습할 수도 없었고 반대로 그들을 대체할 만한 인재도 없었던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한 마디로 소양왕의 위염 숙청은 그저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 뒤의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나 그동안 중요한 일을 맡았던 핵심인물들을 대체할 인재조차 준비하지 않은 채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소양왕이 전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소양왕의 재위기간 56년 중 위염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린 기간을 제외하고 본인이 직접 통치를 했던 12년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그동안 위염이 쌓아 올린 기반을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소양왕 일파를 숙청한 이후 자신을 돕던 범수와 함께 기뻐하다 자신이 천거한 인재들이 줄줄이 적군에 항복하는 모습을 보고는 범수와 서로 한탄하는 소양왕의 대화 기록을 보고 있으면 마치 덤 앤 더머를 보듯 저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양왕에게는 위염 일파를 쳐내야 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그의 권력이 제대로 안정되지 않은 재위 초기 시절부터 위염의 누나이자 소양왕의 어머니인 선태후가 포함된 위염일파가 소양왕을 무시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 소양왕의 눈에 위염 일파는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인재들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적으로 보였을 확률이 높죠

 

물론 42년이란 시간 동안 위염 일파가 아무 짓도 안 한걸 보면 정작 위염 일파는 권력을 휘두르기는 해도 소양왕의 자리까지 노릴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기록만 봐도 당시 위염이 가진 재산은 왕보다 많았으며 그 외에 그의 추종자들이 벌인 갖가지 부정부패만 봐도 군주인 소양왕에게는 큰 불안요소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오죽하면 범수가 소양왕의 눈에 들게 된 것도 "진나라에 왕이라니? 지금 여기엔 태후랑 태후 오래비 뿐이지!" 라는 말을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는 사실을 소양왕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물론 결과적으로만 보면 소양왕이 희대의 삽질을 하면서 오히려 잘 나가던 진나라를 망쳤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시 국왕이었던 그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군주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위염 일파가 눈엣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을 숙청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서 비판을 받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충신 코스프레를 하던 사람 혹은 진짜 충신이더라도 대를 이어가면서 권력이 강해지며 군주의 권위를 넘어서게 되면 결국은 군주를 몰아내는 사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니 지금 자기 대에는 충성을 하는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2대, 3대째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권력이 커지면 언제 자신이나 후손을 왕위에서 몰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 것이죠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나라의 왕이라는 신분을 가진 소양왕이 자신의 권위를 넘보는 외척과 권신들을 숙청한 것은 어찌 보면 필요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이후 벌어진 결과와 그에 대한 대처가 너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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