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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왕전. 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장군

by 사탐과탐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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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가 천하통일을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무장으로써나 정치인으로써 최고의 기량을 펼친 장수 왕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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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0년 천하통일의 첫걸음을 시작한 진왕 영정은 10년 뒤인 기원전 221년에 여섯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우며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의 천하통일에는 두 개의 유력 가문이 큰 공을 세웠는데 바로 왕 씨와 몽 씨였죠 

 

몽 씨는 몽무, 몽염으로 대를 이어가며 진시황제를 도와 천하통일의 초석을 마련했고 왕 씨는 왕전, 왕분, 왕리로 이어지는 3대가 진시황제의 최고 공신이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장군 왕전은 진시황 최대의 조력자였다고 합니다 

 

왕전은 타고난 용병술과 군사학으로 진나라 군대를 지휘해 6개국 중 조나라와 초나라를 제압했고 그의 아들인 왕분은 위나라와 연나라, 제나라를 차례로 정복해 천하통일을 완성시켰죠 

왕전, 왕분 부자야말로 실로 진시황에게는 절대 공신인 셈인데 특히 왕전은 장군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처세술 또한 뛰어났다고 하네요 

 

왕전은 전국시대 진나라 빈양 출신으로 그의 출생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록으로 봐서 진시황보다는 나이가 많은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왕전의 집안은 대대로 무관으로 병법에도 통달한 데다 경전까지 익히는 등 문무를 두루 갖춘 명문이었다고 하죠 

병법과 용병에 재주가 많은 왕전은 일찍이 군부에 진출해 영정이 진왕으로 있을 때 장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진왕 영정은 본격적으로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천하통일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요

기원전 236년 왕전은 영정의 명령으로 조나라를 침공했는데 당시 조나라는 장평 대전으로 인해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조나라에는 명장 이목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기에 조를 멸망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 전쟁의 기록이 굉장히 간략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자세한 상황을 알기는 어렵지만 사기에 남아있는 조나라 측의 기록을 보면 이목이 왕전을 훌륭히 막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당시 진나라는 나머지 6국을 압도할 만한 강대국이었고 진나라의 군사력 또한 장평대전의 참패 이후 약소국으로 전락해 버린 조 군보다 훨씬 강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런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금방 함락되지 않은 걸 보면 이목 또한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 장수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왕전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지키는 이목의 수비를 뚫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판단한 끝에 조나라의 대신 곽개를 매수하는 작업에 들어갔죠

머지않아 곽개의 입에서 이목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조의 유목왕 또한 이목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소문을 들은 조나라의 장군 사마상이 나타났죠

사마상은 진의 계책에 넘어간 대신들에게 크게 분노하며 유목왕에게는 만약 이목을 죽인다면 조나라는 크게 위태로워질 것이고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간언을 했지만 유목왕은 오히려 사마상을 파직시키고 이목을 처형시켜 버리는 어리석은 수를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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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이목이 사라진 조나라는 그로부터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수도 한단이 왕전에게 함락되면서 그 운명을 마감하게 되죠

조나라가 멸망하자 연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벌여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기원전 227년에 형 가라는 자객을 보내 진왕을 암살하려고 했지만 결국 형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분노한 진나라는 연나라에 보복하기 위해 왕전과 신승이 지휘하는 군대를 출진시켰고 왕전이 지휘하는 진군은 연나라군을 두 차례 크게 격파한뒤 기원전 226년에는 연나라의 도성 계를 함락시켜 연나라를 멸망시켰죠

연나라의 왕 희는 요동으로 도망쳤지만 남아있던 연나라의 세력은 기원전 222년 제나라가 멸망되기 전 대나라와 함께 왕전의 아들 왕분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기원전 224년, 시황제는 신하들을 소집해서 초나라 정벌을 위한 계획을 의논했는데요

회의에서 왕전은 초나라를 정벌하려면 적어도 60만은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신은 20만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에 진왕은 이신의 손을 들어주었고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 왕전은 퇴직하고 빈양으로 물러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사기'의 '백기왕전열전'에 의하면 진왕이 왕전과 이신의 말을 동시에 듣고 왕전도 늙었다고 평하며 이신을 칭찬하고 그의 의견을 택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지만 진왕이 왕전과 이신을 은밀히 불러 셋이서만 만났던 게 아니라면 왕전은 보는 눈이 많은 조정 한복판에서 왕에게 대놓고 늙었다며 구박을 받았다는 말이 되는데요

 

만약 진왕이 왕전과 이신을 은밀히 만났다고 하더라도 젊은 이신이 보는 앞에서 왕전을 구박한 시점에서 왕전의 입지는 크게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어느 쪽이든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왕전이 위기를 느낄 만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출전한 이신과 부장 몽염의 20만 대군은 초반에는 초나라를 상대로 계속 승리를 거뒀지만 머지않아 초의 명장 항연의 책략에 걸리며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진왕은 왕전을 직접 찾아가 다시 복귀할 것을 청했죠

그런 진왕에게 60만 대군을 요구해서 승낙을 받은 왕전은 몽무를 부장으로 삼아 초나라를 정벌하러 출전했는데요

그런데 무려 60만이나 되는 대군은 당시 진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이었기 때문에 평소 의심이 많던 진왕은 내심 왕전이 반역을 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이를 눈치챈 왕전은 출전하기 전에 자신은 진나라를 위해 싸웠음에도 아직까지 제후에 임명되지 못했다고 호소하며 보상을 얻고 싶다고 말했고 전장에 나가서 초나라군과 대치하는 동안에도 수차례 사자를 보내서 자손 대대로 먹고살 수 있는 많은 토지와 저택을 보장해 달라고 진왕을 재촉했죠

옆에서 이를 본 부하들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고 왕전에게 묻자 왕전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반란을 걱정하는 진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라 답했다고 합니다

 

만약 자신이 진나라를 통째로 먹을 생각이라면 굳이 왕에게 계속해서 보상을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왕의 자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하찮아 보이는 재물들을 요구함으로써 자신은 나라를 집어삼킬 야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재물에만 집착하는 늙은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죠

또한 왕전이 이렇게 사자를 보내면서 시간을 끈 것은 단지 자신의 목숨만을 걱정해서 한 행동만은 아니었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장기전을 계획하고 있었던 왕전은 이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사기가 오른 초나라군을 약화시키고 쉴 새 없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지쳐버린 진나라군을 쉬게 하다가 단번에 승부를 보려고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만약 이렇게 장기전을 할 경우 군주에게 의심을 받아 계획이 틀어질 위험이 매우 높았다는 점인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전 세대에는 그렇게 의심을 받은 염파가 교체되는 바람에 허무하게 결판이 난 장평대전에서도 그랬고 왕전 본인도 수비만 하던 이목이 조나라 조정의 신뢰를 잃는 바람에 제거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똑똑히 본 사람이었죠

때문에 염파와 이목과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왕전은 진왕을 안심시켜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왕전의 계책이 제대로 먹혀들어가면서 진왕은 왕전을 교체하지 않았고 왕전은 초나라군을 상대로 1년 동안 장기전을 벌일 수 있게 됐죠

 

초나라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진나라의 병사들은 돌 던지기 놀이나 멀리뛰기 시합을 할 정도로 체력을 회복했고 이 소식을 들은 왕전은 이제야 싸울 수 있겠다고 판단한 채 조용히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초군은 수차례 싸움을 걸어도 진군이 응하지 않자 결국 후퇴했고 기회를 잡은 왕전은 단 한 번의 전투를 걸어 초군을 완전히 격파해 버렸죠

 

이후에는 최후의 저항을 하던 항연과 창평군까지 죽인 왕전은 수도까지 점령하면서 완전히 초나라를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왕전은 무성후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인 왕분 또한 위나라와 제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왕 씨 가문은 몽오, 몽무, 몽염으로 이어지는 몽씨 가문과 함께 진나라 군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 되었죠

 

왕전의 생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가 백기, 염파, 이목과 달리 굉장히 처신을 잘했고 정치력이 뛰어난 장군이었다는 점인데요

그 당시의 장군에게 왕과 밀고 당기기를 잘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치력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한신을 비롯한 수많은 명장들이 처신을 잘못한 까닭에 왕에게 숙청당하며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것을 보면 말이죠

왕전보다 더 큰 공을 세운 백기는 장평대전 이후 벼슬에서 쫓겨난 뒤 유배당하는 수모를 겪다 마지막에는 자결하라는 명령까지 받았고 염파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밀려나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다 결국 쓸쓸히 죽었으며 이목도 곽개의 모함을 받아 죽었던 것에 비교해 보면 왕전은 그야말로 처세술의 달인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나라를 상대로 장기전에 들어갔을 때 왕전이 병사들과 같이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줬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을 보면 병사들과의 관계마저 좋았던 훌륭한 장수였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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