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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주유. 사실 제갈량에게 크게 관심없었던 삼국지 연의 최대 피해자

by 사탐과탐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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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연의에서 제갈량을 띄워주기위해 심하게 너프 먹은 주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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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서 오나라의 장수중 가장 뛰어났다고 알려진 장수는 주유입니다

그런데 이 주유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뛰어난 외모와 지력을 갖춘 유능한 인물로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두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한 밑밥에 불과했죠 

 

이토록 뛰어난 주유가 늘 제갈량에게 당하기만 하면서 열폭만 하다가 결국 자기 무덤을 파면서 죽을 정도로 제갈량이 뛰어났다 라는 나관중의 주장을 위해 희생된 비운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실제 주유는 제갈량에게 그런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하죠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역사 속 주유의 모습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주유의 집안은 그의 고조부와 증조부에 이어 아버지까지 대대로 높은 벼슬자리를 지냈을 만큼 알아주는 명문가였다고 하죠

동탁 토벌전 당시 손견이 의병을 일으킬 때 손견은 그의 집과 가족을 수춘으로 이주시켰는데 손책전에 따르면 당시 10살이었던 주유는 그와 동갑이었던 손견의 아들 손책의 명성을 듣고 손책을 찾아가서는 자신이 사는 서현으로 이주해 살 것을 권했고 손책이 이 말을 따라 모친 무열황후를 데리고 서현으로 옮겨가 살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손 씨 가문과 인연을 만들게 된 주유는 길 남쪽의 큰 저택을 손책에게 주고 그의 어머니에게도 극진하게 대했기 때문에 동갑인 손책과 주유는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유는 매우 잘생긴 외모를 가진 데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악사들이 연주하는 곡조가 틀리기라도 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돌아봤기 때문에 강동에서는 '곡조를 틀리면 주랑이 돌아다본다'라는 말도 있었다고 하죠

 

그러던 192년 손견이 유표와의 싸움도중에 죽자 손책은 원술 밑으로 들어가 벼슬살이를 하게 됐고 이후 원술 군과 유요군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손책도 그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병사를 받아 강동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유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손책의 아래로 들어와 그가 유요와 싸워 이기는 데 도움을 주었고 199년에는 손책과 함께 여강태수 유훈을 무찔러 여강을 점령했으며 유훈을 돕던 강하태수 황조마저 격파한뒤 예장과 영릉을 평정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200년에 손책이 죽고 남동생인 손권이 그 뒤를 잇게 된 후에도 주유는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손 씨 가문을 섬겼으며 206년에는 마둔과 보둔이라는 무리를 쳐서 그 우두머리의 목을 벤 후 포로 1만여 명을 잡아왔으며 황조가 등룡을 보내 시상현을 공격하자 맞서 싸운 주유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 등룡을 사로잡아 오로 압송하는 등의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208년 드디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펼쳐지게 되는데요

연의에서는 주유가 조조에게 항복하는 쪽에 서는 척하다가 제갈량의 도발에 넘어가 화를 내면서 조조와 싸울 것을 결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주유는 처음부터 조조와의 싸움을 주장했다고 하죠

형주의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수십 만의 병사를 가지게 된 조조는 뒤이어 강동으로 눈을 돌리며 손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에 손권이 신하들을 불러 모아 의논을 했는데 손권의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신하들은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주장했죠

그중에서 노숙만이 반대하며 파양에 있는 주유를 불러들이게 했고 손권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주유는 충분히 조조를 이길 수 있다며 위나라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면서 적벽대전이 시작됩니다

 

손권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3만의 병사들 중 주유와 정보에게 각각 1 만씩을 나눠주었는데요

정보는 평소 자신이 주유보다 나이가 더 많으며 손 씨 가문을 위해 일한 시간도 더 길었다는 이유로 주유에게 자주 모욕을 줬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둘의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유는 항상 정보에게 예의를 잃지 않았고 결국 정보도 주유의 그런 태도에 감동하여 그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그만큼 실제 역사에서의 주유는 외모나 능력 성격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인물이었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얼마 후 유비와 주유가 만난 자리에서 유비는 오나라의 군사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고 이에 주유가 3만 명이라고 대답했죠

유비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던 연의와 달리 실제 역사에서 유비는 적벽대전에도 직접 참전해 조조군을 격파하는데 주유 못지않은 공을 세웠으며 군사 또한 2만 명이나 데리고 왔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형주에서 도망 다니던 자신도 2만 명의 병사를 데려 왔는데 훨씬 큰 오나라에서 3만 명밖에 동원하지 않자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주유는 걱정하지 말고 내가 적을 격파하는 거나 보라며 유비에게 큰소리를 칠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다고 하죠

 

마침 오나라와 적벽에서 대치중이었던 조조군 사이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이후 벌어진 첫 전투에서 오 군에 패하기까지 하면서 위나라군은 장강 북쪽으로 잠시 물러나게 됩니다

이때 황개가 화공으로 적을 공격할 것을 제안하자 그 제안을 받아들인 주유는 수십 척의 배에 기름을 부은 풀을 가득 싣고 황개에게 거짓 항복을 하는 역할을 맡겨 출진시켰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항복을 하는 척 위나라군 본진에 도착한 황개는 끌고 온 배를 풀어 사방에 불을 질러댔는데 때마침 동남풍까지 불면서 바다 위에 떠있던 배는 물론 육지에 있는 진까지 모두 불타버리게 되고 결국 적벽대전은 조조군의 대패로 끝나게 됩니다

이후 조조가 북쪽으로 물러나고 조인에게 형주의 수비를 맡기면서 주유와 조인의 대결이 펼쳐진 남군 공방전이 시작됐는데요

 

머지않아 주유와 조인은 결전을 치를 날을 정하고 정면대결을 벌였는데 주유가 전투에서 직접 말을 타고 지휘하던 중 날아오는 화살에 맞으면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심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주유가 부상이 심해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인은 주유 군을 공격했지만 주유가 고통을 참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맞서 싸운 끝에 결국 전투는 위나라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이후 주유는 1년간의 공방과 유비와의 연합 끝에 결국 조인을 무찌르고 남군을 얻게 되죠

연의에서는 주유가 조조와 치고받아 대군을 박살 내놓자 제갈량이 주유의 급한 성질을 이용해 주유와 형주 군대의 힘을 잔뜩 빼놓고 그 틈을 타 남군과 형주, 양양을 꿀꺽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결국 주유는 군사는 군사대로 낭비하고 소득은 하나도 없는 원통함을 견디지 못하다가 조인과의 대결에서 입었던 부상이 악화되어 금창이 터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주유 군과 유비군이 협력해서 강릉을 점령한 후 유비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주유가 남군의 남쪽 땅을 쪼개 유비에게 줬는데 그럼에도 유비는 땅이 부족하다고 여겨 손권에게서 형주의 4군까지 빌리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마지막으로 주유가 죽는 과정 또한 연의에서 각색이 많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연의에서는 주유가 서천을 점령하러 가는척하며 유비를 공격하려다 오히려 제갈량에게 거꾸로 당하면서 분을 참지 못한 끝에 피를 토하고 죽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주유가 원한 것은 정말로 촉을 점령한 후에 한중의 장로까지 항복시킨 후 마초와 동맹을 맺어 조조와 제대로 겨뤄보겠다는 천하이분지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가 죽은 것은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 아니며 서천 정벌을 위해 병사들을 훈련시키다 병을 얻었음에도 무리하게 강릉을 출발해 이동하다가 결국 파구에서 죽은 것이라고 하죠

지금에 와서는 제갈량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때의 시점에서만 생각해 보면 주유는 제갈량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둘의 위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주유는 유비군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세력인 오나라를 세운 공신 중의 한 명으로 오나라 내에서도 군주 손권 다음가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군주인 손권마저 그런 주유를 지지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죠

 

게다가 실제 역사에서의 주유는 오히려 노숙과 함께 유비군에게 강릉을 내어주는 것을 주도할 정도로 대인배였으며 지난번에 다룬 조인 영상에서 말했듯 조조 본인 외에는 위나라 장수들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던 유비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한 적이 있던 조인을 남군에서 패배시킬 만큼 지휘관으로서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제갈량은 유비가 살아있었던 시절에는 애초에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 적이 아예 없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던 주유가 제대로 된 근거지 하나 없는 유비군의 군사를 하고 있었던 주유 본인과는 급 자체가 달랐던 제갈량을 굳이 시기하거나 질투할 이유가 없었으며 아예 신경을 쓸 필요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의견이 더 많다고 하죠

그런데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 주유는 뜬금없이 제갈량을 질투하고 시기해 공공의 적인 위나라를 토벌하는 것마저 뒤로 미뤄둔 채 끊임없이 제갈량을 견제하면서도 매번 당하기만 하다

 

끝내는 "왜 하늘은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또 낳았는가" 같은 말이나 내뱉고 분통하게 죽는 사람으로 묘사해 놓았으니 이 정도면 주유가 삼국지연의의 최대피해자 중 하나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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