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연의에서는 좀 나약하고 답답한 행보를 보이지만 실제 정사에서는 왠만한 전투에서는 직접 출진해 모조리 썰어버리는등 굉장히 무력과 전략면에서 뛰어나 보이는 유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유비는 삼국지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지만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이 유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은 그 좋은 부하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라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유비를 그런 인물로 묘사했기 때문일 뿐 실제 역사 속에서의 유비는 그야말로 조조의 맞수라고 할만한 인물이었다고 하죠
삼국지 정사를 쓴 진수가 유비에 대해 내린 평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비는 포부가 크고 굳세며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고 능력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데다 선비를 잘 대우하기까지 하니 한 고조 유방의 풍도와 영웅의 그릇을 갖추었던 것 같다
죽기 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제갈량에게 나라를 맡기려 했을 만큼 그의 지극히 공정한 성품은 후대에까지 전해질 아름다운 본보기다
다만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는 임기응변이나 계책을 내는 데는 위무제(조조)에는 미치지 못해 상대적으로 가진 영토는 더 적었다"
사실상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한나라의 건국자 한고조는 당시의 중국인들에게는 타고난 임금의 표본이자 나라의 시조와 같이 존경받는 존재였는데 진수가 적국의 군주인 유비에게 그와 비슷하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극찬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비록 조조보다는 아래로 평가하기는 했지만 진수는 조조를 동시대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보적 원탑으로 평가하는데 그런 진수가 유일하게 조조와 비교하는 인물이 유비인 것입니다
이처럼 유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인덕만 넘치고 실제 일은 부하들이 다 해줬던 바보가 아니라 인덕과 무력, 지휘관으로서의 능력, 책략과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기적인 인물이었다고 하죠
특히 사람 보는 눈은 제갈량보다도 훨씬 뛰어났으며 연의에서 서서나 제갈량의 계책이라고 나온 건 사실은 대부분이 유비의 계책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연의의 가장 큰 피해자가 유비라는 말도 있다고 하죠
그럼 지금부터 실제 유비가 했던 일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연의에서는 유비가 황건적을 토벌해 세운 공으로 안희현의 현위가 됐을 때 뇌물을 요구하던 감찰관 독우를 장비가 두들겨 패고 유비가 그를 말린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를 두들겨 팬 것은 장비가 아니라 유비였으며 독우가 찾아온 것도 뇌물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요
유비는 독우가 병을 핑계로 자신을 만나기를 거절하자 독우를 납치해 으슥한 곳까지 끌고 간다음 그를 나무에 묶어놓고 매질해 죽이려고 했는데 독우가 살려달라고 애걸하자 그를 풀어준 뒤 관직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조조밑에 있던 유비가 황제를 칭하던 원술을 죽인 후 하비를 점령할 때 연의에서는 관우가 서주에서 차주를 죽인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그를 죽인 것은 유비였으며 이후 조조가 보낸 유대, 왕충과의 전투에서도 관우와 장비가 그들을 사로잡은 뒤 유비가 이 둘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왕충과 유대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유비였고 그들을 사로잡은 후 대접하기는커녕 "너희 같은 놈들 백 명이 온다 한들 나를 어찌 대적하겠느냐 조조가 직접 온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라며 오히려 그들을 능욕하고 조조까지 도발했다고 하죠
그리고 연의에서는 조조 밑에 있던 관우가 조조를 떠나면서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하는 과정 끝에 조조가 보낸 장수 채양을 죽여버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실제로 조조는 관우를 쿨하게 보내줬으며 채양을 죽인 것도 관우가 아니라 유비였다고 합니다
유비가 여남에 있을 때 조조가 채양을 보내 이를 공격했는데 이 전투에서 채양은 유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네요
제갈량이 화공을 써 박망파에서 하후돈을 격파했던 것도 실제로는 유비가 한 일이며 이때 제갈량은 아직 유비의 신하가 되기도 전이었다고 합니다
삼국지 촉서 선주 전을 보면 유표가 유비에게 하후돈을 남양군 박망현에서 막으라 지시를 내리자 유비는 복병을 미리 준비해 놓은 후 자신의 진영에 불을 지르고 거짓으로 달아났는데 거기 속아 넘어간 하후돈이 이를 추격하다 복병의 습격을 받고 박살이 났죠
그리고 적벽대전에서도 연의에서는 제갈량과 함께 그저 오 군이 싸우는 걸 구경이나 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주유와 유비가 함께 힘을 합쳐 조조군에게 승리했으며 이후 화용도에서 도망가는 조조를 관우가 놓아줬다는 연의의 기록과 달리 실제로 화용도까지 조조를 추격했던 것은 유비라고 합니다
화용도를 빠져나온 조조는 갑자기 크게 웃으며 "유비는 과연 나의 맞수라고 할만하지만 계책을 쓰는 것이 나에 비해서는 부족하고 늦구나
만약 나라면 일찍이 이곳에 불을 놓았을 것이다"라며 비웃었다고 하죠
잠시 후 유비가 화용도에 불을 놓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고 합니다
서촉을 정벌하는 과정에서도 연의에서는 유비가 어려움을 겪는 도중에 형주에서 달려온 제갈량이 대활약을 하며 성공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제갈량이 관여한 것이 없으며 유비가 직접 서촉장수들을 모두 박살 내버리고 서촉을 접수했다고 하죠
삼국지 촉서 선주전을 보면 유비가 부성을 지키고 있던 유괴, 냉포, 장임, 등현 등을 모두 격파하고 부성을 점령해 버리자 깜짝 놀란 유장은 다시 이엄을 보내 면죽관에서 유비를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이엄은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항복해 버렸습니다
이후 제갈량과 장비, 조운 등이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백제, 강주, 강양등의 지역을 점령하고 낙성마저 격파되자 결국 성도에 있던 유장이 성을 나와 항복했다고 하네요
삼국지 촉서 유장전을 봐도 '212년 유비가 가맹관에 있다가 병사를 돌려 촉으로 향했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 이겼다'라는 기록이 있으니 실제 촉을 정벌한 것은 유비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중에서도 제갈량의 대활약으로 조조군을 격파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조조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것도 모두 유비가 한 일이었으며 애초에 제갈량은 유비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군권에 관여를 한 적이 없다고 하죠
하후연이 죽고 조조가 장안에서부터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전하자 유비는 군사들을 모아 요충지를 지키며 함부로 전투에 나서지 않았고 여러 달이 지나도 조조가 이 요충지들을 점령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사망자만 늘어나면서 결국 후퇴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릉대전에서의 패배 때문에 유비의 군사적 재능을 낮춰보는 경우가 많지만 삼국지를 통틀어 최고의 군사적 재능으로 평가받는 조조조차 끝내 오나라를 상대로 똑같이 크게 참패를 당한 경우가 있었으며 심지어 이릉대전 당시 촉나라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관우 장비 황충 법정 등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제갈량 조운 마초 위연 등은 후방에 남아있었죠
반면 오나라에는 육손을 비롯해 서성 반장 한당 등 재능 있는 지휘관과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장수들이 많았으니 그런 오 군을 상대로 초반에 승기를 가져가며 이릉까지 진격해 냈던 유비의 능력을 오히려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군사적 능력을 종합하자면 유비는 역사적인 명장들과 비교할 정도의 S급 지휘관은 아니지만 연의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전혀 달리 당대 최고의 명장인 조조와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준수한 A급 지휘관이라 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적벽대전 이후부터 이릉전투 전까지는 대부분의 전투를 이겼다는 점에서 왜 그가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라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비에 대해 평하길 진수는 "유비는 항상 조조와 반대로 행동했다 이러한 유비의 행동은 그가 조조에게 대항해서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보다는 조조가 자신을 받아들일 그릇이 아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평했죠
실제로 '방통전'에서 촉에 처음 들어갔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유비가 말하길 '나(유비)와 조조는 물과 불의 관계다
조조가 엄격하면 나는 관대하게 대한다
조조가 책략으로 행동하면 나는 성실하게 행동한다
언제나 조조와 반대 행동을 취해야만 비로소 일이 성취된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유비는 항상 조조와 상반된 모습을 보였는데요
조조가 황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한다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유비는 일찍이 원소가 써먹었던 '한나라의 역적 조조'와 맞서 싸운다는 입장에 서기도 했죠
또 유비는 여기에 더해 자신이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점을 들어 한 황실을 다시 일으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끝까지 조조에 대항했습니다
이런 대의명분을 들고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유비는 조조 입장에서는 가장 강대한 적이었던 원소 이후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라 짐작되죠
실질적으로도 유비는 원술 토벌을 이유로 조조의 세력을 벗어난 것을 시작으로 촉나라와 형주를 차지하는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 등으로 늘 조조를 괴롭히며 그가 통일 군주가 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조조는 유비를 가리켜 자신과 함께 천하의 단 둘 뿐인 영웅이라 말했으며 적벽에서 패한 뒤에도 유비는 나의 영원한 맞수라고 평가했고 유비는 언제나 그런 조조와 반대되게 행동했죠
이러한 점들을 보면 그들은 항상 서로가 상대방을 의식하는 라이벌이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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