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는 왕전, 염파, 이목과 함께 춘추전국시대 4대 명장으로 불리는 전투의 화신이었습니다
만화 킹덤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나라들 중 최후의 승자는 바로 진시황의 진나라라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오늘은 이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공을 세우며 그야말로 일등공신이라 불릴만했던 한 인물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바로 한신과 함께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장군으로 꼽히는 백기입니다
진나라는 기원전 306년에 왕위에 올라 기원전 251년까지 무려 55년간 재위한 소양왕 때 이미 천하통일의 기반을 만들어뒀죠
소양왕이 마련한 진나라의 강력한 군대와 드넓은 영토 비축된 군량 등은 고스란히 시황제에게 전달되었고 시황제는 이를 잘 운용해 결국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인데요
소양왕이 이런 천하통일의 기틀을 쌓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백기입니다
소양왕은 백기를 활용해 크고 작은 수많은 전투를 벌여 다른 6개국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동시에 진나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죠
즉 진 시황제의 천하통일은 1대 소양왕과 백기를 거쳐 2대인 시황제와 왕전, 두 콤비의 활약이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백기는 왕전, 염파, 이목과 함께 전국시대 4대 명장으로 불리는 전투의 화신으로 그는 약 30여 년간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약 100만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병사를 죽인 무시무시한 장군이었죠
소양왕에게서 무로써 세상을 편안케 한다는 '무안군'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백기의 눈부신 활약으로 초나라는 수도를 옮겨야 했고, 조나라는 군사력의 대부분을 상실했으며 한나라, 위나라 등은 창을 거꾸로 들고 항복할 정도였습니다
용병술과 전투 지휘에 있어 절대적인 고수였던 그는 진나라 군사들에게는 승리의 보증수표이며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죠
오죽하면 조나라 백성들은 백기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294년 좌서장에 임명되어 한나라 산성을 공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백기는 다음 해에 한나라와 위나라 연합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서 무려 24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적장까지 포로로 잡았으며 이후 한나라의 성 5개를 함락한 뒤 황하를 건너 한나라 중앙을 휩쓸어버리는 어마어마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요
기원전 292년 위나라까지 공격한 백기는 총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성을 점령해 위나라를 거의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그의 매서운 공격은 한나라, 위나라에 그치지 않았죠
당시 남쪽에 터를 잡은 강력한 세력인 초나라 역시 백기의 공격에 수도 영성이 함락되면서 결국 수도를 옮기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엄청난 활약을 한 탓에 백기는 진나라 소양왕과 군사들에게는 나라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다른 6개국에는 공적 1호가 되었다고 하네요
때문에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까지 끌어들여 오로지 진나라와 백기를 상대하기 위한 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백기를 당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백기는 세 나라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13만 명을 몰살시키고 조나라의 장군 가언과는 따로 일전을 벌여 조나라 군 2만 명의 목을 베었죠
이 공으로 백기는 태위가 되었고 전국시대 모든 국가들은 백기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백기는 멈추지 않고 곧바로 한나라 형성을 공격해 5개 성을 점령하는 동시에 한나라 군 5만 명을 몰살시켜 버렸죠
그가 한번 출전하면 너무나도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면서 그에게 '인간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고 그때부터 백기라는 이름은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260년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이자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던 장평대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전쟁의 시작은 바로 상당이라는 땅이었죠
상당은 황하 북쪽 지역으로 각 제후국과 연결되는 요충지였는데 이 상당 땅 대부분은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약체로 평가받는 한나라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는 평소 이 상당 지역을 탐내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곳만 장악한다면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비롯해 조나라와 초나라까지 제압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었죠
때문에 진나라는 틈날 때마다 상당을 계속 공격했고 한나라는 진나라 군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거의 진나라에게 항복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된 상당의 태수 풍정은 평소 친분이 있던 조나라에게 상당의 땅을 주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항복을 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제안을 받은 조나라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죠
물론 상당을 얻으면 중요한 요충지를 장악하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강력한 진나라와 일전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결국 욕심을 이기지 못한 조나라의 왕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진나라 소양왕은 크게 화를 냈죠
조금만 있으면 거의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는 상당 땅을 조나라가 끼어들게 되면서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소양왕은 백기를 대장으로 삼아 즉시 군대를 파견했으며 조나라 역시 백전노장인 염파를 대장으로 한 군대를 출전시켜 진나라군에 맞서게 됩니다
조나라의 장군 염파는 백기와 마찬가지로 전국시대 4대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장평대전에서 전국시대 최고의 공격 고수인 백기와 수비의 달인 염파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 것인데요
염파는 백기가 이끄는 진나라 군대와 야전에서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병사들을 시켜 진을 세우고, 보루를 올리고 방책을 세워 시간을 끌며 버티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조나라 군이 버티다 보면 식량을 보급하는 거리가 긴 진나라 군이 불리해질 것이고 그러면 진나라 군을 기습할 기회도 생길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런 염파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진나라 군이 아무리 도발해도 조나라군이 움직이지 않자 아무리 천하의 백기라도 방법이 없어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범수가 한 가지 계책을 냈죠
먼저 엄청나게 많은 뇌물을 조나라 조정에 뿌린 뒤 "진나라 군은 사실 염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조나라 명장 조사의 아들인 조괄이 새로운 대장으로 올까 봐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소문을 조나라에 퍼뜨리기 시작했는데요
결국 그 소문은 조나라 효성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적과 제대로 싸우지 않은 채 시간만 끌고 있는 염파의 소극적인 작전에 불만을 갖고 있던 효성왕은 마침내 염파를 불러들이고 젊은 장군 조괄을 새 대장으로 임명해 버렸죠
진나라의 거짓 소문을 듣고 우쭐해진 조괄이 정면으로 백기의 부대와 대결을 시작하자 진나라 군은 마치 그들이 서서히 밀리는 척하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난 조괄은 병사들을 끌고 백기의 뒤를 쫓기 시작했고 계속 추격하던 조괄이 이끄는 부대와 본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죠
그 순간 백기가 미리 매복시켜 둔 별동대가 본대와 조괄 부대의 사이를 끊어버린 후 조괄이 도망갈 길을 막아버렸고 조괄은 포위망을 뚫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한 채 진나라 병사들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 떨어지자 조괄은 어차피 굶어 죽을 바에는 한바탕 싸우자며 결사대를 이끌고 진나라 본진으로 쳐들어갔지만 결국 패했고 그 과정에서 조괄이 전사하자 조나라 군 40만 명은 모두 포로가 되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백기는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년병 240명을 제외한 40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버리는 너무나도 끔찍한 대학살을 저질러버렸죠
물론 중국 특유의 과장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학살을 당했다는 걸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만 1995년 5월 산서성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백기의 조나라 군 학살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희생자들의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요
장평대전 이후로 백기는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죠
장평대전에서 승리한 직후 백기는 바로 조나라 수도인 한단으로 쳐들어가 그들을 멸망시키자고 주장했지만 재상인 범수는 자신의 정적인 백기가 계속해서 공을 세워나가면 결국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게 되면서 훗날 자신에게 보복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백기가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소양왕을 설득해 몇 달 이후에나 한단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백기 없이 한단을 공략하는데 실패하자 소양왕은 다시 백기에게 병사들의 지휘를 맡기려고 했지만 계속 병을 핑계로 대면서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던 백기는 "진나라가 내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라면서 비아냥대기까지 했다고 하죠
결국 그의 말은 소양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분노한 소양왕은 백기를 귀양 보낸 후 자결할 것을 명하게 됩니다
그렇게 전국시대의 모든 나라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백기는 명성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최후를 맞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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