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인 우씨왕후와 결혼해서 고국천왕에 이어서 고구려 왕위에 올랐던
산상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구려의 제10대 왕인 '산상왕'의 이름은 고연우이며
8대 국왕인 '신대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신대왕에게는 모두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9대 왕이 되는 고국천왕 고연무이고 둘째가 고발기
셋째가 고연우 넷째가 고계수였죠
신대왕이 죽은 후 고국천왕이 그 뒤를 물려받았고
고국천왕은 서기 197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고국천왕이 후계자를 두지 않은 채 죽었기 때문에
왕후였던 우 씨는 형사취수제의 관습에 따라
왕의 동생인 고발기와 고연우 중 한 명을 선택해 그와 혼인하고
자신의 남편이 되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해야 했죠
그래서 우 씨는 고국천왕의 죽음을 비밀로 한채
신대왕의 둘째 아들인 고발기를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고발기에게 현재 국왕께서 후손이 없으니
고발기가 다음 왕위를 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졌죠
하지만 고발기는 왕이 죽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왕의 부인이 이런 늦은 밤에 다니는 것을
어떻게 예라고 할 수 있겠냐며 그녀를 타박했고
그의 말을 들은 우 씨 왕후는 부끄러워하며 고연우의 집으로 향했죠
고연우는 형과 다르게 그런 왕후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감동한 우 씨는 무뚝뚝한 고발기보다는
부드러운 태도의 고연우가 자신의 남편감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는지
고연우에게 고국천왕이 죽은 것을 솔직히 말하고는
"원래 당신의 형인 고발기가 다음 국왕이 돼야 하겠지만
그가 나에게 너무 무례하고 오만하게 대해서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라고 밝혔죠
고연우도 우 씨의 생각에 동의했는지 그날밤 둘은 함께 궁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우 씨는 선왕의 명령을 사칭해 고연우를 다음 왕으로 추대했는데요
산상왕은 자신이 우 씨 덕분에 왕위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왕후를 따로 세우지 않고 형수인 우 씨를 왕후로 맞이하는 '형사취수제'를 택했죠
아우인 고연우가 자신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고발기는
그제서야 우 씨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분노했습니다
이후 고발기는 곧장 군대를 이끌고 가서 왕궁을 포위한 후에
"왕위는 마땅히 형인 내가 잇는 것이 예법에 맞는 일이다!"라고 외치며
왕위를 넘기지 않는다면 산상왕과 그의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죠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산상왕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산상왕의 아내와 자식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시켜 버렸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산상왕은 아들인 동천왕이 태어날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이나 후계자 걱정을 해야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고발기가 왕위 때문에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산상왕은 그의 아들인 박위거에게 아버지의 죄를 묻지 않은 채
훗날 고구려로 돌아와 남은 생을 보내도록 하는 자비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고발기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산상왕은
궁궐의 문을 굳게 닫은 채로 3일 동안 버티며 항복할 뜻을 보이지 않았고
신하들을 물론 백성들 중 그 누구도 고발기를 따르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죠
산상왕의 아내와 자식들을 몰살시킨 일로 그의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거라 짐작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결국 고발기는 군사들을 물린 후 요동으로 달아나서
당시 한나라의 태수였던 공손도를 찾아갔는데요
공손도를 만난 고발기는 동생에게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주장한 후
자신이 왕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군사들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죠
공손도는 그의 청을 받아들여 고발기에게 3만 명의 군사를 내주었고
고발기는 공손도의 병사들을 끌고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게 됩니다
고발기가 고구려를 공격해 오자 산상왕은 넷째 동생인 고계수에게
군사를 내주고 고발기를 막게 했죠
얼마 후 벌어진 전투는 고계수가 이끄는 고구려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고계수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도망가는 고발기를 추격했습니다
머지않아 고계수가 고발기를 거의 다 따라잡자 고발기는
"동생이 다 늙은 형을 해치려 드느냐?"라고 물으며
형제간의 정에 기대어 도망가려 했죠
하지만 고계수는 오히려 그런 고발기를 향해
"산상왕 형님이 발기형님께 나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이 의롭지 못한 일이기는 하지만
발기 형님은 겨우 그런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발기는 그제서야 자신이 복수심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미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배천'이라는 곳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죠
산상왕은 고발기 때문에 가족을 잃은 후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3년 3월 15일 밤, 산상왕은 꿈에서 하늘로부터
"내가 너의 소후(작은 왕후)에게 아들을 낳게 할 것이니
걱정 말라"는 계시를 듣게 되죠
하지만 당시 산상왕에게는 정실인 왕후 우 씨가 있었을 뿐 소후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5년이 지난 208년에 나라의 제사를 위해 잡아두었던 돼지가
우리 밖으로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고
담당자들이 돼지를 쫓아 관노부의 주통촌이라는 마을까지 갔음에도
돼지를 잡지 못하며 곤란해하고 있었는데
이때 아름다운 얼굴의 20대 여인 '후녀'라는 인물이 나타나
돼지를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산상왕은 5년 전 꿈에서 들었던 소후가 후녀라는걸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한밤중에 신분을 감춘 채 후녀의 집을 찾아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후녀 또한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왕의 명을 감히 거부할 수 없으나 만약 제게 자식이 생기면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했죠
그녀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산상왕은 뜨밤을 보낸 후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우 씨 왕후는 몰래 자객을 보내 후녀를 암살하려 했고
자객의 습격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죽이러 온 사람들에게
지금 내 뱃속에는 왕의 아이가 있는데 너희들이 감히
왕의 아이를 죽일 수 있겠느냐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감히 그녀를 해치지 못한 채 돌아갔고
이후 그녀는 왕궁으로 들어와 산상왕에게 임신소식을 알렸죠
그렇게 시간이 흐른 209년 8월 후녀는 마침내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고구려의 11대 국왕이 되는 동천왕입니다
우 씨 왕후는 고국천왕의 정비로 들어와서 다음 국왕인 산상왕의 왕후가 되는 등
무려 50년 동안이나 고구려 왕실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인데
정작 산상왕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동천왕은 우 씨 왕후가 사망할 때까지
그녀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만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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