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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고발기. 형수와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 고구려 왕자

by 사탐과탐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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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와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 남자 고구려의 왕자, 고국천왕의 동생 고발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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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말,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서는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은 종종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이어졌었죠

이러한 고구려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한 인물이 바로 고발기입니다

 

고발기는 고구려 8대 신대왕의 아들이자, 제9대 고국천왕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강하고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선 넘은 야망으로 인해 모두에게 손절 당해버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로 이어지게 되었죠

과연 고발기는 어떤 야망을 품었던 것일까요?

 

197년 5월, 고구려에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9대 왕인 고국천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죠

그 당시 고구려의 전통에 따르면 왕이 후손 없이 사망할 경우 그의 형제 중 한 명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때 왕후는 '형사취수제'라는 관습에 따라 남편이 죽은 후에도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왕의 형제와 혼인할 수 있었죠

 

고국천왕의 죽음 이후, 그의 왕후인 우씨는 이러한 형사취수제에 따라 고국천왕의 동생인 고발기와 고연우 중 한 명과 결혼하여 새로운 왕으로 세워야 했습니다

우씨왕후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결심했죠

왕이 죽은 사실을 아직 알리지 않은 우씨왕후는 한밤중에 먼저 고발기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고발기에게 "왕에게 후손이 없으니 동생인 발기왕자가 왕위를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어봤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고발기는 왕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씨왕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꾸짖었습니다

"왕의 부인이 밤에 다니는 것을 어찌 예라 할 수 있겠습니까?" 라면서 면박을 주었죠

 

고대 사회에서 왕의 죽음은 곧 권력의 공백을 의미했고, 이 시점에서 섣부른 발언은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왕위 계승과 관련된 문제는 반역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컸기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고발기는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고발기에게 망신을 당한 우씨왕후는 곧바로 그의 아우인 고연우에게 찾아갔습니다

고연우는 형과는 달리 우씨왕후를 환대하며 술자리를 열어 왕후를 맞이했죠

우씨왕후는 고연우의 부드러운 태도에 더욱 마음이 끌렸고 그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대왕이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없으므로, 고발기가 연장자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겠으나, 첩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난폭하고 거만하며 무례하여 당신을 보러 온 것입니다"라고 말했죠

 

그날 밤 우씨왕후는 고연우를 궁궐로 데려가 그를 고국천왕의 후계자로 추대했습니다

고연우는 곧 산상왕으로 즉위했고 우씨왕후는 형사취수제를 통해 왕후 자리를 계속 유지하며 다시 한번 왕실의 권력을 쥐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우씨왕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고발기가 왕위계승 서열이 가장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연우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거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동생인 고연우가 왕위에 오르자 고발기는 자신이 우씨왕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는 곧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포위한 후 "왕위는 마땅히 형이 잇는 것이 예이다!"라고 외치며 왕위를 넘기지 않으면 왕과 그의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왕은 궁궐 문을 굳게 닫은 채로 3일 동안이나 버티며 뜻을 꺾지 않자 고발기는 산상왕의 처자식을 전부 몰살시켜버렸죠

 

그러자 주위의 여론이 산상왕의 편을 드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고발기를 따르는 사람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그의 반란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발기는 식솔들과 함께 요동으로 도망간 후 당시 한나라의 태수이자 동연의 우두머리였던 공손도에게 항복했죠

그는 공손도를 만나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는 군사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후 고발기는 공손도가 내어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갔죠

그렇게 2번째 고발기의 난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심을 넘어, 자신의 나라를 외세의 힘을 빌려 공격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고발기가 요동 공손도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해오자 산상왕은 동생인 고계수에게 군사를 내주면서 침공을 막게 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고계수는 고발기의 군대를 격파해 대승을 거두었고 크게 패한 고발기는 그대로 도주해버렸죠

 

고계수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고발기를 추격했습니다

고계수는 달아나는 고발기를 금세 따라붙었는데 이때 고발기가 "동생이 늙은 형을 해치려드느냐?" 라고 고함치자 형제간의 정이 떠올라 차마 형을 붙잡지 못했죠

 

대신에 고계수는 고발기의 잘못을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연우 형님이 나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것이지만 발기 형님은 겨우 한 때의 분함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

 

동생의 호통에 고발기는 그제서야 자신이 복수심 때문에 두번이나 반란 일으킨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괴로워하다가 배천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죠

 

 

고계수는 죽은 고발기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준 후에 고구려로 돌아갔지만 반역자를 놓아준 것도 모자라 장사까지 치러주었다는 사실에 산상왕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고계수는 비록 잘못했지만 형제라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며 이번에는 산상왕을 꾸짖었죠

동생의 말을 들은 산상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왕의 예로 고발기의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형수에게 뒤통수 맞아서 왕이 되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한나라로 망명해서 외세의 힘까지 빌려 고구려를 침공했던

고발기의 억울함과 분함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을거 같네요

 

그리고 동시에 그가 왕에 대한 열망이 정말 강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고구려 왕이 되지 못해 두번이나 반란을 일으킨 고발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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