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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성씨의 역사. 양반의 자손일까? 노비의 자손일까?

by 사탐과탐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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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에서는 성씨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성씨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19세기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버리는데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성씨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90%가 가짜 족보와 가짜 성씨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성씨 중에서도 김씨와 이씨가 특히 많은데 이 두 개의 성씨만으로 전 국민의 30%가 넘을 만큼 많죠.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이씨 왕씨 장씨를 합쳐도 20%가 안되는 걸 보면 왜 이렇게 김씨, 이씨가 많은지 의문이 들긴 하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연하게도 과거에는 성씨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성씨 따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평민에게는 성씨 대신 '수원에 개똥이', '창원에 소똥이' 이런 식으로 이름 앞에 그들이 사는 지역을 붙이기도 했죠.

하지만 이것도 성씨는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에는 성씨가 불과 10개 정도밖에 없었고 백제 또한 8개, 신라도 역시 8개 정도의 성씨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실 박혁거세나 김알지 등 여러 인물들도 후손들이 성을 붙여서 불렀던 것이지 당시에는 성씨 없이 이름으로만 불렸다 하죠.

 

그러다 신라가 통일을 하면서 고구려와 백제의 성씨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고려시대가 되면서 성씨 사용을 추진하기 위해 성씨가 없는 사람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는 제도가 있기도 했죠.

그래서 고려 귀족들은 급하게 중국의 성씨를 모방해서 족보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한 많은 중국인들이 고려로 귀화를 하기도 해서 새로운 성씨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조선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족과 일부 사대부들에게만 성씨가 있었죠.

그런데 고려가 멸망하며 고려 왕족이 쓰던 왕씨와 고려 시대 때 권력을 가졌던 귀족들은 대부분 숙청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성씨가 사라지기도 했고 고려 왕족의 성씨인 왕(王)씨에 획을 추가해서 옥(玉)씨나 전(全)씨로 고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아예 성을 쓰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조선 초기에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죠.

그러다 갑자기 17세기 이후로 성씨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는데요.

임진왜란을 겪은 후 국가의 재정이 파탄 나자 나라에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을 일삼았습니다.

이때 이름칸이 비어있는 임명장인 공명첩을 굉장히 많이 뿌렸는데 돈만 있으면 천민도 양반이 되고 벼슬을 얻기도 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니 너도나도 집이고 밭이고 다 팔아서 양반이 되었고 이로 인해 성씨를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 성이 없던 사람에게 내일부터 성을 써야 한다고 하면 대개 새로 만들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미 존재했던 성씨를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양반이 되고 성씨를 사용하려는 이유가 천대받고 핍박받던 백성이나 천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는데 만약 새로운 성씨를 쓰면 곧 천한 출신이라는게 증명되었던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시 가장 인기가 많던 성씨는 김씨와 이씨였는데 18~19세기에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성씨라 하면 왕족인 전주이씨와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김씨였죠.

 

사람들은 이왕 성씨를 정하는 김에 강한 권력을 가졌던 성씨인 김씨와 이씨를 선택했던 것이고 또한 몰락한 왕가의 성씨인 김해 김씨, 밀양 박씨, 경주 김씨 등도 가장 인기가 많은 성씨였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양반가의 성씨를 산 사람들은 양반 가문이라면 무조건 있어야 할 족보까지 카피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한 양반가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던 조상들을 베껴 쓰고 그 밑에 자신의 가족들의 이름을 넣는 방식으로 가짜 족보가 만들어졌죠.

 

그러다 보니 유명한 가문의 족보를 입수해서 대량으로 찍어내서 판매하는 일당들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족보 위조의 행태를 정부에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18세기 말부터는 양반들이 스스로 돈을 받고 자기 족보에 이름을 올려주는 기현상까지 나타났죠.

 

사태가 이렇다 보니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족보를 가진 양반가의 자손이 된 것이죠.

임진왜란 이후인 17∼18세기의 조선은 양반이 5%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외에 중인과 평민, 노비층이 95%에 육박했으니 현대의 사람들 중에 5~6대 이상의 조상이 진짜 자신의 조상일 확률은 10%가 안될 정도라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이런 경우도 있었는데요.

어느 한 지방에 가난한 양반이 있으면 그 마을의 백성들이 그 양반에게 돈이나 양식을 주면서 같은 성씨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죠.

심지어 마을 주민 전체가 의기투합해서 다 같이 같은 성씨로 통일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노비들이 면천되면서 주인이었던 양반의 성씨를 쓰기도 했는데 그리고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안동 김씨의 한 권력가의 노비 300여 명은 모두 주인과 같은 안동 김씨를 사용하기도 했죠.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시골에는 유독 집성촌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양반과 성씨, 족보를 산 사람들이 확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17세기 후반에는 조선 인구의 20%가 성씨를 가지게 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70%가 넘는 사람이 양반이 되어 성씨를 가졌죠.

 

그런데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양반과 성씨, 족보를 샀을까요?

그건 예전부터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천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컸습니다.

돈은 많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핍박받고 개무시 당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또한 족보를 가지고 있으면 군역을 면제받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가 1909년 일제는 '민적법'을 실시했는데 당시 경찰들은 각 집을 돌면서 모든 조선인들에게 성씨를 물어보고 다녔고 성이 없는 사람들은 내키는 대로 원하는 성씨를 사용했죠.

이때부터 전 국민이 성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가장 인기가 많던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씨였고 한자를 잘 모르던 백성들은 한자의 획을 한 번 더 쓰거나 덜 쓰거나 해서 이상한 글자를 쓰기도 했죠.

그리고 불과 100년 전인 1921년에 조선에 간호 선교사로 왔던 '엘리자베스 쉐핑'은 말을 타고 전라도 일대를 한 달 동안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녀는

이번에 만난 여성 500명 중 이름이 있는 사람은 10명 뿐입니다.
1921년, 조선 여성들은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 등으로 불립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라고 했을 정도로 이름도 없고 성씨 또한 없었죠.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성씨를 가지고 있는데요.

2015년 한국 성씨 인구 조사를 보면 김씨가 약 1070만 명, 이씨는 약 730만 명으로

두 성씨의 합은 1800만 명에 달하며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35%가 김씨, 이씨라는 것으로 무시무시하게 많죠.

또한 우리나라 전체 성씨는 2000년에는 728개였는데 15년 동안 귀화한 외국인들이 신규로 성씨를 등록하며 2015년에 조사 결과로는 5582개라고 하죠.

 

여담으로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또한 거의 성씨 없이 살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성씨를 만들게 되었는데 조선은 잘나가던 양반 가문의 성씨를 따라 했는데 반해 일본은 독특하게 성씨를 지었죠.

들판에 살면 다나카(田中), 산속에 살면 야마나카(山中), 소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면 마츠시타(松下), 대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면 다케다(竹田)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직업을 나타내는 성씨가 많은데요.

대장장이는 '스미스', 농부는 '파머', 석공은 '메이슨', 제빵사는 '베이커', 방앗간 주인은 '밀러', 나무꾼은 '부시' 이런 식으로 성씨를 지었죠.

현재 일본의 성씨는 12~13만여 종으로 세계에서 성씨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고 중국의 성씨는 12,000~13,000종이 있으며 미국 성씨 역시 수만 가지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성씨는 5,568개로 굉장히 적긴 적죠.

지금은 큰 의미 없는 성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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