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경처였던 강씨는 훗날 신덕왕후로써 조선 최초의 국모가 됩니다.
왕후가 되기 전까진 이방원과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본인이 낳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 이방원을 견제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죠.
신덕왕후가 죽은 후에 이방원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조선시대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 신덕왕후 강씨와 태종 이방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 고려시대에는 향처와 경처를 두는 풍습이 있었죠.
고향을 떠나와 수도 개경에서 살던 정부의 관리들은 고향에 있는 아내인 향처와 개경에 있는 아내인 경처로 아내 따로 두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신덕왕후 강씨가 바로 이성계의 경처였죠.
이성계와 향처인 한씨 부인에게는 여러 명의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죠.
이성계의 아들들은 대부분 무인으로 자랐지만 이방원은 무예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고 과거를 치르기 위해 개경에 살고 있었습니다.
강씨 부인은 경성에서 이방원과 같이 살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이방원의 뒷바라지를 함경도에 있는 첫째 부인 한씨를 대신해서 열심히 했는데 그녀의 도움이 효과가 있었는지 1383년 고려 우왕 때 이방원은 과거시험에 합격했죠.
이성계의 집안이 북방에 국경을 지키는 무사 집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방원이 고작 17세의 나이로 무과도 아닌 문과에 급제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이성계와 어머니 한씨 부인도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하죠.
그래서인지 이방원은 함경도에 계신 친어머니 못지않게 작은어머니 강씨 부인과도 잘 지냈습니다.
이방원은 1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신덕왕후를 때로는 친어머니처럼 따랐을 뿐만 아니라 어쩔 때는 스승으로써 존경했고, 또 어쩔 때는 친누나처럼 사이가 좋았죠.
심지어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을 때도 강씨 부인과 상의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1391년 어머니 한씨 부인이 사망하고 이방원이 시묘살이를 하고 있을 때 정몽주가 낙마사고로 쓰러져있는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했는데 강씨부인은 급히 이방원을 불러 이성계를 지켜 내기도 했죠.
또한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이던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였을 때도 대신을 함부로 죽였다며 이방원을 심하게 꾸짖으며 분노에 차있던 이성계를 말린 것도 강씨 부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이방원과 함께 조선이 건국되는데 많은 역할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강씨부인과 이방원의 사이는 조선이 건국되자마자 급속도로 차갑게 냉각되었습니다.
남편인 이성계가 왕이 되자 자신은 신덕왕후가 되었는데 왕후가 되자마자 이방원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정도전과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의 정치적으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도전과 함께 여러 인사에도 관여해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들과 특히 이방원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죠.
또한 그녀는 이미 죽고 없는 한씨의 장성한 아들들을 밀어내고 자신이 낳은 이방번이나 이방석을 세자로 앉히고 싶었던 것인데요.
정도전과 손을 잡고 이성계를 설득한 결과 1392년 8월에 마침내 자신의 아들인 의안대군 이방석을 세자로 만들었죠.
그러나 한씨의 장성한 아들들이 수두룩한데 후처가 낳은 아들이고 심지어 첫째 아들도 아닌 둘째 아들이 불과 10살의 나이로 세자가 된 사실을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 한씨의 아들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가장 정치적 야심이 컸던 이방원은 크게 분노했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끈끈한 동지였던 두 사람이 조선이 건국되고 고작 한 달 만에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났으니 둘 사이를 잘 알던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방원이 과거 준비를 할 때나 이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겪으며 그의 뛰어난 능력과 정치적 야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덕왕후는 이방원과 동지로써 여러 정치적인 일을 도모할 때도 항상 이방원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던 마음이 왕후가 된 후 그대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이방원은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작은어머니의 달라진 태도와 정도전과 손잡고 자신을 견제했다는 사실은 그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고 크나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흘러 1396년 9월 15일. 신덕왕후 강씨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이성계는 굉장히 슬퍼하며 신덕왕후의 무덤을 경복궁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는데 그녀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아침저녁으로 그녀의 무덤에 향차를 바치게 했고 신덕왕후의 능에 제를 올리는 절의 종소리를 듣고 나서 잠에 들었으며 밥을 먹을 때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불경소리를 들어야 식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398년. 태조 이성계가 병에 걸려 누워있는 틈을 타 이방원은 야망을 대놓고 드러내 놓았죠.
그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개국공신과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이방번과 세자 이방석을 죽임으로써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에 충격받은 이성계는 이방과에게 보위를 물러주고 함흥으로 떠났고 이방원은 넷째 형인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나서 1400년 9월에 보위에 올라 태종이 되었죠.
그로부터 태조 이성계가 죽은 1408년까지 10년 동안은 신덕왕후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성계가 죽자마자 이방원은 작은어머니에 대한 분풀이를 시작했죠.
먼저 그는 경복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던 신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쳐 도성 밖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또한 무덤의 봉분을 없애버리고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어 흔적이 남지 않도록 했죠.
그러고 나서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에 있던 석물들로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사용하게 해서 그 위를 백성들이 밟고 지나다니게 했습니다.
또한 무덤 앞에 있던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성계가 지었던 법당 역시 다 헐어버리고 목재는 태평관을 짓는데 사용되었죠.
게다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 시켰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신덕왕후는 왕비로써 가 아니라 후궁으로써의 예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녀의 묘소가 파헤쳐지는 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하늘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하죠.
태종은 신덕왕후 강씨에 대해 철저하게 짓밟았는데요.
자신이 권력을 잡은 지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 이 모든 일을 한 것을 보면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뼈에 사무쳤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겠죠.
그로부터 173년 후인 1581년. 선조가 행차를 하고 있었는데 강순일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와 하는 말이 신덕왕후의 무덤을 돌보고 있으니 군역을 면제해 달라는 청을 해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태조 이성계의 부모를 비롯한 4대 조상의 묘가 함흥에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묘를 돌보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국묘봉사자라 칭하며 군역을 면제해 주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강순일의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훗날 송시열이 현종에게 상소를 올리게 됨으로써 신덕왕후는 복위되어 종묘에 모셔졌으며 정릉은 왕릉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덕왕후가 왕비로 복권되는 날에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는데 백성들이 '이 비는 그녀의 원혼이 흘리는 눈물' 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현재 정릉은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훗날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병풍석이 발견되면서 '태종이 선덕왕후의 무덤에 있던 석물들을 광통교 보수공사에 사용했다' 라는 기록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을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던 신덕왕후 강씨와 이방원의 사이가 권력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던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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