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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손견. 실제로는 혼자서 반동탁연합군을 멱살 캐리했던 여포보다 훨씬 더 강했던 강동의 호랑이

by 사탐과탐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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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은 삼국지연의에서도 강한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강했던 장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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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삼국지 위오촉 세 나라 중에서 강동에 터를 잡고 있는 오나라의 초대 군주라고 알려져 있는 손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손견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잠깐 알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소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손견은 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옥새를 얻은 후 야심을 품어 천하를 제패하려 했던 지방 군벌로 흔히 알려져 있죠 

 

하지만 손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그를 독립군벌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 손견은 활동 초기인 황건적의 난에선 주준의 밑에 있었고 서량에서의 반란을 진압할 땐 장온에게 소속된 채 참전했습니다 

그리고 생애 최고의 활약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반동탁 연합군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원술군에 소속된 채 활약했으며 이는 손견이 남양을 원술에게 넘겨주고 원술이 손견의 벼슬을 올려준 기록만 봐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그 당시 최강의 군세를 갖춘 동탁군을 물리치고 낙양을 탈환한 것은 분명 손견이 이룬 업적이었는데 어느새 그 공적이 원술의 것이 되어있는 것만 봐도 그렇죠 

 

그렇게 손견은 죽기 직전까지도 원술의 충실한 셔틀역할을 했습니다

연의에서는 손견 본인이 주도해서 형주의 유표를 공격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원술의 명령을 받고 출전했다가 전사한 것이기 때문이죠

즉 진짜 군벌로서 강동에 오나라의 기반을 잡은 것은 손견이 아니라 그의 아들 손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손견의 환경도 어느 정도는 생각을 해볼 만한 것이 조조나 원소, 원술 등이 명문가 출신으로 가문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부와 권력, 명성을 이어받아 단숨에 강력한 군벌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손견이 가진 건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처음 세력을 일으킬 때 순식간에 상당한 수의 사병을 모을 수 있었던걸 보면 손견의 집안 자체는 꽤 잘 살았던 듯싶지만 잘해봐야 지방의 신흥 귀족 가문 정도일 것이기에 명성과 권력을 모두 갖춘 조조 원소 원술에 비해선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천하의 조조 같은 경우에도 황건적의 난을 진압할 당시에는 황보숭 아래 있던 장수였으며 난이 끝난 이후에는 하진 밑에 있었고 동탁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원소의 아래에 있던 중소 군벌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유비도 늘 공손찬이나 도겸 등 여러 제후들과 연합을 하거나 사실상 그들의 명령을 받는 입장에 놓여있던 순간에도 독립적인 군벌로 취급받는 것을 보았을 때는 손견 또한 나름대로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객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하죠

 

손견이 전사한 후 그의 부하들이 원술에게 그대로 흡수되지 않고 손견의 아들인 손책과 손권 밑에서 싸웠던 걸 보면 손견은 원술의 직계 부하라기보단 어디까지나 원술을 맹주로 모시는 연합 세력의 하나였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주 오군 부춘현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대담하고 화통한 기질로 인해 주변에 이름이 높았던 손견은 17세 때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전당현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마침 강기슭에 수적 떼들이 백성들에게서 약탈해 온 물건들을 나누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모습을 본 손견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배를 돌리려 했는데 이때 손견이 갑자기 칼을 잡고 언덕으로 올라가 마치 자신이 병사들을 끌고 온 장수라도 되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 속아 넘어간 수적들은 관군이 자신들을 체포하러 온 줄 알고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손견은 이들을 뒤쫓아가 기어이 수적 한 명의 머리를 베는 데 성공했죠

이 사건으로 손견은 주변에 이름이 알려지며 관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회계군에서 허창과 그의 아들 허소가 반란을 일으키자 1천 명의 군사를 모아 그들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고 이때의 공으로 염독현과 우이를 거쳐 하비의 승이 되었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것은 손견이 하비의 승으로 있을 때였는데 조정에서 반란 진압의 사령관중 하나로 임명한 주준이 평소 눈여겨보던 손견을 자신의 부관으로 삼으면서 손견은 하비 일대에서 1천 명의 군사를 모아 주준과 합류했는데 주준과 손견이 함께 힘을 합쳐 싸우자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뒀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패배를 당한 황건적은 완성으로 달아나 아예 성문을 걸어 잠가버리고 성에서 버텼는데 이때 손견은 황건적의 거센 저항에도 스스로 앞장서서 화살비가 쏟아지는 성벽을 기어오르며 승리에 크게 공헌했죠

주준이 손견의 공적을 조정에 알리자 조정에서는 손견을 별부사마로 임명했습니다

 

184년 겨울에 변장과 한수가 서량 지역에서 난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장온을 거기 장군으로 삼아 반란 진압을 지휘하게 했는데 이때 부관 중 하나였던 동탁은 장온이 모든 부하장수들에게 모이라고 소집령을 내렸음에도 느릿하게 움직이며 한참 뒤에나 도착했고 이후로도 장온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고 하죠

이를 본 손견은 장온에게 동탁이 무능한 지휘로 군사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반란을 전혀 진압하지 못했으며 윗사람에게도 무례하기 짝이 없어 그 죄가 매우 크다는 이유로 동탁을 처형할 것을 주장했지만 장온은 그의 청을 거절했고 이때부터 동탁과 손견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황제였던 영제가 세상을 떠나고 권력을 잡은 동탁이 온갖 횡포를 저지르자 각지에서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켜 동탁을 치려 했죠

손견 또한 동탁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낙양으로 진군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형주를 지날 때쯤 무릉태수 조인이라는 인물이 평소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형주자사 왕예를 죽이기 위해 있지도 않은 왕예의 죄를 꾸민 가짜격문을 직접 만든 후 손견을 찾아가서는 중앙의 고위관리가 만든 것이라며 전달했고 안 그래도 평소 자신을 무식한 무관이라고 무시하던 왕예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손견은 그 가짜 격문에 깜빡 속아 넘어가 그 길로 왕예를 치러 갔죠

 

갑작스런 손견의 공격을 받은 왕예는 "도대체 내 죄가 무엇이냐"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손견은 "모르는 것이 죄이다"라는 뻔뻔한 대답을 할 뿐이었죠

궁지에 몰린 왕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문제는 왕예가 아무리 평소 손견을 무식하다며 무시했다고는 해도 어찌 됐든 그가 손견의 상관이었다는 점인데요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손견이 왕예 살해의 명분이라 믿고 있던 중앙 고관의 격문 또한 조인이 날조한 가짜였습니다

 

더구나 왕예는 같은 반동탁 연합군의 일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같은 동맹의 일원을 죽여버린 손견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반동탁 연합의 협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죠

자신의 임지인 장사에서 낙양까지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무기나 식량의 보급에 있어서 동맹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손견이 택한 방법은 바로 원술과 손을 잡는 것이었고 원술은 그런 손견을 중랑장에 임명했습니다

이후 계속 북상해 남양에 이르렀을 때는 남양태수 장자가 길도 닦아놓지 않고 군량도 내놓지 않는 등 자신에게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죽여버렸죠

그러고는 그가 다스리던 남양을 원술에게 바쳐버렸습니다

원술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손견을 예주자사와 파로장군으로 추천했죠

 

이런 기록들 때문에 손견이 삼국지연의에서는 당당히 하나의 세력으로서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원술의 부장에 더 가까웠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렇게 계속 북상하던 손견은 드디어 동탁군과 맞붙게 되죠

 

손견은 초반에는 동탁군의 장수 서영을 상대로 고전하며 불과 수십 기의 부하들과 함께 도망가는 수모를 겪었는데 이때 손견은 자신이 항상 쓰던 붉은 두건을 조무에게 대신 쓰게 해서 겨우 적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의에서는 화웅과의 전투에서 패한 손견이 달아날 때 조무가 손견이 쓰고 있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겠다고 직접 요청하며 주군이 도망갈 시간을 벌다가 화웅에게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화웅이 아닌 서영과의 전투에서 패해 도망가던 손견이 시간을 끌기 위해 자신의 부하에게 붉은 두건을 대신 쓰게 명령한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실제 역사 속에서 조무는 죽지 않고 무사히 위기를 넘기며 살아 넘었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손견에게 실망해 그를 떠난 것인지 조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그렇게 전투에서 패한 병사들을 다시 수습한 손견은 그 후 이어진 양인전투에서 동탁이 보낸 호진과 여포의 부대를 박살내고 연의에서는 관우가 죽였다고 알려진 화웅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두게 되죠

 

그렇게 손견이 거침없이 승리를 거두며 낙양까지 점령할듯한 기세를 보이자 손견의 세력이 지금보다 강해지면 자신이 그를 컨트롤하기가 더 이상은 힘들어질 거라 생각한 원술은 손견을 견제하기로 결정하고 손견 군에게로 가는 군량의 보급을 중단시켜 버렸습니다

연의에서는 군량보급을 받지 못한 손견이 동탁군에게 패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 소식을 듣게 된 손견이 원술을 직접 만나러 와서는 자신에게 다른 마음이 없음을 확인시키고 겨우 다시 보급을 받았다고 하죠

 

손견의 군이 주둔하고 있던 양인에서 원술이 주둔하던 노양까지는 무려 100리나 되는 거리였는데 손견은 밤새도록 말을 달려 원술의 앞에 나타나서는 자신은 오직 나라의 큰 역적이자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낙양에 있던 원 씨들을 몰살시켜 버리며 원술의 원수가 된 동탁을 죽이기 위해 힘쓸 뿐이라며 자신에게는 결코 다른 마음이 없음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런 손견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 원술은 즉시 군량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손견을 주둔지로 돌아가게 했죠

 

이후 낙양까지 진격한 손견은 동탁이 직접 이끄는 부대와 대결을 벌여 승리했고 전투에서 패한 동탁이 달아난 후에는 낙양을 지키던 여포까지 패주 시키고 낙양을 되찾는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를 직접 상대한 동탁은 손견을 자신만큼 뛰어난 장수라고 평하기도 했죠

 

손견은 이후 유표를 공략하라는 원술의 명령을 받아 형주를 공격했고 그를 상대하러 나온 황조를 격파하는 등 승리를 거듭하며 마침내 유표의 거점인 양양을 포위하게 됩니다

하지만 포위망을 뚫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러 현산으로 달아난 황조를 직접 추격하다가 황조가 준비해 둔 매복에 걸려들면서 복병들의 화살과 돌을 맞고 머리가 깨져 죽음을 맞게 되죠

 

손견이 이 전투로 전사한 후 손 씨 가문은 형주의 유표와 철저한 원수사이가 됐고 맏아들인 손책은 손견의 부하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원술의 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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