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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방통. 법정과 함께 유비군 최고의 책략가. 진수가 극찬했던 그 인물

by 사탐과탐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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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과 함께 유비군 최고의 책략가로 진수가 극찬했던 그 인물 유비와 촉나라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 방통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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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촉나라에서 제갈량, 법정과 함께 유비군 최고의 책사로 꼽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거품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하는 비운의 책사 방통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몇몇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방통은 제갈량과ㅍ 더불어 와룡봉추라 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해 유비의 밑으로 간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서 과대평가를 받은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는 대상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사를 쓴 진수는 당대에 방통이 제갈량급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과대평가가 아니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왜냐면 진수가 쓴 정사에서는 방통 법정 둘만으로 책 한 권을 이룰 만큼 생각보다 방통의 비중이 더 높았으며 방통의 후예를 법정이라고 보았을 만큼 둘의 능력이 비슷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법정이 45세에 죽음을 맞았고, 방통은 그보다 더 어린 36세의 나이로 전사했다는 것을 생각해봤을때 만약 이들과 유비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어쩌면 삼국지의 판도가 변하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죠

방통은 유표가 다스리던 남군에서 공조라는 직책의 인사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늘 하급관리들을 평가할 때 그들의 장점만을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고 단점을 비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관리들을 칭찬하는 그를 보며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지금은 천하가 난세이기 때문에 일단 장점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데려다 써야 일단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 설령 절반이 쭉정이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머지 절반은 건질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죠

적벽대전 이후 오나라가 남군을 차지하자 남군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던 방통은 남군태수가 된 주유의 밑에서 일했으며 주유가 죽었을 때 방통은 그의 상여를 운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장례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던 때이기 때문에 오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주유의 장례식에서 그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이미 그 당시 방통의 지위나 명성이 상당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이후 유비가 형주를 다스리게 되면서 남군이 유비의 소유가 되자 방통은 본의 아니게 유표에서 손권을 거쳐 유비를 섬기게 되었죠

 

유비는 방통을 종사로 삼고 계양군 뇌양현의 현령을 맡게 했는데 방통이 현의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자 그를 면직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 나온 것처럼 유비가 방통을 무시해서 시골현령으로 임명시켰고 그런 유비에게 반발한 방통이 그냥 놀고먹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하죠

사실 그때까지 유비는 방통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령직조차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는 방통을 보고는 방통이 과대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고 여기며 그냥 그를 잘라버린 듯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오의 장수 노숙이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서 방통은 겨우 백리정도의 고을을 다스리는데 쓸만한 재주가 아니며 최소한 치중이나 별가등의 임무를 맡겨야 그 재능을 보일 것이라 조언했죠

치중은 간단히 설명해서 주를 다스리는 주목의 보좌관 중 2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직책이고 별가는 첫 번째 서열이었습니다

즉 방통은 형주목 유비의 부하들 중에서 첫째나 둘째 가는 자리를 받을만한 인재라는 뜻이었죠

 

게다가 제갈량까지 나서서 방통을 추천하자 유비 또한 방통을 만나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누어보았고 그제서야 방통의 재능을 알게 된 유비는 그를 제갈량 못지않게 여기며 방통을 군사중랑장으로 삼아 모든 면에서 제갈량과 같은 대우를 해줬습니다

유비가 촉나라를 정벌하게 될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바로 방통의 설득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죠

 

방통은 관리생활을 하는 내내 행정 업무만 맡았지만 유비를 수행하면서부터는 계책을 내는 책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방통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평소 화끈하고도 직선적인 그의 성격대로 계책들이 하나같이 몹시 급진적인 것들이었다고 하죠

때문에 훗날 제갈량이 촉보다 강대한 위를 상대로 북벌을 떠났을 때 너무 안정적으로만 군대를 운용하면서 실패했다고 보는 의견들도 많은데 만약 이때 방통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촉으로 들어선 유비에게 방통은 세 가지의 계책을 내놓았는데 정예병사들을 뽑아 곧바로 성도를 습격하자는 상책과 유장의 부하인 양회와 고패를 먼저 제거하고 주위를 평정하자는 중책 그리고 이대로 병사들을 물려 형주로 돌아간다는 하책이었습니다

방통은 최단시간 안에 적의 우두머리를 칠 수 있는 상책이 가장 효율적인 계책이라며 추천했지만 유비가 선택한 것은 바로 중책이었죠

 

본래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던 유비는 처음부터 급하게 유장을 공격할 마음이 없었으며 그보다는 시간을 들여가며 천천히 익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촉에 들어왔으면서도 막상 장로를 공격하는 대신 오히려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면서 익주 사람들을 천천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죠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뒤탈이 없고 안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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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방통의 성향은 주군인 유비와 정반대였죠

그는 일단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확실한 성과를 내기만 하면 그 후에 뒤따라오는 부작용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하지만 유비가 보기에 방통처럼 과격한 방식은 당장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오히려 손해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양회와 고패의 목을 베고 성도로 향한 유비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지만 진격하던 유비군이 광한군의 낙성을 포위했을 때 방통은 군사를 직접 이끌고 성을 공격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으면서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죠

연의에서는 낙봉파라는 곳에서 장임이 숨겨둔 복병의 화살에 맞으면서 방통이 죽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낙봉파는 연의에서 창작된 지명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닌 낙성이며 장임은 유비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하다 이미 처형당한 상태였다고 하죠

방통은 비록 자신의 의견이 주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지라도 항상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대범하게 들이밀었기 때문에 유비에게 있어 더욱더 소중한 존재였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신중한 성향의 제갈량과 급진적인 방통은 서로를 보조해 줄 수 있는 좋은 조합이기도 했죠

 

제갈량이 정석을 기반으로 한 완벽한 전략을 세우는 스타일이라면 방통은 그보다 훨씬 대담하며 상황에 맞게 전략을 세우는 데 능했다고 합니다

진수의 평에 따르면 방통은 순욱과 막상막하인 인재였다고 하죠

그리고 법정은 정욱, 곽가에 비견된다는 평을 내렸으니 진수는 방통과 법정을 거의 동급의 재능이라고 본 것이지만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방통 쪽을 좀 더 높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다시 말해 법정은 계책을 잘 짜내는 모사로서 인정한 것이고 방통은 순욱처럼 나라 전체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대신의 자격을 갖췄다고 본 것이니 와룡과 봉추라는 비유처럼 제갈량과 방통 두 사람은 서로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천하의 기재였던 셈이죠

촉을 정벌할 당시 방통이 유비에게 올렸던 계책들은 하나같이 매우 뛰어난 것들로 유장과 유비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유장을 사로잡아야 한다든지 또는 정예병을 뽑아 수도를 급습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는 주로 정공법을 주로 사용했던 제갈량과는 다른 병법 운용이기 때문에 방통은 유비가 죽은 후 촉나라에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주죠

제갈량이 큰 그림을 그리면서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며 안에서 나라를 다스리면 방통이 군사들을 이끌고 기발한 계책을 세워 적들을 무찌르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조합이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인데요

 

실제 정사에서도 제갈량은 행정능력이 대단하지만 군사적 실무능력은 방통, 법정 등의 인물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그 둘이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은 제갈량이 맡고 그 전략을 바탕으로 책략과 첩보를 통해 적을 혼란에 빠트리는 방통의 조합은 분명 촉나라의 북벌에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되죠

게다가 법정과 제갈량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 것이 원인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은데 만약 그들의 많은 업무를 방통이 나눠줄 수 있었다면 법정과 제갈량이 조금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제갈량의 경우 병사들을 다스리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사마의와는 달리 그는 촉나라의 내정까지 떠맡으면서 치러야 할 업무가 지나치게 많았다고 하죠

촉나라의 작은 인프라로 훨씬 강대한 위나라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제갈량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은 끝에 몸이 많이 쇠약해지면서 죽은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만약 방통이 계속 살아서 제갈량과 함께 이후 촉한의 북벌을 이끌었다면 어땠을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단지 가정에 불과할 뿐이며 실제 방통은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그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던 천재였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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