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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독설가 옹정제. 백성들에겐 명군, 신하들에겐 악마

by 사탐과탐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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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에겐 명군이었지만 신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인물 독설가 옹정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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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옹정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대부분 옹정제의 업적이나 그의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죠

오늘은 옹정제에 대한 이야기 2부 입니다

 

옹정제는 폭군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는데 최근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명군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인물이죠

그런데 옹정제는 신하들에게는 굉장한 독설가였다고 하는데요

 

옹정제는 '주접'이라는 것을 신하들과 주고 받았는데 이 주접은 황제와 신하가 개인적으로 주고 받던 일종의 보고서이자 편지 같은것이었습니다

옹정제는 공식적인 보고 경로와 함께 비밀스러운 보고 경로인 주접을 비교해 만약 보고 내용이 서로 맞지 않으면 신하들을 불러 추궁하는 방식으로 관리들을 장악해 나갔고 이렇게 비밀 정치를 하면서 신하들의 속마음도 알아내고 황제인 자신의 권력도 키웠죠

 

그런데 신하들 입장에서 보면 이 주접이 굉장히 두려운것 이었습니다

옹정제는 수많은 관리들이 보내는 주접을 모두 읽고나서 황제 전용인 붉은먹으로 그곳에 댓글을 달았던 것이죠

이 붉은먹으로 쓴 댓글을 주비유지(朱批諭旨)라고 불렀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신하들에게는 선플을 달아주었는데 옹정제가 신하들 중 가장 믿고 신임했던 삼총신, 전문경, 이위, 시린교로 오르타이에게는 굉장히 선플을 많이 달아줬다고 하죠

특히 시린교로 오르타이는 만주족이다 보니 더욱 신임이 두터웠는데 그에게 쓴 답장에는

"니 편지 읽으니 눈물이 난다' 라던지 '너같이 착한놈은 조상님들도 극락왕생 하실거다' 라던지 '니가 쓴 보고서는 정말 정성이 느껴진다, 한글자 한글자 정성스레 읽게 된다', 또는 '천지신명님 우리 오르타이 무병장수하고 자손만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세요' 등등 온갖 좋은말은 다 써서 보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문제는 옹정제가 쓴 댓글 중 많은 양이 악플이었던 것인데요

일을 잘 못하는 관리에게는 '월급만 축내는 버러지 같은놈'이라고 적기도 하고 '멍청한 놈'이나 '무식한 소인배', '무슨 내용이 이따위냐', '왜 쓸데없이 긴 종이에 써서 종이를 낭비 하냐?', '쭉 훑어봤는데 보고서가 웃기지도 않네?' 라고 적는 등 그걸 받아본 신하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댓글들을 마구 달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시뻘건 글씨로 적혀 있으니 공포감은 더했을것 같죠

그리고 옹정제는 공식적인 루트와 이 비공식 루트를 함께 접하다보니 만약 보고서 내용에 빠진 부분이 있으면 관리를 불러 죽도록 쏘아붙였으며 쓸데없이 장황하게 쓰면 또 그걸로 엄청난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관리들은 글을 잘쓰는 사람에게 돈을주고 대필을 부탁하기까지 하는데요

심지어 옹정제의 삼총신 중 한명이었던 전문경까지도 보고서 대필을 맡겼다고 하죠

 

오죽하면 옹정제의 평전 <옹정제>를 쓴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양심적인 독재 군주' 라고 평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옹정제는 관리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독, 감시했고 이에 대한 일화도 많은데요

 

그중 몇가지를 알려드리면 어느날 한 신하가 근무시간에 마작을 하며 놀았다고 하죠

한참 신나게 마작을 하고 노는데 마작 패 하나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에 다같이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수 없었고 어쩔수없이 그냥 퇴근하고 집으로 갔죠

그렇게 다음날 출근을 하니 옹정제가 그를 불러서 어제 뭐했냐고 물었는데 깜짝 놀란 그 신하는 괜히 거짓말 했다가는 큰일 날것 같아서 마작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옹정제는 어제 사라진 마작패를 꺼내 그 신하에게 툭 던지더니 솔직히 말했으니 한번 봐주겠다 라고 했다고 하죠

공포에 질린 그 신하는 그 뒤로 마작은 손에도 못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옹정제가 어느날 형부의 한 신하를 불러 "형부는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냐?" 라고 물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그 신하는 어리둥절해 하며 "네, 아무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옹정제는 "형부에 현판도 잘 걸려있지?" 라고 물으니 신하는 "네, 잘 걸려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옹정제가 갑자기 손짓하니 다른 신하들이 형부의 현판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판을 형부의 신하에게 냅다 집어던지더니 그 신하에게 자기가 일하는 곳에 현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냐며 엄청 호통을 쳤다고 하죠

사실 옹정제가 전날 밤에 신하들이 정신차리고 일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형부의 현판을 떼어오라고 시켰던 것입니다

이후 형부의 현판은 본보기 삼아 한동안 제자리에 걸리지 못했다고 하죠

거기다가 그는 황제가 된 이후 형제과 측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 나갔는데요

옹정제는 군왕 시절부터 예산 낭비를 굉장히 싫어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던 동생 윤제는 강희제의 능원 공사를 할때 돈을 아꼈더니 선황을 능멸한 셈이냐며 옹정제에게 엄청 욕을 먹었다고 하죠

그래서 다시 돈을 좀 들여 공사를 할려고 하자 이제는 돈을 물쓰듯 낭비한다며 또다시 욕을 한바가지 먹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형제들인 윤사는 개를 의미하는 '아키나' 라고 불렀고 윤당은 돼지를 뜻하는 '서스허'라고 불렀다고 하죠

또한 옹정제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러 코스프레를 한 것인데 선비의 모습을 한것이라던지, 도사, 승려, 아라비아의 귀족, 서양의 귀족 등의 모습을 한채 그림을 남겼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옹정제는 하루에 4시간 밖에 자지 않고 정무에 몰두하다보니 그의 몸은 굉장히 빠른속도로 쇠약해져갔는데요

옹정제는 1735년 10월 5일(양력), 건청궁에서 대신들과 회의를 주관했지만 다음날인 10월 6일에 갑자기 앓아 눕더니 7일에는 손쓸수 없을 정도로 위독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 8일에 결국 세상을 떠나버렸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죽은것에 대해 암살설과 독살설이 나돌았던 것이죠

 

암살설 중에서는 옹정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써 멸문을 당했던 학자 여유량의 손녀인 여사랑이 무술을 배워 궁녀로 잠입해 옹정제의 목을 베어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는 설이 가장 유명합니다

다른 설로는 옹정제가 말년에 도교의 연단술에 심취해 진시황제처럼 불로장생을 꿈꾸며 수은으로 단약을 만들어 과다복용을 하다보니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고, 이에 아들인 건륭제가 궁내에 있던 도사들을 모조리 쫓아내버렸다는 설 등이 있죠

 

옹정제가 이렇게 독설가이자 가혹한 숙청을 단행했던 덕에 폭군이라는 이미지가 굳혀졌었나 보네요

지금까지 독설가 옹정제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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