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여몽, 육손으로 이어지는 오나라 사령관 황금라인업의 마지막 인물
유비로부터 오나라를 구했지만 손권때문에 홧병으로 죽은 인물 육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주유 여몽 육손으로 이어지는 최고사령관 황금 라인업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인물이자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격파하며 위기에 빠진 오나라를 구해낸 육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육손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친척인 여강태수 육강이 다스리는 영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집안의 대표이던 육강이 원술의 군량 요청을 거절하면서 당시 원술의 밑에서 일하던 손책에게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육강은 그의 아들인 육적과 육손 등 육씨 일족을 모두 오현으로 피난시켰습니다
결국 196년에 육강은 손책과의 싸움에서 지면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그의 뒤를 이을 육적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육손이 육강을 대신해 집안을 관리했다고 하죠
손책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뒤를 이은 손권이 권력을 잡은 203년 육손은 21세의 나이로 손권 아래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216년에는 우돌의 난을 토벌하며 정위교위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손책과의 싸움에서 육강이 죽은 일 때문에 육씨와 손 씨 가문 사이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육씨 가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던 손권은 자신의 조카이자 손책의 딸인 손 씨를 육손과 결혼시키며 화친을 청했죠
이후 손권은 육손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는데 그런 손권에게 육손은 오나라 주변의 이민족들을 하나둘씩 평정해서 그들 가운데 정예병을 선발해 강력한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손권도 육손의 의견에 동의하며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각지의 이민족은 육손에 의해 토벌된 후 오의 정예병으로 흡수되었죠
219년 여몽이 형주에 있던 관우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병을 핑계로 건업으로 오자 육손은 여몽을 찾아와서 관우와의 국경을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 대체 여기 와서 뭐 하는 짓이냐고 크게 화를 내며 따졌습니다
그리고는 여몽에게 말하기를 이왕 이렇게 됐으니 차라리 그대가 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널리 퍼뜨려 관우를 방심하게 만든 후 형주를 얻을 기회를 만들자고 주장했죠
육손의 재주에 감탄한 여몽은 이후 손권을 만나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후임으로 육손을 추천했고 이에 손권은 육손을 편장군 우부독에 임명해 여몽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여몽의 후임이 된 육손은 관우에게 매우 겸손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그런 육손에게 속아 넘어가 안심하고 위나라를 침공한 관우는 여몽의 계략에 허를 찔려 패배하고 사로잡혀 처형 돼버리고 말았죠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221년 7월 대군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공하게 됩니다
손권은 서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지만 유비는 몹시 화를 내며 이를 거절했죠
이후 손권의 명을 받은 이이, 유아등이 유비를 막기 위해 나섰지만 무현에서 촉군의 선봉장 오반과 풍습등에게 격파당하면서 무성과 자귀성 등이 촉군에게 점령당했고 자귀성에 본진을 설치한 유비가 다음 해인 222년 대군을 이끌고 서쪽 변방 지역으로 나오자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주연, 반장, 한당, 서성 등의 장수와 5만 명의 병사들을 내주며 유비를 막도록 했습니다
유비는 금은과 비단, 작위등을 미끼로 주변의 소수 민족들을 회유해 같은 편으로 만든 뒤 장군 풍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장남을 선봉으로 삼아 진군했죠
육손은 직전 전투에서 오나라의 군대가 유비에게 패한 것을 근거로 전군에게 수비를 단단히 하고 절대 나가 싸우지 말 것을 명령했지만 이때 오나라의 손환이라는 장수가 단독으로 이도에서 유비의 선봉부대를 섣불리 공격하다 유비군에 포위당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손환은 육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육손은 단호히 거절했죠
그러자 오의 장수들이 손환은 주군인 손권의 친척인데 저렇게 포위당한 채 죽게 놔둘 수는 없다며 육손에게 따지기 시작했지만 육손은 어차피 내가 유비를 격파하면 손환을 둘러싼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육손이 지휘하는 오 군은 촉군에게 점점 밀려나면서 장강삼협이라는 협곡 내의 모든 거점을 잃고 후방인 강릉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장수들은 육손이 그저 입만 살아있는 게 아닌가 하며 그의 능력을 의심했죠
덕분에 육손은 부하 장수들에게 손권에게서 받은 검을 내보이며 억지로 그의 권위를 세워야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하지만 내부의 사정이야 어찌 됐든 육손이 진영을 마치 요새처럼 견고하게 만들면서
촉나라군 입장에서도 오의 수비를 뚫기는 힘든 상황이었으며 그런 적을 끌어내기 위해 촉군이 아무리 도발을 해봐도 오 군이 절대 상대를 해주지 않으면서 시간만 계속 흘러갔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촉군의 사기도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게다가 이 당시 촉군은 육손의 전략대로 오나라의 영토 내로 끌려들어 와 최전방부대와 후방부대까지의 길이가 무려 7백 리나 되는 긴 진영을 만들어둔 상태였죠
이렇게 긴 진지는 이릉대전의 상황을 전해 들은 위나라의 조비가 "유비는 병법을 모르니 손권이 곧 이겼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다" 라고 평할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222년 6월 육손은 촉군의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소규모의 병력으로 촉군 진영을 공격하도록 했죠
공격에 나섰던 오나라의 군대는 촉군의 반격을 받고 몹시 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육손은 오히려 "나는 이미 유비 진영을 격파할 방법을 알고 있다" 라고 말하며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이 무렵 유비가 이끄는 촉군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비교적 시원한 숲으로 진영을 옮기며 화공에 취약한 상태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육손은 수많은 촉군진영에 불을 지르면서 총공격에 나섰죠
갑작스러운 반격을 당한 촉군 진영들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졌고 서로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오 군에게 각개격파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위급해지자 유비 역시 본진을 포기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촉의 수군은 육군이 대패하면서 도망갈 길이 막히는 바람에 수군의 지휘관인 황권은 그 길로 위나라에 항복을 해버렸죠
유비는 효정과 이릉에서 퇴각한 후 다시 진을 세우고 패잔병을 수습해 다시 한번 오나라에 대항해 보려 했지만 이 시도 역시 이어진 오 군의 공격으로 인해 무산되면서 결국 백제성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촉나라는 풍습과 장남, 부동 등 다수의 무장들과 왕보, 마량 등의 문관 등 수만 명의 인력을 잃으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죠
223년 유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 유선이 즉위하면서 제갈량이 권력을 잡게 되자 오와 촉은 다시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228년 위의 대사마인 조휴가 파양태수 주방의 거짓 항복 계책에 속아 환현이라는 지역까지 들어오자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해 조휴를 공격하도록 했죠
그때서야 조휴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어차피 위군의 병사들은 정예이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육손이 이끄는 부대와 전투를 벌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상황은 위나라에 불리하게 흘러갔고 이에 조휴는 석정으로 퇴각해 잠시 휴식 중이었는데 한밤중에 육손이 주환과 전종에게 좌우 날개를 맡겨 세 갈래로 나눠서 위군을 습격해 오면서 위나라군은 대패를 하게 되죠
이때 조휴군에 있던 왕릉이라는 장수가 죽을힘을 다해 포위망을 뚫으면서 조휴는 겨우 목숨을 건져 달아날 수 있었지만 위군은 무려 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잃은 데다 수없이 많은 전쟁물자까지 뺏기면서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촉나라와 위나라를 연달아 격파한 육손은 오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자로 떠오르게 되죠
이후에도 위나라는 종종 오나라를 침공해 왔지만 그때마다 육손의 전략으로 위의 침공을 잘 막아냈습니다
244년 육손은 마침내 승상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지만 하필이면 이때 손권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손권의 셋째 아들인 손화파와 손권의 넷째 아들인 손패파가 대립하며 싸우는 이궁의 변 사건이 발생했죠
이때 전종이라는 신하가 자신의 아들 전기에게 손패를 따르도록 시켰는데 손화를 지지하고 있던 육손은 전종을 크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전 씨 가문이 그의 말을 무시하자 육손은 다시 한번 편지를 써서 전종에게 경고를 했는데 그렇게 육손이 직접적으로 손권의 후계자 문제에 끼어들면서 이후 손권과 육손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틀어지고 말았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육손은 몸을 사리지 않고 오히려 손화를 확실하게 태자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후계자를 정하는 자신의 권한을 자꾸 침범하는 육손에게 화가 난 손권은 결국 그를 파면시켜 버렸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쫓겨난 육손은 지방으로 갔는데 이때 여러 차례 육손에게 조정의 소식을 알려주던 태자태부 오찬이 손패와 그를 지지하는 양축등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게다가 양축은 오찬에 이어서 20가지나 되는 죄목을 대며 육손까지 모함했죠
결국 손권은 궁궐의 사자를 계속 파견하며 편지를 보내는 등 끊임없이 육손을 질책했고 이에 육손은 몹시 억울해하다가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중국역사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경제. 쇠퇴를 거듭하던 청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황제 (0) | 2023.06.20 |
---|---|
니오후루 허션. 젊었을땐 명신, 늙었을땐 간신 (0) | 2023.06.16 |
건륭제. 명군의 자질을 보였지만 점점 청나라를 쇠락의 길로 이끌었던 황제 (2) | 2023.06.14 |
독설가 옹정제. 백성들에겐 명군, 신하들에겐 악마 (0) | 2023.06.14 |
옹정제. 피 튀기는 숙청으로 폭군 이미지가 강했지만 알고보면 청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끈 성군 중에 성군 (1) | 2023.06.08 |
방통. 법정과 함께 유비군 최고의 책략가. 진수가 극찬했던 그 인물 (1) | 2023.06.07 |
조운.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최강의 엄친아격 인물 (0) | 2023.06.02 |
손견. 실제로는 혼자서 반동탁연합군을 멱살 캐리했던 여포보다 훨씬 더 강했던 강동의 호랑이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