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땐 명신, 늙었을땐 간신이던 니오후루 허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강건성세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륭제는 즉위 초반에는 훌륭한 정치를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총신 니오후루 허션이라는 인물에게 정치를 거의 맡기다시피 해버렸죠
그때부터 청나라는 점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청나라의 몰락을 가져오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인물 니오후루 허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허션은 한국에서는 뉴호록 화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그의 집안은 정홍기 출신으로 대대로 관리를 해오던 집안 이었죠
허션은 1750년 북경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어릴적 부모를 여의고 순탄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어린시절 내내 가난이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녔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돈과 권력앞에서 무릎을 꿇던 비겁한 스승의 모습을 보았고 권력가의 자제들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했던 허션은 그때부터 돈과 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렇게 그는 삶의 최고 목표를 돈과 권력에 두었습니다
허션은 어릴적부터 워낙 총명했으며 외모도 뛰어났고 능력도 출중했는데요
그는 만주어와 한어, 몽골어, 티베트어까지 4가지 언어에 특출났을 뿐만 아니라 유가 경전에도 통달했으며 아부하는 능력도 뛰어났죠
하지만 똑똑했던 그도 여러번의 과거시험을 치렀지만 번번히 낙방하자 결국 과거를 포기하고 잘생긴 사람만 들어갈수 있는 황실 의장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금군의 삼등시위가 되어 건륭제를 호위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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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를 호위하던 어느날 건륭제가 시위들에게 <논어>에 대한 질문을 한적이 있는데요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할때 그에 대한 대답을 허션이 술술 하자 그렇게 허션의 영특한 모습은 건륭제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인물도 훤칠하게 잘생겼다보니 이후 건륭제의 총애를 받기 시작해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지난 어느날, 건륭제가 맹자를 읽고 있을때였죠
날이 저물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자 건륭제는 허션에게 등불을 좀 밝히라고 했습니다
그때 허션은 건륭제에게 어느 부분을 읽고 있었냐고 물었는데 건륭제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어두워서 읽지 못한 부분을 허션이 한글자도 빠짐없이 술술 말해주었고 그러자 건륭제도 그의 총명함에 반해 더욱 그를 예뻐했던 것이죠
건륭제의 총애를 등에업은 허션은 1776년 27세의 어린나이에 호부시랑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건륭제가 시킨 관리들의 부패척결 임무를 말끔하게 처리하면서 더욱 신임을 받기 시작했으며 훗날 지방 관리들의 부패를 없앨수 있는 정책을 건륭제에게 올렸는데 이를 본 건륭제가 그를 극찬하면서 마침내 그는 32살의 어린나이에 호부상서에 제수되어 청나라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맞게 되었죠
이때만 해도 허션은 탐관오리가 아니라 건륭제 치세를 이끌어 나간 3대 명신으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흑화하기 시작해 돈독이 올랐는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재산 불리기에 급급했죠
그런 그의 악행을 막기에는 건륭제가 이미 나이가 들면서 신하들의 간언을 멀리하고 자신을 외적들과 열 번 싸워 열 번을 모두 이긴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고 칭하는 등 젊었을적 총기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잘 알았던 허션은 건륭제에게 강희제와 옹정제보다 더욱 위대한 황제라며 계속해서 아부했고 심지어 건륭제의 어머니가 죽자 허션은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듯이 더욱 통곡하면서
건륭제의 환심을 샀죠
또한 건륭제는 할아버지 강희제를 따라한다며 여러번의 순행을 떠나게 되는데요
문제는 강희제와는 다르게 순행을 할때마다 막대한 국고를 낭비했는데 매일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연회를 베풀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건륭제가 순행을 하는 지역에는 건륭제를 맞이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들었으며 이 돈은 결국 가난한 백성들을 쥐어짜서 나온 돈이었기에 그 폐해가 막심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인해 건륭제와 신하들이 잦은 마찰을 빚게 되었는데 이에 허션은 건륭제가 계속해서 신나게 놀수 있도록 '의죄은(議罪銀)' 이라는것을 만들었죠
이는 관리가 죄를 지었을때 자신에게 돈을 바치면 금액에 따라 죄를 처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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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부패한 관리들은 아무리 자신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사익을 취하다 걸려도 돈 만내면 사면 되었기 때문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죠
거기다가 이 돈은 세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허션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꺼내쓸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돈을 내고 죄를 사면받은 관리들은 언제든 다시 백성들에게 돈을 뜯으면 되었기 때문에 이 '의죄은'은 얼른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 짜라고 등 떠미는 격이었죠
그렇게 건륭제의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아 허션은 계속해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나중에는 수석군기대신이 되어 조정의 영수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허션의 아들이 건륭제의 막내딸과 결혼을 하고 사돈지간을 맺게되자 허션의 권력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죠
심지어 노년에 접어든 건륭제는 통치의 대부분을 허션에게 맡긴 상태였고 이미 판단력이 많이 흐려져 허션에게 무차별적인 총애를 주다보니 둘이 동성애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돌정도였습니다
허션은 점점 더 재물을 모으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뇌물수수, 매관매직은 기본에다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엄청난 돈을 벌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긁어 모았죠
허션은 각지에서 올라오는 1등급 진상품을 빼돌려 자신의 집으로 보내고 건륭제에게는 더 낮은 등급을 바쳤다고 합니다
허션이 매관매직을 하고 번 돈은 건륭제의 유흥비로 쓰이거나, 예술품을 구매할때 비용으로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허션이 매관매직을 하고 있다는걸 건륭제가 알고 있었지만 묵인해줬다는 의심을 받고있기도 하죠
건륭제도 말년에는 재산을 불리는데 집착하면서 자신의 생일때 황금 불상 1만개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밀무역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는데 당시 청나라와 무역을 하던 유럽인들은 허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 언제나 허션의 집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죠
그러자 여러 선비들이 허션의 전횡을 비난하고 고발하는 상소문을 올렸지만 이미 허션이 대부분의 정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서 건륭제가 보지 못하도록 빼돌렸고 자신을 비난한 자들을 역적으로 몰아 전부 제거해버렸습니다
1790년 건륭제의 80세 생일을 축하하러 간 조선의 사신 황인점과 서호수는 귀국후 정조에게 "황제가 정정하긴한데, 허션을 총애하여 그의 권세가 지나치게 강력해 백성들이 답답해하고 있다" 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후 영국의 외교관으로 왔던 조지 매카트니는 "수많은 청나라 사람들이 몰래 허션을 두번째 황제라고 칭하고 있다" 라고 했을정도로 허션은 건륭제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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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매카트니를 접대한것도 허션이었고 영국이 내민 통상 요구를 거절하는것을 결정한것도 허션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허션은 1799년 건륭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언제나 허션을 비호해주던 건륭제가 죽자 신하들이 들고 일어서 허션을 탄핵하고 그의 비리를 고발하는 상소문을 가경제에게 올렸고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온갖 비리가 모두 밝혀지게 된것이죠
그 사실을 알게된 가경제는 분노하며 스무가지 죄목을 들어 그와 더불어 가족들까지 모조리 체포했고 가산을 모두 몰수 해버렸죠
그리고 그를 능지처참에 처하려 했지만 허션의 아들과 결혼했던 이복누이 고륜화효공주가 간곡히 부탁하자 형을 감면해 스스로 자진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그렇게 허션은 건륭제가 죽고나서 보름후인 1799년 2월 22일 48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을매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고나서 환수된 그의 재산 규모를 보고 가경제는 물론 신하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당시 몰수한 허션의 재산은 약 9억냥으로 청나라의 매년 세수입이 7000만냥 정도 되었으니 12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세금 수입과 맞먹는 액수였던 것이죠
그가 착복한 재산을 포브스에서 기사로 다룬적이 있는데 화신의 재산을 약 1320억 달러로 추산했고 이를 단순히 지금 원화로 바꾸면 약 176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의 전세계 부자 순위에도 들수 있을정도 인데 1700년대 후반에 이 정도 재산을 가졌으면 허션이 당시 전세계 최고의 부자라해도 납득이 가는 수준이죠
어쨌든 그의 몰수한 재산을 가경제가 내탕금으로 쓰자 많은사람들이 "허션이 죽으니 가경제의 배가 부르다" 라며 이를 비꼬았다고 합니다
허션에 의해 타락한 청나라는 이후 아편전쟁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서 온갖 나라에 얻어터지는 원인이 되었고 이때부터 청나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고 하죠
젊었을때는 뛰어난 능력으로 건륭제를 도와 나라의 부흥을 꾀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흑화되어 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신하로 이름을 올리게 된 니오후루 허션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bAMHmm/btsj7Kjrvm0/wsxEQovykl8jtgjxGRHaMK/im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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