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들이 후한의 정치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기 시작한 계기를 만들었던 인물이자 삼국지의 서막을 연 후한의 대표적인 간신 양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후한이라는 나라는 시작부터 호족들의 세력이 막강하다는 문제를 떠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광무제가 황제가 되기 위해 이들을 적극 이용하고 포섭했기 때문인데 황제 자체가 호족들에 의해서 추대되었기 때문에 호족들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죠
광무제도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는지 이들을 숙청하지 않았고 그가 건 제약이라고는 단지 그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것을 막을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호족들은 넓은 땅에서 사병들을 기르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게 되죠
이들은 나중에 그 유명한 삼국지에서 활동하던 지역군벌이 됩니다
예를 들면 유비나 조조 원소 손권 등이 있겠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앙정부에서 잘 감시를 하며 그들을 통제해야 하지만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한나라는 이미 정부로서의 기능을 많이 잃은 상태였는데요
그런 문제점이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간신 양기의 대에서부터입니다
양기는 양주 안정군 오지현 출신으로 자는 백탁이며 후한의 대표적인 간신이자 권신이었으며 외척을 이용해 권세를 얻은 간신중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자신의 여동생인 양날이 순제의 황후가 되면서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한 양기는 순제가 죽은 이후에는 충제와 질제, 환제 등 3명의 황제를 세웠다가 환제가 환관들과 연합해서 그를 공격하자 궁지에 몰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런데 이 양기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환관들의 힘이 커지는 바람에 훗날 이들이 십상시라 불리는 존재가 되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게 되죠
즉 어찌 보면 양기 또한 삼국지의 시작을 연 인물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한의 7대 황제인 소제는 외척인 염 씨 가문 덕분에 황제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소제가 황제로 즉위한 지 겨우 200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당시 환관들의 우두머리였던 손정은 19명의 환관을 모아 외척인 염현을 죽이고 유보를 황제로 옹립했으니 그가 바로 제8대 황제인 순제입니다
형식적으로 황태후 염 씨가 섭정을 했지만 실권은 손정이 장악했죠
이때부터 영제 때까지 환관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환관 손정은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을 일삼았는데 당시 황제였던 순제는 비록 손정에게 휘둘리는 허수아비 신세였지만 그에게도 황제로서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손정을 비롯한 환관 세력을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먹은 순제는 자신을 도와 환관들을 몰아낼 외척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당시 대장군이었던 양상이었는데요
그는 평소 인품과 능력이 모두 뛰어나 관리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으며 그의 가문 또한 대대로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132년 순제는 대장군 양상의 딸 양날을 자신의 정비로 삼았고 그렇게 양 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황제의 외척이 되었죠
그런데 대장군 양상의 아들인 양기는 아버지와 달리 평소 성품이 오만한 데다 욕심이 많고 술을 좋아했으며 공부는 멀리한 채 경마나 매사냥 등을 하며 놀기를 좋아하던 인물이었는데 순제는 대장군 양상뿐만 아니라 이 양기에게까지 권력을 주면서 환관 세력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순제는 양기에게 양읍후 작위를 내리려고 했지만 대장군 양상은 능력도 되지 않고 별다른 공도 세우지 않은 자신의 아들이 그런 작위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를 거절했죠
그 대신 양기는 황문시랑, 집금오 등의 벼슬을 거쳐 하남윤에 임명되었는데 하남윤은 수도 낙양을 관할하는 직책으로 지금의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순제의 의도대로 권력은 환관세력에서 양 씨 가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죠
141년에 양상이 죽자 양기는 양상의 지위인 대장군 벼슬을 물려받게 되는데요
그에게는 비록 학식도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도 없었지만 잔머리를 굴려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재주는 뛰어났다고 합니다
양기는 누이동생인 양황후를 이용해 순제의 신임을 얻으려 했고 이미 환관들에게 질려있던 순제 또한 양기에게 권력을 주는 것에 동의했죠
하지만 순제의 이런 행동은 늑대를 쫓아내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었습니다
양기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던 대상이 바로 아버지인 대장군 양상이었는데 그런 양상이 세상을 떠난 데다 황제로부터 권력까지 넘겨받은 양기는 그때부터 황제를 비롯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고 하죠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자기 마음대로 국가의 돈을 횡령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 관직을 돈을 받고 팔기 시작했는데 그 정도가 이전의 환관들 때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142년 관리들이 양기를 탄핵하는 상소를 줄줄이 올렸으며 그중에서도 장강과 황보규라는 관리가 특히 강력하게 양기를 비판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양기는 반성은커녕 장강을 지방으로 좌천시켜 버리고 황보규는 강등을 시켜버렸죠
양기의 거침없는 행보에 두려움을 느낀 황보규는 그날로 사표를 쓰고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144년 순제가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자 겨우 두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후한의 9대 황제인 충제입니다
충제의 어머니이자 양기의 동생인 양날이 태후로서 섭정을 맡았고 권력은 또다시 양기에게 집중되었죠
하지만 충제는 즉위한지 겨우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당시 조정의 중신이었던 이고는 양기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었던 황자를 다음 황제 후보로 지지했지만 양기와 양태후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줄 황제였기에 그들은 또다시 8세의 유찬을 황제로 옹립했으니 그가 바로 10대 황제인 질제였습니다
하지만 질제는 8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스럽고 똑똑했기 때문에 황제가 있음에도 마치 자신이 황제인 것처럼 대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양기에게 그가 함부로 날뛰며 윗사람을 무시한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허수아비 어린아이로만 알고 있던 질제의 영특함이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된 양기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결국 질제를 독살해 버리게 되죠
다음 황제 자리를 놓고 과거 양기와 대립했던 태위 이고를 비롯한 관료들과 양기일파는 또다시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되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양태후를 등에 업은 양기였고 그런 양기의 선택을 받은 것은 바로 환제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황자를 황제로 즉위시키는 데 성공한 양기는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태위 이고를 숙청하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이고를 모함해 태위 직에서 해임시킨 양기는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목숨까지 끝내 빼앗아버리는데 성공하면서 이제 후한의 조정에 양기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죠
그렇게 양기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158년의 어느 날 달이 태양을 가려버리는 일식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기에 태사령 진수는 일식을 가리켜 양기의 탐욕이 지나쳐 하늘에서 경고한 것이다라고 환제에게 고했다고 하죠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양기는 크게 화를 내며 진수를 잡아 고문한 끝에 결국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양기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환제 또한 호락호락한 성격의 소유자는 결코 아니었기에 황제인 자신의 신하를 함부로 죽이는 양기의 모습을 보며 크게 분노했죠
그렇게 가뜩이나 환제가 양기에게 이를 갈고 있을 때 환제를 더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양기의 아내 손수에게는 외삼촌이 있었는데 하루는 손수의 외삼촌이 아내의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 등맹을 데리고 손수와 만나게 되었죠
그런데 손수는 등맹의 미모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걸 보고는 그녀의 성을 양 씨로 바꿔버린 후 환제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남편인 양기에게 부탁해 등맹의 생모인 선을 죽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들은 선을 죽이는데 실패한 데다 그녀를 놓쳐버리기까지 하고 말았죠
선은 즉시 궁으로 달려가 환제에게 그 사실을 모두 고했고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양기를 괘씸하게 여긴 환제는 마침내 그를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조정은 이미 양기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환제로서는 어느 누구와도 섣불리 상의를 할 수가 없었고 고민 끝에 환제는 결국 자신을 따르는 환관들을 불러 모으게 되죠
그렇게 단초, 구원 등 5명의 최측근 중상시들을 설득한 환제는 이들에게 양기와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권한과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기른 환관들은 환제의 친위대인 어림군을 이끌고 양기의 집을 급습했는데 더 이상 자신의 적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없어지면서 크게 방심하고 있던 양기는 그 기습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죠
그의 집 안에는 일족들과 하인들 그리고 빈객들까지 포함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예병인 어림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양기는 자신의 마지막이 온 것을 직감하고 아내 손수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게 되는데요
마침내 양기라는 큰 산을 넘은 환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양기의 일가친척을 모두 사형에 처하고 조정안에서도 양기의 사람들을 모조리 축출해 버렸는데 그때 죽거나 파직된 관리의 수가 무려 300여 명을 넘었기 때문에 조정에 일을 할 수 있는 관리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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