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에 공녀로 간 한 여인으로 인해 2800여명이 죽임당한 사건인 어여의 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명나라의 3대황제 영락제의 치세기였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격분한 영락제가 한 사건에 관련된 모두를 잡아와 국문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그렇게 어떠한 사건에 연루된 모든사람이 잡혀오게 되었고 궁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했으며 그들의 피로 얼룩져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무려 28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고문과 사형으로 인해 죽어나가게 되는 참극이 벌어지게 되었죠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한명의 조선인 여성 때문이었는데요
이 사건은 바로 '어여의 난' 이라고 불리는 중국 역사상 희대의 궁중 암투 사건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조선시대 때 수많은 조선 여자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에 공녀로 끌려갔었죠
특히나 명나라의 3대황제 영락제는 조선의 여인들을 좋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툭하면 황엄이라는 사람을 보내 공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황엄은 예전에 데리고 갔던 조선 여자들을 황제께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며 더 예쁜 여자를 데리고 오라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태종은 결국 전국에 금혼령을 내려 공녀를 뽑도록 명했고 그렇게 여러명의 처녀들이 뽑혀 명나라로 가게 되었죠
영락제에게는 정비인 인효문황후 외에 25명의 후궁이 있었는데요
그 중 8명이 조선인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난징에 도착한 공녀들은 영락제를 만나게 되었는데 영락제는 첫눈에 권씨라는 여인에게 반하고 말았죠
그리고 곧바로 그녀를 현인비로 봉했습니다
함께간 다른 조선인 여인들에게도 시호를 내렸지만 권씨보다는 낮은 지위였죠
그리고 권씨의 오빠인 권영균을 명나라 관직으로 3품인 광록시경에 제수하고 막대한 금은보화를 선물로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영락제가 현인비 권씨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 같은데요
권씨는 외모가 특출났을 뿐만아니라 옥퉁소를 잘 불었으며 중국어도 빠르게 익히면서 대화까지 잘 통하다보니 영락제가 특히나 더 예뻐했던 것이죠
심지어 1407년에 영락제의 정실황후인 인효문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황후를 세우지 않았으며 사실상 현인비 권씨를 황후로 대접 했다고 합니다
당시 황후 다음 서열인 비로는 한족이던 소헌귀비 왕씨와 현인비 권씨 둘만 있었는데 한족 후궁을 재치고 조선인이던 권씨가 황후 역할을 하게 된것이죠
심지어 영락제는 현인비에게 자신의 의식주 일체를 맡겼을만큼 그녀를 믿고 총애 했습니다
게다가 조선에서 사신으로 보낸 유정현이 현인비 권씨와 친척이라는 말을 들은 영락제는 권씨의 집안에 자신의 말을 전하라 명하고 막대한 선물을 하사했을 정도였죠
그러다보니 태종도 권씨의 오빠인 권영균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낼때 권씨에게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인비 권씨는 명나라에 온지 1년 6개월밖에 안된 1410년 10월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영락제가 몽골을 토벌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할때 권씨를 데리고 갔는데 그만 병을 얻어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태종의 선물을 싣고 권영균이 명나라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권씨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고 합니다
영락제는 권영균을 만난뒤 제대로 말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슬퍼했으며 황엄을 사신으로 조선에 보내 현인비 권씨의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까지 전했다고 하죠
그런데 권씨를 잃은 영락제의 슬픔이 다 가시기도 전에 충격적인 보고를 듣게 되는데요
바로 현인비 권씨가 아파서 죽은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보고였던 것이죠
격노한 영락제는 이 일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명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영락제의 총애를 받던 권씨를 질투한 조선 공녀 출신 후궁 여씨가 권씨가 마신 호도차에 독약을 넣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것이었죠
사실 함께 공녀로 차출되어 명나라에 왔던 권씨와 여씨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평소 여씨가 "죽은 황후에게 자식이 있는데, 권씨가 궁중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가겠느냐" 라며 현인비를 질투하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었죠
이 권씨 독살 사건은 원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수 있었지만 평소 주인끼리 사이가 안좋다보니 양측 노비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노비끼리 서로 싸우다가 권씨의 노비가 "니 주인이 약을 먹여 우리 주인을 죽였다" 라고 하는 바람에 이 일이 일파만파 커지게 된것이었습니다
이에 영락제는 권씨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 수백명을 죽이고 여씨에게는 온몸을 인두로 지지는 낙형(烙刑)을 한달동안 계속해서 가한 끝에 결국 여씨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죠
거기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영락제는 마침 와있던 조선의 사신 윤자당에게 조선 출신 후궁인 여씨 때문에 총애하던 현인비 권씨가 죽었다면서 조선에 있는 여씨의 가족들을 모두 처형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에서는 일단 명나라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일단 여씨의 가족들을 감옥에 가둔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상의했는데 결론은 여씨의 어머니였던 장씨만 노비로 하고 다른 친족들은 모두 풀어주는것으로 마무리 했죠
또한 명나라에서 파견나온 사신에게는 "여씨의 어머니를 처형했다" 라고 속였고 이 말을 들은 영락제는 만족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는데요
이 사건이 일단락 되고나서 몇년이 지난 어느날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게 된것이죠
당시 어씨와 여씨라는 한족 궁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동성애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내시들과도 간통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영락제에게 딱 걸려버리고 말았는데 영락제는 한번 눈감아주기로 했지만 오히려 겁에 질렸던 두 궁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죠
그러자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하던 중 현인비 권씨가 사실 한족 출신인 여씨에게 독살되어 죽었고 한족 여씨가 그 죄를 조선인 여씨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밝혀져버린 것입니다
이 일은 명나라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그렇게 대대적인 국문이 시작되면서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죠
한족 여씨가 조선인 여씨에게 성이 같으니 친하게 지내자 했지만 조선인 여씨가 이를 거절했던 것이죠
그런데 단순히 친하게 지내자 했는데 거절했을 확률은 낮으니 아마도 이때 동성애를 하고 있던 어씨와 한족 여씨가 조선 여씨에게 접근해 같이 동성애를 하자며 꼬셨는데 동성애에는 관심이 없었던 조선 여씨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을거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자신들의 치부도 들켜 버렸고, 거절에 대해 앙심을 품은 한족 여씨가 권씨를 독살한뒤 조선인 여씨에게 뒤집어 씌워버린것이었죠
그렇게 조선인 여씨는 영문도 모른채 잔혹한 고문을 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갔던 것인데요
이에 격분한 영락제는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오라 명했고 그렇게 2,8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죄다 죽임을 당하고 마는 참극이 벌어지고 만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 중에 조선인 후궁이던 사람들도 많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선인 후궁 황씨와 이씨는 참형에 처해졌고 임씨와 정씨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죠
심지어 어떤 여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심문 도중에 영락제에게 “자기의 양기가 쇠하여 젊은 내시와 간통하는 것인데 누구를 허물하느냐” 라며 고래고래 소리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인비 권씨가 죽자 벌어진 무시무시한 일이었던 것이죠
이 사건을 '어여의 난'(魚呂之亂)이라고 하는데요
어여의 난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죄없는 조선의 공녀들도 사건에 연루되어 죽어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여인을 간택했던 황엄에게도 이 화가 미치게 되었는데 당시엔 이미 세상을 떠났던 황엄의 관을 꺼내 갈라 버리고 부관참시 했으며 황엄의 가족들을 전부 관노로 만들어버리기 까지 했죠
그렇게 영락제에게는 한씨와 최씨 두명의 조선인 후궁만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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