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조카의 황위를 찬탈한 중국판 계유정난 정난의 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조선 초 왕실에서는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은 바로 단종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삼촌이던 수양대군이 강제로 왕위를 빼앗은 사건인 계유정난이죠
그런데 이와 굉장히 비슷한일이 비슷한 시기에 명나라에서도 있었던 걸 아시나요?
오늘은 스케일은 좀 많이 컸던 중국판 계유정난, '정난의 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게는 아들이 26명이나 있었는데 명나라 개국과 동시에 장남이던 주표가 황태자로 책봉되었죠
그리고 수많은 황자들을 번왕에 봉해 수천에서 수만명까지 병력을 나눠준 뒤 여러 지역으로 보냈고 그 지역의 방어를 맡겼죠
이렇게 보내진 번왕들은 강력한 군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몽골은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을 막고 있는 인물은 주원장의 사남인 연왕 주체 였죠
그러던 어느날, 황태자였던 주표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황자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이 바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중이던 연왕 주체였고 주원장 역시 주체를 태자로 책봉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새로운 황태자를 책봉하는데 주체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대신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이어야지' 라고 하면서 주체가 황태자가 되는걸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주원장도 그를 태자로 삼는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만약 주체를 태자로 삼았을 경우 주체의 두 형이 반발을 해 내분이 일어날수도 있었기 때문에 주원장도 결국 포기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황실 정통성을 위해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지켜 주표의 아들인 주윤문이 새로운 황태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원장이 어린 황태손을 후계자로 정하고 장성한 황자 모두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번왕으로 만든것은 이후 후계 갈등 문제의 불씨를 만들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렇게 모든 비극의 서막이 열린것이었죠
1398년 6월, 69세의 나이로 주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주윤문이 다음 황제로 즉위했는데 그가 바로 건문제 였습니다
이때 주원장은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아들들에게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고 영지를 지키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죠
하지만 건문제가 즉위 하고나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삼촌들, 즉 번왕들에게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연왕 주체였습니다
주체는 명나라 최북방 지역에서 몽골족의 침입을 막으며 문무를 겸비한 만능형 인물로 성장중이었고 다른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죠
또한 건문제 시기 정치를 주도하던 학사들인 방효유, 황자징, 제태 등은 지금 명나라의 형세가 과거 전한 초기와 비슷하다고 하며 번왕들의 세력을 약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전한초기, 각지에 봉해졌던 황족들이 연합하여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남)
이에 건문제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에는 신하들의 성화에 못이겨 삭번정책을 실시하게 되었죠
건문제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은 번왕들의 반발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굉장이 빠른속도로 진행되었는데요
5월에 주원장이 죽고 건문제가 즉위했으며 6월에 황자징과 제태 등이 등용 되었는데 그로부터 고작 2개월 후인 8월에 주왕 주숙을 시작으로 민왕 주편, 대왕 주계, 제왕 주부, 상왕 주백 등이 차례로 서인으로 강등 되거나 유배와 투옥,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건문제는 숙부들을 빠르게 숙청해 나갔습니다
숙청 방법 또한 신속 했는데 불시에 번왕들을 습격해서 한명씩 잡아 가둔 후 이후에 그들의 죄를 만들어 발표 하면서 반발 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식으로 습격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면 당연히 가장 강력한 세력을 먼저 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당시 가장 강한 세력인 연왕 주체의 세력이 두렵다는 이유로 세력이 약하던 번왕들 부터 처리 해나갔던 것입니다
다른 왕들이 죽어나가는걸 본 주체는 얼마안가 자기 차례가 올것이라는걸 알았고 그렇게 반란을 준비할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었던 것이죠
거기다가 주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들에게 장례식에 오지말라고 하자 주체는 자신의 아들들을 주원장의 장례식에 보냈었는데요
그래서 당시 수도 남경에는 연왕 주체의 아들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좀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한 주체의 아들들은 얼른 주체가 있는 북평(훗날 북경)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 제태는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황자징은 연왕을 방심하게 하려면 이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건문제는 황자징의 말을 들어 결국 주체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지 않고 그들을 무사히 돌아가도록 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죠
그리고 얼마안가 주체는 '간신인 제태와 황자징이 미숙한 황제를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고 있다'며 황제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병사들을 일으켰고 그렇게 일으킨 주체의 반란군은 '황제의 옆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난을 다스린다' 라는 의미로 정난군으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정난의 변'이라고 하죠
처음엔 기세를 타고 정난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습니다
기습을 통해 60세가 넘은 노장이던 경병문의 병력을 격파했고 이후 이경륭이 이끄는 50만명의 토벌군에 맞서 주체가 직접 정예 기병을 이끌고 개박살을 내버리기 까지 했죠
백구하의 전투에서 주체는 이경륭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결국 화계를 통해 이경륭의 부대를 제대로 격파 했으며 그렇게 이경륭의 부대는 수만명은 전투중에 죽고 또 십만여명은 물에 빠져 죽을 정도로 대패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정난군은 덕주까지 함락시키며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 까지 손에 넣었으며 이 모습을 본 수많은 성들이 주체에게 항복을 해오기도 했죠
그렇게 이경륭은 제남까지 달아났고 정난군은 그를 쫓아 제남까지 갔는데 제남을 먹게 되면 순식간에 산둥성을 장악할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건문제의 황제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정난군은 연이은 승리에 도취되어 제남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밤낮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제남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심지어 20만의 황제군이 덕주를 공격해서 다시 빼앗자 보급로가 끊길것을 우려한 주체는 결국 퇴각하고 말았죠
그리고 동창전투에서는 성용과 오걸이 이끄는 황제군에 의해 주체의 정난군은 또다시 대패하여 주체가 아끼던 백전노장 장옥이 전사했으며 정난군의 거의 모든 정예병을 다 잃었고 주체도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북평까지 퇴각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체는 이렇게 끝낼수는 없었기에 1401년 3월이 되자 다시 남하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협하라는곳에서 다시 주체가 이끄는 정난군과 성용이 이끄는 황제군이 진을 치고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주체는 10여명의 수하들만 이끌고 적진을 염탐하기 위해 성용의 진영 가까이 가게 되었죠
그런데 얼마안가 자신이 적군에게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주체는 정신없이 도망치게 되었는데 황제군은 도망가는 주체에게 화살 한발 제대로 쏘지 못했죠
그 이유는 사실 건문제가 내린 조서 때문이었는데요
조서에서 건문제는 "짐이 숙부를 죽였다는 책임을 지게 하지 마라" 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주체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기에 황제군의 장수들은 도망가는 적군 총대장 주체에게 화살 한발 제대로 쏘지 못하고 그냥 보내줄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건문제의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짓때문에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죠
그리고 다음에 벌어진 전투에서 정난군에게 황제군이 대패를 하면서 성용도 간신히 도망칠수 있었으며 심지어 정난군의 장수 이원이 패현에 있던 황제군의 군량을 불태우는 바람에 식량 마저 부족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동안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미친듯이 싸워왔지만 주체는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고 아무리 수십만의 황제군을 무찔러도 금새 다시 병력이 회복되는 등 답답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죠
거기다가 1402년에 정난군은 소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패배해 장수 진문을 잃었으며 제미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장수 이빈마저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사기가 떨어진 주체 진영의 수많은 장수들이 일단 북방으로 돌아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 했는데, 이때 정난군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인 주능이 한고조는 열번 싸워 아홉번 졌지만 끝내 천하를 가졌다 라고 소리쳤는데 이 소리를 들은 주체도 가려면 니들끼리 가라며 자신은 싸우겠다 외쳤죠
하지만 불리하고 어두운 전쟁의 양상은 다시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고 답답한 상황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의 행운이 정난군에 찾아오는데요
명나라 조정에 뜬금없이 '정난군이 북쪽으로 전군 퇴각했다' 라는 잘못된 보고가 전해졌고 이에 건문제는 황제군을 회군 시켜버렸던 것이죠
그러자 정난군은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섰고 고립 되다시피 한 하복과 평안의 부대를 격파 시켰으며 이후 그들을 구원하러 오던 요동의 군대 마저 작살내버렸습니다
정난군은 기세를 잡은 김에 정말 엄청난 속도로 남진해 성용의 부대와 철현의 부대 마저 꺾어버리는 기염을 토했죠
이후로도 속전속결로 남진에 남진을 거듭해 양주까지 순식간에 함락시켰고 성용은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긁어모아 다시 정난군과 싸웠지만 또 다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파죽지세로 밀고내려오자 깜짝 놀란 건문제는 황급히 여러 지역에 조서를 내려 자신을 도우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죠
쭉쭉 치고 내려오는 정난군을 보자 수많은 명나라 장수들이 주체에게 항복했고 그러자 정난군의 남진은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되었으며 전광석화 같은 신속한 진군으로 마침내 수도인 남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정난군이 남경을 공격하자 얼마안가 곡왕 주혜와 이경륭이 문을 열고 정난군에게 항복했고 그렇게 결국 남경이 함락되고 말았죠
이 모습을 황궁에서 지켜보던 건문제는 스스로 황궁에 불을 질러버리면서 이 전쟁은 마침내 종결되었습니다
그런데 황제군이 질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건문제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정말 나쁜 판단력 때문이었죠
애초에 삭번정책을 시작했을 때 주체부터 족치기 시작했다면 아마 정난의 변도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또한 주체는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일 뿐이었기에 죽일 명분이 충분했고 삼촌이지만 그를 죽였다고 해서 건문제가 비판받을 일은 전혀 없었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주체를 죽일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숙부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리면서 황제군이 완벽하게 승리할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만것입니다
게다가 뭔가 문제가 생겼을때 제태와 황자징의 의견이 계속 달랐기에 건문제는 한가지 의견을 선택해야 했었는데 항상 좋지 않은 선택지만을 골랐던 덕에 정난의 변에서 패배를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첫 전투에서 경병문이 대패를 하긴 했어도 성안에서 농성하며 정난군을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건문제가 경병문을 자르고 희대의 졸장 이경륭을 새로운 대장으로 썼기 때문에 계속해서 패배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황자징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이경륭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건문제는 그를 살려줬고 결국 건문제를 배신하고 마지막에 남경의 성문을 열어준 인물이 이 이경륭 이었습니다
반면에 주체는 정난의 변 내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면서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승리를 거두었고 그렇게 힘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을때 그대로 밀고나가 결국엔 승리를 거둔것 역시 칭찬 할만한 점입니다
어쨌든 건문제는 황궁에 불을 지른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는데요
일설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고 전해지기도 하고 난전중에 불에 타 죽었다 라는 등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그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여러 전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요
주원장이 죽기전 건문제에게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던적이 있는데 위급할때 열어보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래서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탁발승 때 쓰던 목탁과 바리떼가 나와서 스님으로 변장을 하고 도주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이후 1978년, 남경에서 황궁 근처에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하던 중에 지하통로가 발견되었고 건문제는 아마 이곳을 통해 도망쳤을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행방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연왕 주체는 신하들에게 추대를 받는 형식으로 제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영락제 이죠
그리고 황자징과 제태는 이후 목숨을 잃었으며 건문제의 스승이던 방효유는 "연나라 도적이 제위를 찬탈했다" 라는 글을써 가족과 친척을 포함한 구족에 친구나 스승, 제자를 포함해 십족이 몰살되는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삼촌이 조카의 황위(왕위)를 찬탈했다 라는 의미에서는 조선에서 있었던 계유정난과 매우 흡사하지만 스케일에서 만큼은 확실히 대륙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그런지 매우 큰것 같네요
지금까지 명나라 버전의 계유정난, 정난의 변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중국역사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빈. 친구에게 지독하게 배신을 당했지만 개똥까지 먹어가며 결국 복수에 성공했던 최고 병법가 (1) | 2023.07.18 |
---|---|
몽염.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만리장성까지 완성시켰지만 간신 조고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 (1) | 2023.07.10 |
탕핑족. 중국 공산당에 배째라는 마인드로 스스로 삶을 포기한 중국의 N포 세대들 (0) | 2023.07.06 |
시혼궁녀. 청나라 황실에서만 있었던 황자나 공주가 결혼하기 전에 했던 독특한 제도 (0) | 2023.07.04 |
홍수전. 예수에 빙의해서 태평천국운동을 일으키고 청나라를 거의 집어삼킬뻔 했던 교주 (0) | 2023.06.28 |
양기. 환관들이 후한의 정치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기 시작한 계기를 만들었던 인물 (feat. 십상시) (0) | 2023.06.27 |
어여의 난. 명나라에 공녀로 간 한 여인으로 인해 2800여명이 죽임당한 사건 (0) | 2023.06.26 |
순치제. 그렇다할 업적은 없지만 강희제를 낳았다는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업적을 쌓은것 같은 황제 (0) | 202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