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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몽염.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만리장성까지 완성시켰지만 간신 조고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

by 사탐과탐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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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과 함께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만리장성까지 완성시켰지만 간신 조고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몽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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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진나라 명장 이신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만화 킹덤을 보면 이신과 라이벌 비슷하게 나오는 인물이 두명 있습니다

한명은 진나라 명장 왕전의 아들인 '왕분'이고 다른 한명은 또 다른 진나라 명장 몽무의 아들인 '몽염' 이죠

이 세명은 나중에 천하 대장군이 될것이라며 서로 경쟁해가며 성장해가는 내용인데요

 

이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몽염 입니다

킹덤 내에서 몽염은 머리도 좋고, 잘생기고, 집안도 좋으면서 심지어 무력도 높은 넘사벽의 엄친아 같은 존재 이죠

그런데 역사속에서의 몽염 역시 만화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문무를 겸비하고 수많은 전공을 세운 몽염도 마지막은 정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죠

 

오늘은 이 몽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약 2200년 전의 일이고, 기록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탓인지 아쉽게도 몽염이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 몽씨가문은 원래 제나라 사람들이었는데 몽염의 할아버지인 몽오가 진나라 소양왕의 신하로 들어가면서 그때부터 진나라에서 살게 되었죠

그리고 몽염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몽무 이고 그의 동생은 훗날 진시황제 영정의 최측근이 되는 몽의 입니다

 

이 몽씨 가문은 몽오-몽무-몽염과 몽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서 큰 공을 세우며 진나라에서 최고 명문가가 되었죠

몽염은 일찍부터 형법을 배워 옥관을 지냈으며 소송과 재판에 관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왕 영정(훗날 진시황제)은 본격적으로 정복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는데요

인접했던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삼진)를 공격하기 시작해 기원전 230년에는 장군 등이 한나라를 멸망 시키면서 진나라 천하통일에 첫 신호탄을 날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삼진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조나라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는데 기원전 228년 진나라 최고의 명장 왕전이 수도 한단을 함락시키면서 그렇게 조나라도 멸망해 버렸습니다

또한 기원전 225년에는 왕전의 아들 왕분이 위나라 수도 대량을 무너뜨렸고 그렇게 진왕 영정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죠

 

그러던 기원전 224년, 진나라의 다음 타깃은 초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때 진왕은 장군들을 모아놓고 초나라를 공략하는데 얼마만큼의 병력이 필요한지 물었죠

그러자 혈기왕성하고 젊은 장군이었던 이신은 20만의 군사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고 왕전은 60만의 병력은 있어야 초나라를 공략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진왕은 이신과 몽염에게 20만의 병력을 주고 초나라를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죠

 

전쟁이 시작된 이후 몽염과 이신은 각각 침과 평여를 함락시키며 승승장구 했지만 이후 성보라는곳에서 합류하려다가 초나라이 최후의 명장 항연(항우의 할아버지)에게 기습을 당해 대패한 뒤 다시 진나라로 퇴각할수 밖에 없었죠

이후 진왕은 왕전과 몽무에게 60만의 병력을 주어 초나라 정벌을 지시했고 그렇게 기원전 223년 초나라는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볼모로 있던 연나라 태자 단이 형가라는 암살자를 진왕에게 보냈다가 암살에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이때 격분한 진왕은 연나라를 공격해 왕분이 연나라 왕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기원전 222년에 연나라도 멸망하고 말았죠

그로부터 1년후인 기원전 221년, 왕분과 이신이 제나라를 정복하고 비로소 전국통일을 완수하게 되었습니다

제나라를 공격할때 몽염도 참전해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을 뿐만아니라 3대째 명장 가문이던 몽씨 가문의 힘도 살짝 빌린 몽염은 내사(內史)에 임명되었죠

그리고 천하통일을 이루어낸 진왕 영정은 마침내 진시황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진시황제는 몽염에게 30만의 군사를 내어주고 오르도스 지역 (현재 내몽골자치구 부근)에 있는 흉노를 정벌하라 명했는데요

그렇게 몽염은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흉노를 제대로 조져버리면서 오르도스 일대인 하남을 점령해버렸고 그곳에 살고있던 흉노를 북쪽으로 몰아내버렸죠

 

이때 흉노족이 빼앗긴 영토는 훗날 묵돌선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다시 빼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훗날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나서 흉노족과 일전을 벌이다 개발린걸 생각하면 몽염은 확실히 병사를 지휘하는데 있어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었다는걸 알수 있죠

 

어쨌든 이후 몽염은 다시 흉노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과거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나라, 연나라, 진나라가 쌓아놓았던 장성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기존에 있던 장성들도 보수를 해 나갔는데요

거기에 더불어 임조에서 시작해 요동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요새를 다 이어서 성채를 쌓았는데 총길이가 만리에 달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것이 바로 현재의 만리장성입니다

훗날 진시황제가 만들었다는 만리장성을 실제로 공사를 한건 바로 몽염이었던 것이죠

어쨌든 이후로도 자신은 상군에 주둔하면서 10년여 기간동안 북방지역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때 몽염의 위세는 대단했는데 흉노족이 몽염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을 정도였다고 하죠

 

몽염이 북방에서 흉노족을 조져버리고 튼튼한 장성도 쌓은데다가 방어도 굳건히 하면서 큰 공적을 쌓자 진시황제는 몽염과 더불어 몽씨가문 전체를 더욱 신임하기 시작했는데요

몽염의 동생인 몽의 또한 진시황제가 굉장히 총애 했는데 몽의는 상경이란 직책에 오른뒤 진시황제가 어디갈때 같은 수레를 타고 다녔을 정도였으며 궁 내에 있을때는 항상 진시황제 근처에서 있으며 충심을 다해 여러 계책을 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몽염은 국외의 일을 맡고 몽의는 국내의 일을 맡아 둘다 충실히 임무를 다하면서 진나라 최고의 충신들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위세가 대단하다보니 장군이나 재상들도 감히 몽염 몽의 형제에게 맞서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날, 몽씨 형제를 비극으로 몰고갈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환관이던 조고가 대죄를 지었는데 진시황제가 몽의에게 조고의 죄가 무엇인지 물었던 것이죠

 

이에 몽의는 그의 죄를 낱낱히 밝혔고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진시황제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고는 환관의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처형당할 운명에 처해졌지만 진시황제는 조고의 능력을 높이사 사형을 면하게 해주었으며 조고의 관직과 작위까지 회복시켜 준것이죠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복귀한 조고는 몽의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 원한은 몽씨 형제에게 비극적인 일을 가져다 주게 되죠

한편, 과거 총명했던 진시황제는 점점 총기가 사라지고 암군의 모습이 슬슬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고나서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들과 수많은 서적들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사건인 분서갱유 등의 사건을 벌였는데 보다못한 황태자 부소가 진시황제에게 민생을 돌보라고 간언하는 일이 벌어진것이죠

이에 격분한 진시황제는 부소를 몽염이 있는 북방국경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렇게 몽염은 부소와 함께 지내게 되었죠

 

그러던 기원전 210년 7월, 어마무시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순행을 떠난 진시황제가 회계에서 신나게 놀다가 낭야라는 곳으로 향했는데 이때 병에 걸려버린것이죠

그러자 진시황제는 몽의를 여러 산천에 보내 자신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리라고 명했고 몽염과 함께 있던 부소에게 편지를 써서 "얼른 함양으로 돌아와서 나의 장례를 치루어라" 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는데 편지를 보내기도 전에 진시황제가 세상을 떠나버렸던 것이죠

그리고 진시황제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승상 이사와 조고, 그리고 시황제의 둘째아들 호해, 이렇게 세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조고는 과거 몽의 때문에 목숨이 달아날뻔한 사건이 떠올랐고 이참에 자신의 원한을 갚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조고는 자신과 사이가 좋던 호해를 황제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조고는 호해를 찾아가서 부소 대신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것을 부추겼고 당시 몽씨 가문의 강력한 위세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지는 않을까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승상 이사에게도 찾아가 부소 대신에 호해를 황제로 옹립할것을 권했던 것이죠

 

그렇게 조고의 꾀임에 넘어간 이사와 호해는 진시황제의 유언장을 위조한 뒤 부소와 몽염을 처리하기 위해 진시황제의 명령인 척 편지를 썼는데 부소는 효도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몽염에게는 북방을 방어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것을 명했습니다

그러자 뜬금없는 자결 명령에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몽염은 명을 받들어 목숨을 끊으려는 부소를 말리면서 진시황제의 명령에 의심을 품은채 자신의 죄를 다시 심사해달라고 청했죠

 

하지만 끝내 부소는 자결하고 말았고 몽염은 자결을 거부하다가 결국 양주에 감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사구정변'이죠

어쨌든 호해는 부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몽염을 감금에서 풀어주고 용서해주려고 했는데요

 

하지만 몽씨 형제들이 다시 권력을 얻을까 두려웠던 조고는 예전에 진시황제가 호해를 태자로 삼으려 했을때 몽의가 격렬히 반대를 했다고 주장했죠

거기다가 조고는 몽씨 가문을 몰락 시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핵을 거듭했습니다

그러자 결국 호해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몽의를 사형시켜 버렸죠

 

그리고 감금 당해있던 몽염에게도 계속해서 자결을 명했고 몽염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라고 말했다가 잠시후에 다시 말하길 "임조에서 요동까지 엄청난 공사를 해가며 성을 만리나 쌓았으니 그 땅의 지맥이 어찌 끊어지지 않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이고, 이는 죽어 마땅하다" 라는 말을 남긴채 독약을 먹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나라를 지탱해온 뛰어난 인물 두명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죠

 

훗날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몽염열전에서 몽염의 죽음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했는데요

사마천은 "백성들이 평안하게 지낼수 있도록 힘을 쓰지않고 황제의 명령에 따라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으니 몽씨 형제가 죽임을 당한것도 마땅한것이다 뭔 지맥을 끊었느니 하는 개소리를 할수 있냐?" 라고 했던 것이죠

어쨌든 조고같은 간신의 말만 듣고 몽의나 몽염과 같은 인물들을 진나라 스스로 죽여서 였을까요?

 

진나라는 얼마안가 멸망하고 말았고 이후 유방과 항우가 싸우는 초한지 시대가 열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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