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진압이든 복수든 화살 한발로 다 해결해 버린 희대의 명사수 원숭이도 그의 솜씨를 알아보고 벌벌 떨었다는 양유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는 기령과 유비가 전쟁을 하려하자 둘을 불러 만약 자신이 300보 뒤에서 극(戟)의 소지(小支-극의 옆에 튀어나온 가지창 부분)를 쏘았을때 이것이 적중하면 둘은 화해하기로 했었죠
그리고 여포가 활을 들어 극을 쏘았는데 소지(小支)를 정확히 맞췄고 그렇게 둘은 전쟁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활하면 삼국지의 황충, 그리고 조선의 이성계 등이 있죠
이들은 전부 명사수로 백발백중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름은 잘 들어본적 없지만 엄청난 명사수였던 양유기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심지어 이 양유기에 의해서 생긴 고사성어가 바로 '백발백중' 이죠
그는 중국 춘추시대의 양나라 출신이었는데 양나라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 이후 초나라의 신하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일개 말단 병사였는데요
특이한 점은 어렸을때부터 굉장히 활을 잘 쏘았던 것이죠
그가 어느날 밖에 나갔는데 넓은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걸 보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는 젊은 남자 둘이서 활쏘기 대결을 하고 있었는데 50보 뒤에서 누가 더 많은 과녁을 마추는가 하는 것이었죠
한 남자의 화살이 과녁 가운데를 맞출때 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갈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양유기가 앞으로 나가서 "100보는 되어야 활솜씨가 제법이라 할수있지" 라고 그들을 비꼬았고 그렇게 양유기와 그 남자의 대결이 벌어졌죠
먼저 양유기는 백보 앞에 있는 버드나무 잎에 표시를 하고 그것을 맞추는 사람이 이긴 걸로 하기로 했죠
그렇게 남자가 활을 쐈지만 스치지도 못하고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다음 차례인 양유기는 바로 버드나무 잎을 꿰뚫어버렸고 이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그야말로 신궁(神弓)이라며 양유기를 칭찬했죠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투덜거리며 어쩌다 요행으로 맞춘거라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양유기는 그에게 버들잎 10개에 표시를 해놓으면 그걸 다 맞춰서 요행이 아니란걸 보여주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양유기는 버들잎 10개 마저 다 맞추자 아까보다 더한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으며 그 남자도 양유기에게 귀신같은 솜씨라고 하면서 자신은 오늘부터 활을 쏘지 않고 글공부를 시작하겠다며 자리를 떠났죠
그렇게 양유기의 명성은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고 그가 100발을 쏘면 다 맞춘다 하여 '백발백중' 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습니다
또한 100보의 거리에서 버들잎을 활로 쏴 모두 명중했다 하여 '백보천양(百步穿楊)' 이라는 고사성어도 생겼죠
그러던 어느날, 잡병에 불과했던 그가 높은 벼슬을 얻게되는일이 벌어지는데요
기원전 606년, 초나라에서 투월초라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죠
투월초 역시 명성이 자자했던 명사수였습니다
그러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군이 대치했을때 양유기가 투월초에게 활쏘기 시합을 청했죠
그렇게 서로 화살 3발씩을 쏘기로 했고 먼저 투월초가 양유기에게 화살을 쏘았습니다
첫번째 화살은 양유기가 활로 쳐서 막았고 두번째 화살은 피했으며 세번째 화살은 날아오던 화살을 양유기가 이로 확 물어버렸다고 하죠
그렇게 그는 투월초가 쏜 화살 세발을 모두 막아냈고 다음 양유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양유기는 활을 쏘는척하며 화살없이 시위를 당겨 두번을 튕겼죠
그러자 투월초는 두번 다 몸을 흔들며 오지도 않는 화살을 피하는 시늉을 했는데 이때 양유기는 정조준한 단 한발의 화살로 투월초를 꿰뚫어버렸고 그렇게 투월초는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공을 높이사, 초장왕은 양유기를 대부라는 벼슬에 앉힌것이었죠
그의 활솜씨에 대한 일화는 더 있는데요
어느날 초장왕은 자신이 키우던 흰 원숭이에게 활을 쏘았는데 원숭이가 날아오는 화살을 잡더니 초장왕을 놀리며 장난을 친것입니다
그러자 초장왕은 양유기를 불러 원숭이를 쏘라고 시켰는데 양유기가 활과 화살을 들기도 전에 원숭이가 나무에 메달려 안절부절 못하고 울부짖는 것이었죠
원숭이가 갑자기 울부짖은 이유는 양유기가 화살을 쏜다면 자신이 맞아 죽을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때 생긴 고사성어가 바로 '양유호원(養由號猨)'인데요
이는 원숭이도 사람을 제대로 알아본다는 의미이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기원전 575년에 진(晉)나라와 초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진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던 정나라가 갑자기 진나라를 배신하고 앙숙관계이던 초나라와 동맹을 맺은게 화근이 되었던 것이죠
이에 진여공은 격분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공격하자 초공왕도 정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진군과 초군은 언릉이라는곳에서 결전을 벌이게 되죠
그런데 전투중 결국 초공왕의 아들인 웅벌이 사로잡혀 진나라의 포로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초공왕은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진나라와 전투를 벌였지만 진나라 장수이던 여기(呂錡)가 초공왕을 조준해 화살을 쏘았고 이 화살은 초공왕의 왼쪽 눈에 박혀버렸죠
그러자 결국 초나라는 또다시 패배해 퇴각하게 되었고 진군은 기세를 타고 초왕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반이 죽기살기로 저항해 초공왕은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죠
초공왕은 굉장히 분노해 양유기를 불러 자신의 화살통에서 화살 두대를 꺼내주며 양유기에게 명령했습니다
"과인의 눈알을 쏜 적장은 녹색옷에 수염이 많이 난놈이오 장군이 과인의 원수를 갚아주시오" 라고 말했죠
이에 양유기는 즉시 병거를 몰고 달려나가 여기를 발견하자마자 "니가 우리 왕을 상하게 한놈이냐?" 라고 외친뒤 화살을 쏘았는데 여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양유기가 쏜 화살은 여기의 목을 꿰뚫으면서 곧바로 여기는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양유기는 다시 돌아와 남은 화살 한대를 초공왕에게 돌려주면서 복수를 완료 했다고 보고했고 이에 초공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이 입고 있던 옷과 큰 상을 하사했다고 하죠
하지만 이후 중군장이던 자반이 술에 만취해 뻗었다는 소식을 들은 초공왕은 이래선 절대 진나라군에 이길수가 없겠다 판단해 전군 퇴각을 명했고 그렇게 진나라와의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퇴각할때도 양유기는 숙산염의 요청을 받아 부대 후위에서 활로 진나라의 군대가 추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하죠
이후 그는 초공왕에 의해 마굿간을 관장하는 궁구윤으로 임명했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그에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소설 열국지에는 그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초공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초나라가 잠깐 혼란한 틈을타 오나라가 공격해 들어왔고 이에 양유기는 또다시 오나라를 토벌하러 출진했던 것이죠
하지만 적의 계략에 제대로 걸려들게 되었고 무수히 많은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 전투중에 전사하고 만것입니다
그러자 초나라 병사들은 그의 복수를 위해 죽기살기로 싸웠고 마침내 오군을 격퇴했다는 내용이죠
양유기가 언제 어떻게 태어났고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잠깐 잠깐 기록된 내용이 모두 활에 관련된 내용인걸 보면 정말 당대 최고의 명사수였던건 인정할수 밖에 없을것 같네요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정사의 기록이 굉장히 짧은 것이 아쉬울 따름 입니다
지금까지 백발백중의 명사수, 양유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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