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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범증. 역사를 바꿀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비운의 책사

by 사탐과탐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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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군 최고의 책략가로 진나라와의 전쟁을 이기고 초나라와 항우를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만들었으며 여러번 역사를 바꿀기회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비운의 책사 범증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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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2년 12월, 초한대전의 마지막 전투인 해하전투에서 유방이 승리하면서 그가 천하의 주인이 되죠

하지만 이때 항우가 한 인물의 말을 들었다면 천하의 주인 자리는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요

그는 바로 항우의 곁에서 장량, 진평, 소하의 몫을 해낸 항우군 최고의 책사 범증입니다

 

오늘은 의심많고 고집 센 항우의 옆에서 끝까지 책사로써 최선을 다했던 범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범증은 70세의 나이가 될때까지 은거 생활을 하다보니 과거 그의 행적을 자세히 알수는 없는데요

여러 기록물에서 범증이 살았던 지역이 다 달랐을 정도로 조금 미스테리한 인물이죠

그만큼 그가 과거에 어디서 살았는지는 알수 없지만 집에 있으면서 기이한 계책을 잘 냈다는 내용이 있는걸 보면 당시에도 상당히 유명했던 인물인거 같습니다

 

그러던 중 208년에 진승 오광의난이 일어났는데 그로부터 1년후인 209년 9월, 초나라의 귀족 출신인 항량이 (항량 : 초나라의 마지막 명장 항연의 아들) 진나라가 혼란한 틈을타 초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조카인 항우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죠

이때 범증은 항량을 찾아갔고 그렇게 항량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이후 진승, 오광의 난은 진압되긴 했지만 진나라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다시 6국이 부활하는 등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하자마자 다시 갈라지고 말았는데요

범증은 항량에게 진승 오광의 난이 실패한 이유를 '그들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초나라 왕족을 찾아 왕위에 올려야만 봉기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항량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민간에 숨어 살던 초 회왕의 후손이던 심을 찾아내 왕위에 앉혔으니 그가 바로 초나라 의제 입니다

그렇게 초나라 재건이라는 명분을 얻은 항량은 민심도 얻을수 있었고 이후 계속해서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진나라와의 전투를 개시해 동아전투에서 진나라장수 장한을 대파해 버리는 등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항량이 기고만장해 있던 어느날 늦은밤 야습을 감행한 장한의 진나라군에 패하여 결국 전사하고 말았죠

이후 항량군은 조카이던 항우가 넘겨받게 되었고 범증은 항우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항우는 그를 '아보(亞父)' 라고 불렀는데 아보라는 말은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한다는 뜻이며 그 정도로 항우는 범증을 아꼈죠

 

한편 장한은 항량을 죽이고 나서 기세를 몰아 조나라 공략에 나섰는데요

조나라가 무너지면 다음은 초나라 차례가 될것이 틀림없었기에 초 의제는 송의를 상장군으로 임명하고 항우와 범증을 그의 수하로 삼은뒤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초 의제는 이때 유방에게는 서쪽의 함곡관을 공략하게 하면서 장수들 중 가장 먼저 관중을 평정한 자를 그곳의 왕으로 삼는다고 말했죠

 

한편 초나라 군대를 지휘하게 된 송의는 조나라를 구원하러 가는 도중 안양이라는곳에 도착하자 더이상 진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머물렀는데요

이에 불만을 품은 항우는 송의를 죽여버렸고 자신이 상장군이 되어 초나라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의 거록을 구원하러 갔는데 이때 항우군은 황하를 건넌뒤 타고온 배를 모두 침몰시켰으며 밥을 지을 솥을 다 부셔버리고 단 3일만의 식량을 지닌채 죽기를 각오하고 반드시 전투에서 이기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바로 '파부침주(破釜沈舟)' 이죠

 

그렇게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군은 진나라군을 개박살 내버릴수 있었습니다

이때 진나라 장수 장한은 간신 조고의 농단으로 공을 세워봤자 시기당할 것이며 패배한다면 책임을 지고 죽게 될 상황에 처하자 2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항우에게 투항해버렸죠

한편 함곡관을 향해 진군했던 유방군은 이때 이미 관중에 들어갔으며 기원전 206년 10월에는 진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방은 함곡관에 부하 장수를 보내 누구도 그곳을 지나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소식을 듣고 화가난 항우는 곧바로 전군을 이끌고 함곡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함곡관에 도착을 했지만 유방의 부하 장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죠

이때 범증은 불같이 화내며 "패공은 반역을 하려 하는가!?" 라고 말하더니 근처 집들에 장작 한 묶음씩을 가져오라 명했고 함곡관의 문을 불태워 버리려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유방의 부하들은 문을 열어주었고 그렇게 항우는 함곡관을 지나갈수 있었죠

 

그리고 40만 항우군은 마침내 홍문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은 여색과 재물을 좋아하는데 지금 관중에서는 재물과 여자에게 손 한번 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유방의 뜻이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훗날 큰 장애가 될 인물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그를 공격하셔야 합니다" 라고 조언했죠

그러지 않아도 유방에게 열받은 항우는 그를 제대로 족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은 항우의 숙부이던 항백과 친분이 있던 사이였는데요

장량은 항백에게 부탁해 유방이 항우를 찾아가 용서를 빌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했죠

그렇게 항우가 홍문에서 연 연회자리에 유방과 장량은 함께 찾아가 항우에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항우의 분노는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고 범증이 연회자리에서 수차례 눈빛을 보내고 옥결을 들어보이며 그를 없애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지 않았죠

그러자 범증은 밖에나가 항우의 사촌동생이던 항장에게 검무를 추는척 하다가 기회가오면 유방을 찔러 죽일것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항백이 항장과 함께 검무를 추며 유방의 암살을 막았고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유방은 화장실에 가는척 하면서 얼른 도망을 쳐 버렸죠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린 항우가 너무 어이없고 열받았는지 범증은 "어린놈과는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이제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바로 패공 유방이다!” 라고 하며 답답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관중땅까지 차지하면서 천하의 주인이 되버린 서초패왕 항우는 18명의 제후들을 각지의 왕으로 뽑기 시작했는데요

항우는 범증의 조언을 받아들여 유방을 한왕으로 삼아 오지 중의 오지인 파촉땅으로 보내버렸습니다

파촉은 잔도가 없으면 탈출 자체가 불가능한 감옥같은 곳이었으며 당시 정치범들을 유배보내는 곳이기도 했죠

 

그리고 유방이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진나라의 옛 장수들인 장한, 사마흔, 동예를 각각 옹왕(雍王), 새왕(塞王), 적왕(翟王)으로 봉하여 유방이 파촉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전담 마크맨들을 붙여버렸습니다

한편 천하의 주인이 된 항우에게 범증의 거칠었던 조언의 말들은 빈번히 항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는데요

한신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것을 깨달은 범증은 몇번이나 항우를 찾아가 한신을 중요하게 써야한다며 천거했고 만약 그를 쓰지 않을거면 죽여서 후환을 없애라고 했지만 한신을 우습게 여긴 항우는 범증의 충고를 무시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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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신은 항우 진영을 떠나 유방에게 찾아갔는데 역시나 그의 능력을 꿰뚫어본 소하의 추천으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았고 몇달동안 자신의 세력을 정비해 한왕이 된지 불과 8개월만인 206년 8월에 불시에 함곡관을 빠져나와 방심하고 있던 전담 마크맨 삼진(옹, 새, 적)을 공격해버렸죠

그렇게 초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방은 삼진을 평정한뒤 죽은 초 의제를 위해 제사를 지낸뒤 각지의 제후들을 집결시켜 56만의 대군을 모을수 있었고 그렇게 초나라의 본거지인 팽성으로 진격했죠

이때 항우는 반란을 일으킨 제나라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에 유방은 손쉽게 팽성을 점령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방을 그냥 내버려둘수 없었던 항우는 3만명의 병사만을 이끌고 엄청난 속도로 팽성을 향해 진격했고 병력차가 약 20배나 났지만 한나라군을 만나기만 하면 벌레 밟아 죽이듯 마구 조져버렸죠

 

그렇게 56만 대군은 고작 항우가 이끄는 3만명의 병사들로 인해 완전히 개박살 나버렸으며 유방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는데 온 정신을 쏟고있었습니다

결국 유방은 형양으로 간신히 도망칠수 있었는데요

이때 항우는 유방을 쫓아 형양까지 오게 되면서 형양 마저 함락 직전 까지 몰렸으며 항우가 유방군의 식량보급로까지 끊어버리자 유방은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죠.

 

유방은 결국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 강화 요청을 했는데 아직 제나라의 반란도 완전히 진압하지 못했고 전투도 지지부진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항우는 유방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범증은 유방은 위험한 인물이니 강화를 받아들여선 절대 안된다고 주장했고 고심끝에 범증의 주장을 받아들인 항우는 더욱 형양에 맹공세를 퍼부었죠

범증의 방해로 인해 강화 시도가 실패한 유방은 진평에게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해쳐나갈수 있을지 대책을 물었는데요

 

그러자 진평은 "항우의 강직한 신하들은 범증, 종리말, 용저, 주은 등 몇 사람 밖에 없습니다 대왕께서 만약에 금 수만근을 내어 주신다면 항우와 신하들의 사이를 갈라 놓아 서로 의심하게 할수 있습니다 이후 공격을 가하면 이길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것이었죠

그러자 유방은 곧바로 진평에게 몇만이나 되는 금을 주었고 진평은 돈을 쏟아 부어 '항우의 수많은 신하들이 항우에게 불만을 품었고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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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문은 항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항우는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사신을 가장해 한나라 진영에 정탐을 보냈죠

그리고 유방은 일부러 호화로운 음식인 태뢰(太牢, 소·양·돼지고기로 만든 성대한 요리)를 내놓은채 항우의 사신을 맞이 했습니다

유방의 신하들이 범증의 사신이 왔다는 식으로 말하자 항우의 사신들은 "우리는 초왕의 사신이다" 라고 말했고 이에 유방의 신하들은 굉장히 실망하며 태뢰를 도로 물리면서 사신들에게는 형편없는 음식을 대접했죠

 

이에 기분이 상한 사신들은 항우에게 돌아가 모든것들을 제대로 보고해 버렸습니다

너무 쉽게 진평의 반간계에 넘어간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을 하고 있다고 믿어 버렸고 점점 범증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군대 내에서도 범증의 역할을 점점 줄여나가면서 그의 권한을 하나하나 빼앗기 시작했죠

이에 어이도 없고 열받은 범증은 항우에게 찾아가 "천하의 일이 정해졌으니 군왕께서는 스스로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늙어 죽고자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범증이 못마땅하고 의심스러웠던 항우는 범증의 사직서를 쉽게 수리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범증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등창이 나서 객사를 하고 말았죠

최강을 자부하던 항우의 두뇌역할을 한 범증의 최후는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인 범증을 어처구니없이 잃은 항우는 이빨 뽑힌 호랑이 신세가 되어버렸고 결국 해하전투를 마지막으로 유방은 다시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세울수 있었죠

 

훗날 유방은 공신들 앞에서 자신은 인재들을 잘 활용했지만 "항우는 그나마 있는 범증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패한것이다" 라고 말하며, 범증을 항우군 최고의 참모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범증이 만약 유방의 책사들인 장량, 진평, 소하처럼 조금만 더 항우를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대하고 예의를 갖춰 그를 대했다면 초한대전의 결말과 역사는 180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까지 항우의 책사이자 두뇌 역할을 했던 인물 범증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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