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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손빈. 친구에게 지독하게 배신을 당했지만 개똥까지 먹어가며 결국 복수에 성공했던 최고 병법가

by 사탐과탐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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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지독하게 배신을 당했지만 개똥까지 먹어가며 결국 복수에 성공했던 최고 병법가 손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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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귀곡선생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청계산 귀곡산장에 은거해 살면서 여러 학문에 통달했으며 네명의 수제자를 두었는데요

그 수제자는 바로 소진과 장의, 방연, 그리고 손빈이었죠

 

귀곡선생의 네 제자는 훗날 전국시대를 주름잡는 책략가가 되는데요

소진은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힘을 합쳐 대항하자는 합종책을 기획한 전략가였고 장의는 소진의 합종책에 대항해 연횡책을 기획한 전략가 였습니다

방연과 손빈 역시 훗날 대단한 병법가가 되었는데 둘은 함께 동문수학한 친한 사이였지만 방연의 시기심으로 인해 둘은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죠

 

오늘은 엄청난 수난을 당했지만 결국 복수에 성공한 병법가 손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손빈은 귀곡선생의 밑에서 공부를 할때 방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둘은 금새 친해졌고 나이가 많았던 방연이 형이 되었죠

하지만 방연은 손자의 후예인데다가 천재였던 손빈을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한날은 귀곡선생이 손빈과 방연에게 꽃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요

이때 방연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가져온 반면 손빈은 방안에 놓여져있던 꽃을 가져왔다고 하죠

 

방연이 가져온 꽃은 꽃잎이 12개였던 마두령이라는 꽃이었는데 귀곡선생은 12란 숫자의 의미를 12년간 부를 얻을것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을 만나 흥하고 말을 만나 죽을것이라는 점괘도 나왔는데 방연이 하산해 벼슬자리를 얻기위해 위나라를 찾아갔을때 위왕이 양고기를 먹고 있었다고 하죠

이때 손빈은 국화를 가져왔는데 한겨울에도 꽃을 떨구지 않는 국화를 보고 시련이 있어도 이기고 살아남을것이며 만약 위기의 순간이 오면 미친척을 하면 살수 있을거라는 점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후 방연은 위나라에서 벼슬을 얻어 부단히 노력한 결과 불과 10년만에 위나라의 대장군이 되는 쾌거를 거두었죠

그리고 방연은 당시 최고의 병법가 답게 위나라를 당대 최강국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때쯤 손빈 역시 공부를 마치고 하산을 하게 되었고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방연을 찾아갔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방연의 도움을 받아 위나라에서 관직에 오르게 되고 장군 직책까지 얻게 되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오래전부터 방연은 손빈의 천재적인 재능을 시기 질투하고 있었고 손빈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다른 대신들이 손빈과의 사이를 이간질하자 방연은 기다렸다는듯이 손빈을 제나라의 스파이로 몰아 버렸고 그렇게 순식간에 스파이로 몰린 손빈은 무릎 연골을 파내 앉은뱅이로 만드는 형벌인 빈형을 받게 되었으며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인 월형과 이마에 죄목을 문신해 버리는 자자형(刺字刑)까지 받게되어 버렸죠

 

심지어 방연은 손빈에게 자기가 말려서 이정도로 끝난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손빈은 이런 방연에게 고마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제나라에서는 손빈을 초빙해가기 위해 몰래 위나라에 침투한 상황이었는데요

그들은 몰래 손빈을 찾아가 방연이 손빈을 속이고 있고 자신이 그런 형벌을 받은 이유가 방연 때문이라는 말을 다 해줘버렸죠

방연에게 속았다는걸 알게된 손빈은 스승님의 가르침이 떠올라 미친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돼지 우리로 기어들어가 돼지가 싸놓은 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시가 느슨해지는걸 기다렸고 그렇게 모두가 방심한 틈을타 제나라 신하들과 함께 그들이 준비해놓은 마차를 타고 제나라로 도망가 버렸죠

그리고 손빈은 제나라의 장군인 전기의 빈객이 되어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어느날 전기와 제나라 왕이 전차 경주 내기를 하게 되었을때 필승법을 알려줘 신임을 얻었고 이후 전기는 손빈의 비범함을 알고 제나라 왕에게 추천해 주자 위왕은 손빈을 군사로 삼게 되었죠

그러던 기원전 354년,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 군이 조나라에 침공해 수도인 한단을 포위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조왕은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그렇게 전기와 손빈이 구원병을 이끌고 출진하게 되었죠

 

전기와 손빈이 제나라 위나라의 국경에 다다랐을 무렵 이미 한단이 함락되었고 조왕은 멀리 피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전기는 위군과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했지만 손빈은 지금 위나라의 주력군이 밖에 나가 있으니 위나라 수도 대량은 텅 비어 있을것이라고 했죠

그곳을 공격하면 어쩔수없이 위군은 회군 할수밖에 없을 것이고 조나라 구원에 성공할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 위나라 평릉성을 공격하는척 하면서 지원하러 오는 방연의 군대를 유인하자고 했죠

그렇게 평릉을 공격한 제나라군은 패배해 도망치는척 했고 이후 위나라 수도 대량의 외곽까지 갔다가 또 도망치는척 했으며 방연의 부대와도 싸우는척 하다가 도망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방연은 밤낮없이 제나라 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는데요

손빈은 제나라 군의 주력군을 계릉에 매복시켰다가 기세등등하게 추격하던 위나라 군을 기습해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안그래도 조나라와의 전투를 치른뒤였으며 제나라 군을 급하게 쫓는다고 기진맥진해 있던 위나라 군은 그대로 제나라군의 기습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채 도망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나라 군은 조나라 구원도 성공했고 위나라 군에 큰 피해를 입힐수도 있었죠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바로 위위구조(圍魏救趙) 입니다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한다."라는 뜻으로 적의 약점을 찔러 아군을 구한다 라는 의미이죠

 

이후 원수관계였던 손빈과 방연 사이의 종지부를 찍는 일대 결전이 마릉이라는곳에서 벌어지는데요

기원전 340년, 위나라는 조나라와 손을 잡고 한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전기와 손빈은 다시 출진해 한나라를 구원하러 갔는데요

제군은 다시 비어있던 대량을 공격하러 갔는데 이미 예상하고 있던 위군의 총대장 방연은 그곳에 태자 신과 병력을 배치시켜 놓았던 것이죠

 

방연은 만약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제나라를 먼저 제압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제군은 태자 신이 이끄는 위군에 막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방연도 제군을 먼저 없애기 위해 얼른 회군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두나라의 군이 서로 맞붙은 결과 제군은 방연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나라군이 패퇴한것은 손빈의 계략이었는데요

손빈은 방연과 위군을 제대로 섬멸하기 위한 한가지 계책을 떠올렸던 것이죠

그것은 바로 첫날에는 10만명 분의 밥을 지을수 있는 아궁이를 만들고 둘째날에는 진영을 옮겨 5만명 분의 아궁이를 만들고 셋째날에는 또 진영을 옮겨 3만명 분의 아궁이만 만들어 계속해서 아궁이 수를 줄여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는 이유가 있었는데 제나라군은 거짓 퇴각을 하면서 아궁이 숫자를 줄이면 이것을 본 방연이 많은수의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끔 만드는것이 목적이었던 것이죠

 

심지어 손빈의 생각과 맞아떨어져 방연은 3일동안 제나라의 군대를 추격하다가 남아 있는 아궁이의 갯수를 보고 제나라 병사들의 탈영이 속출하고 있고 제나라 군의 장수들도 우왕좌왕하며 이 사태를 수습할 능력과 의지도 없다고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승리를 확신한 방연은 더 빨리 추격해서 완전히 제나라군을 아작내버리기 위해 보병은 놔두고 정예 기병만을 선발해 굉장히 빠른속도로 손빈과 제나라군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소식을 들은 손빈은 방연의 군대가 저녁무렵이면 마릉에 도착할것이라고 예상했고 마릉의 어둡고 깊은 계곡에 있는 나무의 껍질을 벗긴 뒤 그곳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龐涓死於此樹之下)' 라고 적어놓았죠

그리고 1만명의 궁수를 근처에 매복 시킨뒤 만약 밤에 불빛이 보이면 그곳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밤이 되자 방연이 그곳에 도착하게 되었는데요

그리고 왠 나무에 무언가가 적혀있는걸 보았죠

그래서 방연은 적혀있는 글을 읽기위해 불을 비췄고 그 불빛을 본 제나라 병사들은 그곳을 향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긴것입니다

그렇게 수만개의 화살이 일제히 그곳으로 날아와 위군은 순식간에 궤멸 지경에 이르고 말았죠

 

그리고 이때 방연은 손빈이 적어놓은 글을 보고 "그 앉은뱅이 녀석이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구나!"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승이었던 귀곡선생이 말한 '양을 만나 흥하고 말을 만나 죽을것'이라는 점괘도 맞아 떨어졌는데 마릉의 마자가 바로 '말 마(馬)' 자였던 것이죠

그렇게 결국 방연은 수많은 화살을 맞고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손빈은 방연에게 복수를 성공했으며 이 전투를 마릉전투라고 부르게 되었죠

마릉전투 이후 손빈은 다시 전쟁에 나서지는 않은채 병법서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병법서가 바로 <손빈병법> 이었습니다

계릉전투와 마릉전투를 승리로 이끈 손빈은 그 위세와 이름을 떨쳤지만 그가 훗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하죠

 

여담으로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손빈의 작전을 거꾸로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유선의 명 때문에 제갈량은 북벌을 그만두고 성도로 돌아가야했고 자신이 철군할 경우 사마의의 군대가 공격해 올것이 뻔했기 때문에 한가지 계책을 냈는데 병사를 철수시키면서 아궁이 숫자를 매 숙영지마다 늘리라고 명령했던 것이죠

이에 사마의는 아궁이 숫자를 확인한 뒤 계속 병력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고 제갈량이 또 무언가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 결국 촉나라 군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제갈량이 퇴각한 이후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불러 물어보니 '병사는 늘지 않았는데 아궁이만 계속 늘렸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마의는 또 자신이 속았구나 하면서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고 하죠

아무튼 이런 병법가들의 기가막힌 전략과 계책은 아무리 들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것 같네요

 

지금까지 전국시대 제나라의 최고 전략가 손빈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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