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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묵돌선우. 흉노족의 최전성기를 이끌어낸 흉노 최고의 명군

by 사탐과탐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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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와 유방을 완벽에 가깝게 묵사발 내버린 흉노족의 최 전성기를 이끌어낸 흉노 최고의 명군 묵돌선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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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라는 말을 아시나요?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를 조선에서는 왕, 명나라 청나라에서는 황제라 칭했죠

선우는 바로 흉노제국에서 왕중의 왕으로 중국으로 따지면 황제에 해당하는 대 군주 입니다

한서 흉노전에 따르면 선우라는 호칭은 탱리고도선우의 약칭인데 탱리는 하늘을 뜻하고, 고도는 아들, 선우는 위대한, 광대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즉 선우라는 말은 위대한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흉노족은 과거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중국 대륙에 있던 여러 나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민족이었는데요

흉노족이 가장 강성하던 시기는 바로 진나라와 한나라시대 였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흉노족의 한 선우에게 대패하여 불평등 조약까지 맺은 굴욕을 맞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나라를 제대로 조져놓았던 선우가 바로 흉노족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묵돌 선우라는 인물이죠

오늘은 이 묵돌 선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묵돌선우는 역대 선우 중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선우로 진시황제 이후로 많이 위축되어있던 흉노 세력을 통합해 전성기를 이끈 명군으로 칭송받고 있죠

하지만 어릴적엔 골때리는 아버지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한창 초한전쟁이 일어나 중국이 혼란했을 때 흉노족은 국경이 맞닿아 있었던 월지나 동호를 상대로도 많이 밀리는 상황이었죠

 

또한 진시황제는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나서 명장 몽염에게 북방 수비를 맡겨 흉노를 대비 하게 하자 몽염은 여러 장성들을 잇고, 보수와 증축을 통해 만리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만들어 흉노를 대비했습니다

이때 몽염의 위세는 너무나 강력해 살고 있던 땅도 많이 빼앗기고 말았고 흉노도 감히 진나라를 어찌 하지 못했을 정도였죠

 

그런데 이후 진시황제가 죽고 몽염도 간신 조고에 의해 죽게 되면서 중국 대륙에서는 초한전쟁이 일어나 엄청난 혼란기가 찾아왔고 북방의 국경을 수비할 여력이 없어지자 흉노는 두만이 선우에 오르면서 세력이 급격히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두만선우는 진나라에 빼앗겼던 오르도스 지역을 되찾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두만선우의 맏아들이 바로 묵돌이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두만선우는 태자였던 묵돌보다 자신이 총애하던 연지(왕비나 후궁을 뜻함)가 낳은 아들을 다음 선우로 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묵돌을 월지에 볼모로 보냈는데 그를 죽게 하기 위해 갑자기 월지와 전쟁을 일으켜버렸죠

이에 열받은 월지 사람들은 볼모로 와있던 묵돌을 죽여버릴려고 했지만 묵돌이 기지를 발휘해 오히려 명마를 훔쳐타고 다시 흉노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두만선우 역시 묵돌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고 선우 바로 밑의 지위인 좌현왕의 작위를 내렸으며 1만명의 기병을 이끌게 했죠

하지만 여전히 묵돌의 지위는 안정적이지 않았고 또한 아버지 두만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걸 알게되자 격분하며 두만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소리나는 화살인 명적을 구해 자신 휘하에 있던 1만명의 기병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죠

 

훈련 방법은 간단했지만 매우 가혹했습니다

묵돌이 어떤 표적을 향해 명적을 쏘면 소리를 따라가 그 표적을 향해 일제히 활을 쏴야 하는것이었죠

하지만 이를 어기고 쏘지 않는 자는 무조건 목을 베었습니다

처음에 여기저기 활을 쏘니 병사들은 곧잘 따라하는것이었죠

이후 묵돌은 자신의 명마에 명적을 쏘니 몇몇 부하가 쏘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묵돌은 곧장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연지를 향해 활을 쏘니 또 몇몇 부하가 주저하기에 바로 목을 베어 버렸죠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 두만선우가 자리를 비웠을때 그가 명적을 두만의 애마를 향해 쏘자 병사들이 망설임 없이 두만의 애마를 향해 일제히 활을 쏘는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묵돌은 흐뭇해하며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죠그런데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기세등등하던 흉노군은, 계속해서 패퇴를 거듭했는데요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떠난 어느날이었습니다

함께 사냥을 하고 있던 중 타이밍이 오자 묵돌은 주저없이 아버지 두만을 향해 명적을 쐈죠

 

그러자 묵돌의 부하들은 지체없이 두만에게 화살을 쏴버렸고 그렇게 두만은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버린것입니다

이후 묵돌은 신속하게 아버지의 연지들과 배다른 동생들, 그리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까지 반대파를 일거에 제거해버렸고 그렇게 그는 다음 선우로 등극할수 있었죠

묵돌이 선우가 되었을 당시에는 동호의 세력이 매우 막강했었는데 묵돌이 선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동호는 묵돌을 이제 막 왕이된 애송이로 생각하고 그를 얕잡아보고 있었습니다

(동호 : 흉노가 있었던 몽골초원 동쪽에 있는 만주지역에 있던 민족 동호(東胡)는 동쪽 오랑캐란 뜻)

 

동호의 왕은 처음 묵돌에게 사신을 보내 흉노의 보물인 천리마를 요구했죠

이에 여러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묵돌은 그냥 동호의 요구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동호의 왕은 이제는 묵돌의 애첩 한명을 달라고 요구했죠

그러자 수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묵돌은 또다시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애첩을 선물로 준것입니다

이에 묵돌이 자신에게 제대로 쫄아있다고 생각한 동호의 왕은 동호와 흉노 사이에 있던 황무지 1천리를 내놓으라며 엄포를 놓았죠

 

그러자 여러 신하들은 주면 안된다와 어차피 쓸모없는 황무지 이니 동호에도 줘도 좋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진것입니다

그러자 묵돌은 줘도 좋다는 의견을 낸 신하들에게 "영토는 국가의 근본이다. 다른건 다 줘도 어떻게 영토를 줄수 있겠는가!!!" 라고 호통쳤고, 그 즉시 군사들을 소집해 동호를 급습해 버렸죠

그 결과 동호의 왕은 죽임당했고 수많은 백성들과 가축들을 약탈하여 다시 흉노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처음에 묵돌이 동호의 왕의 두차례 이어진 요구를 순순히 받아준것은 사실 계획된 것일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일부로 동호를 방심하게 만든후에 급습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고 그걸 숨기기위해 겁먹은척 연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계책은 훗날 한나라와의 전쟁에서도 발휘 되죠

 

어쨌든 그렇게 동호를 정벌하고나서 기세를 탄 묵돌은 이후 월지를 공격해 격파 했고 북쪽으로는 5개국을 정복해버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는 누번과 백양까지 차지하면서 과거 진나라 몽염에게 빼앗긴 땅의 대부분을 다시 되찾는데 이르렀죠

그리고 마침내 최강의 상대인 한나라와 맞서게 되었습니다

 

한편 기원전 202년, 항우를 쓰러트리고 천하를 평정한 유방은 자신의 측근 중 한명이던 한왕 신을 북방에 배치하고나서 흉노의 남하를 저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유방 = 한(漢)나라, 한왕 신 = 한(韓)나라)

한왕 신은 한(韓)나라의 왕이 되어 흉노의 침입을 정면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1년후인 기원전 201년, 묵돌이 마침내 한(韓)나라의 수도였던 마읍을 공격해 한왕 신은 포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유방은 급히 지원군을 파견했지만 상황이 급박했던 한왕 신은 흉노에게 여러번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했죠

그런데 워낙 의심이 많던 유방은 여러번 흉노에 사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듣고 한왕 신을 흉노와 내통을 하고 있다며 의심하기 시작했는데요

한왕 신은 이러다가 유방에게 목이 달아나겠다 생각하고 결국 묵돌선우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유방은 한왕 신이 배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한왕 신에게 쳐들어갔죠

그렇게 결국 유방의 한나라군과 한왕 신 그리고 묵돌의 흉노군이 제대로 맞붙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기세등등하던 흉노군은 계속해서 패퇴를 거듭했는데요

한나라군은 한왕 신의 군대를 박살내버렸고 이에 한왕 신은 흉노로 도망쳐버렸죠

 

또한 묵돌은 좌현왕과 우현왕에게 각각 1만명의 병사를 주고 한나라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도 흉노군은 패퇴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기세를 타고 도망가는 흉노군을 쫓았고 뒤를 잡힌 흉노군은 다시 전투를 벌였지만 또 다시 대패하고 말았죠

겨우 도망친 두 현왕은 다시 패잔병을 수습해 기회를 엿보려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나라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고 또다시 크게 패해 달아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밀고 올라온 한나라군에게 갑자기 좋지 못한 현상들이 일어나는데 일단 추운 북쪽 지방에 겨울까지 다가오고 있었고 눈과 비가 휘몰아쳐 한나라군의 약 20%가 심각한 동상에 걸리기도 한것이죠

그러던 중 유방은 묵돌이 대곡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를 공격해 얼른 전쟁을 끝내버려야겠다 생각하고 일단 정찰병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묵돌은 일부러 비쩍 마른 말들과 가축들, 그리고 힘없어 보이는 노인병사들을 보이며 엄청 약해보이도록 꾸몄고 이후 보고를 들은 유방은 자신만만하여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공격해 나왔죠

그런데 사실 두 현왕이 이끌던 2만의 군사가 한나라군에 엄청 두들겨 맞은것도 한나라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묵돌의 유인책이었는데요

그런데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추위 때문에 한나라군의 반 정도가 동상에 걸려 전투를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까지 되었지만 유방은 진격을 결정해 묵돌이 있는곳 근처인 평성에 도달할수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유방이 온다는걸 다알고 있었던 묵돌은 유방이 평성에 들아가자 그대로 모든 병력을 동원해 포위해 버렸고 이후 한나라군은 이 포위망을 풀고자 했지만 흉노군을 뚫지 못하고 성안에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한나라군의 식량은 점점 떨어져갔고 그만큼 사기도 저하되기 시작하면서 굶어죽거나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때 유방의 신하이던 진평이 유방에게 다가와 한가지 계책을 건의했습니다

 

그것은 묵돌의 연지에게 선물을 주는 동시에 훗날 묵돌에게 바칠 미인이라며 미인도를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그러면 연지는 자신의 총애를 잃을수도 있기 때문에 묵돌에게 포위를 풀고 돌아가자고 할것이라는 계책이었습니다

유방은 진평의 계책을 선택해 그대로 실행에 옮겼는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버렸죠

 

이때 흉노와 협력하기로 했던 왕황과 조리가 오지 않자 이들이 한나라와 모의하는것으로 의심한 묵돌은 위험해 질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던 와중에 연지가 돌아가자고 하자 결국 포위망을 일부 풀어주면서 퇴각준비를 했고 그리고 그곳을 필사적으로 뚫고나간 유방은 겨우 목숨을 건질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로도 묵돌은 여러차례 한나라를 공격했는데 유방이 먼곳에서 묵돌의 군사들을 보니 서쪽의 군사는 모두 백마를, 북쪽은 흑마, 동쪽은 청마, 남쪽은 적황마를 타고 있었는데 이런 흉노의 위용에 질려버린 유방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고 흉노와 화친을 맺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결국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게 되었는데 만리장성을 양국의 경계로 삼을 것과 서로 형제 관계를 맺는것 (흉노가 형), 한나라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바칠것, 매년 옷감과 음식을 보낼것, 공식적인 무역관계를 맺을것 등 서로 조약을 맺은것 같지만 사실 일방적으로 흉노가 이득이었던 그런 불평등 조약을 맺을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비로소 한나라군은 철수 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한나라에서는 선우의 연지로 황실의 여인을 바쳤으며 매년 솜과 비단, 술, 곡식등을 보내야 했죠

 

또한 한나라 공주가 시집을 갈때도 막대한 지참금과 그곳에서 생활을 할때 쓸 돈을 싸들고 갔어야 했으며 서로 무역 관계를 맺다보니 흉노는 옷이나 식량 등 생활 필수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유방의 토사구팽의 희생양이 될뻔한 한나라의 신하들은 계속해서 흉노로 넘어갔지만 한나라에서는 손쓸 방도가 없었으며 훗날 한무제가 흉노를 두들겨 패기 전까지 한나라는 국경 밖으로는 나갈 엄두를 못냈다고 하죠

 

이후 유방이 죽고 효혜제가 한나라 2대 황제로 즉위했는데요

이때 묵돌은 당시 한나라 최고 권력자이던 여태후에게 외교 문서를 보냈죠

그런데 문제는 여태후에게 굉장히 성희롱 성격이 짙은 무례하기 짝이없는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나는 외로운 군주로서 습한 소택지에서 태어나 소와 말이 가득한 들판에서 자라났소.

여러 차례 변경에 가보았는데 중국에 가서 놀고 싶은 희망이 있었소.

이제 그대도 홀로 되어 외롭게 지내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즐겁지 않고 무엇인가 즐길 것이 없는 듯 하오.

그러니 각자 갖고 있는 것으로 서로의 없는 것을 메워 봄이 어떻겠소?”

 

그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 둘다 짝이 없는데 잘해보자' 라는식의 편지였죠

그러자 성깔이 괴팍하던 여태후는 격분하여 즉시 흉노에 쳐들어 가자고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이때 번쾌와 몇몇 신하들은 여태후의 눈치를 보느라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지만 오직 계포만이 반대를 하고 나섰고 결국 여태후는 울며 겨자먹기로 참을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 무례한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나는 늙었고 기력도 쇠하고 머리카락이랑 이는 다빠졌고 걸어다니기도 힘들다 두렵다, 용서해달라' 라는 식으로 굉장히 납작 엎드려 한번만 봐달라는 답서를 보내며 화친을 청했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묵돌의 오만한 편지는 계속되었는데요

 

효문제가 즉위하자 묵돌은 "하늘과 땅이 낳으시고 해와 달이 세운 흉노의 대선우인 내가 한나라 황제에게 묻겠다. 별일 없지?" 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할 정도였죠

거기다가 기원전 174년엔 흉노의 우현왕이 화친을 깨트리고 한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는데요

한나라는 이를 격퇴하긴 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묵돌은 솔직히 이건 좀 심했다 생각했는지 우현왕을 질책하며 이에 대한 벌로 서방을 평정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때 우현왕은 월지를 섬멸하고 서방의 26개국을 정복해버리기도 했죠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점은 피해를 당했던 한나라에 보낸 편지가 또 굉장히 오만하고 무례한 적반하장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바로 "나의 부하 우현왕은 싸울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너네가 먼저 때리는 바람에 싸우게 됐네? 근데 왜 너희는 사과 한마디 없지?" 라는 식의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죠

묵돌의 이 편지를 받은 효문제는 우현왕을 책망하지 말것을 부탁하는 편지와 함께 사과의 의미로 묵돌에게 막대한 선물까지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묵돌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아들인 계육이 선우에 즉위하면서 노상 선우가 되었죠

 

당시 넓은 대륙을 지배하는 최강국 한나라가 여태후나 효문제 등에게 괴상한 편지를 보낸 묵돌을 어찌할수 없었던 걸 보면 당시 묵돌과 흉노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던 것 같네요

사마천도 자신의 저서 <사기>에 흉노를 욕하긴 했지만 그래도 묵돌의 영웅다운 풍모를 숨김없이 묘사하면서 그를 극찬하기도 했다고 하죠

 

지금까지 흉노의 최고의 명군 묵돌 선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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