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수녀의 몸으로 교황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실세중의 실세 파스칼리나 수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가톨릭의 제260대 교황인 비오 12세는 지도자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2차 세계대전동안 교황청을 잘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다시없을 커다란 비극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이었던 만큼 각국의 지도자들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을 겪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후유증으로 병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죠
비오 12세 또한 2차 대전동안 그의 노이로제 증세가 악화된 데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70세라는 고령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정상적으로 교황업무를 보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는데요
그런 비오 12세의 상태를 알게 된 그의 측근들은 후임자를 찾아서 교황직을 물려주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지만 비오 12세는 아직 자신이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자신의 몸상태가 안 좋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자신과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진 성직자를 한 명 뽑아서 교황의 업무를 대신 보게 만드는 대리자로 만든다는 결정을 하게 됐는데 그 대리자가 바로 수녀의 신분으로 20세기 중반 여교황이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리며 바티칸의 실세 중 실세로 군림했다는 파스칼리나 수녀입니다
파스칼리나의 본명은 요제피나이며 1894년에 바이에른 왕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1917년 성 십자가 멘칭겐 수녀회에 입회하면서 파스칼리나라는 수도명을 받게 되었죠
그녀는 에우제니오 파첼리라는 인물의 가정부 겸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훗날 교황이 되는 비오 12세였습니다
이때부터 파스칼리나 수녀는 파첼리 추기경과 친밀하게 지냈고 1939년 파첼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비오 12세라는 이름으로 등극하자 그를 따라 바티칸으로 가서 직무를 수행하게 됐죠
그렇게 교황 비오 12세가 본격적으로 교황노릇을 하게 되면서 교황의 개인비서이자 가정부 노릇을 한 파스칼리 나는 비오 12세의 재임 기간 내내 여교황 소리까지 들으며 바티칸 정계의 일인자로 군림했습니다
특히 비오 12세의 치세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와 겹치면서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 독일군을 이끌고 와서 바티칸을 포위하는 위험한 상황도 겪었을 만큼 전쟁 내내 위협에 시달리던 교황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신경쇠약까지 발병하면서 더 이상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죠
결국 비오 12세가 비서 파스칼리나 수녀에게 정치적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종교적인 업무에만 전념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즉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치는 비오 12세가 여전히 차지하고 있었지만 '바티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지도자는 사실상 파스칼리나의 섭정으로 통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요
파스칼리나가 실권을 거머쥠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티칸 내에서의 파스칼리나 수녀의 입김은 매우 커졌고 추기경들은 일개 수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사태를 보고 그야말로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앞으로 나올 파스칼리나의 화끈한 일화와 성격 때문에 마치 비오 12세가 재위기간 내내 교황 자리 나 겨우 지키다가 파스칼리나에게 권한을 맡기고 뒷방 늙은이가 된 허수아비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비오 12세의 경우 재위 초기에는 정무 감각과 능력이 매우 뛰어났고 교황 대사와 국무원장, 궁무처장 등 교황청 내 고위직들을 역임하며 즉위 전부터 교회법과 바티칸 외교 분야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한 인물이었죠
또한 교황 즉위 후에도 매우 깐깐하고 권위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게 활동하며 권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당시 파스칼리나 수녀가 전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는 비오 12세가 교회 내에서 확고한 권력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자신의 실권을 잠시 그의 대리자에게 맡긴 것뿐이며 파스칼리나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강력한 권력자인 비오 12세의 믿음을 얻은 대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만약 비오 12세의 신임이 없었다면 파스칼리나는 바티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진작에 비오 12세에 의해 쫓겨났을 것이고 다른 고위 성직자들도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그저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집단행동을 통해 그녀를 몰아내버렸을 겁니다
바티칸 최고의 권력자가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자 자신감을 얻은 파스칼리나 수녀는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써서 추기경들마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등 능력을 증명하기 시작했죠
먼저 파스칼리나 수녀는 대주교 임명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했고 미국의 뉴욕 대주교 자리에 원래 뽑힐 것으로 유력했던 맥니콜라스 대신 스펠만이라는 인물을 대신 임명한 사건에도 깊게 관여했으며 훗날 바오로 6세로 등극한 성직자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가 밀라노 대주교시절 직책에 비해 발언권이 약했던 것도 비오 12세 교황의 신임을 등에 업은 파스칼리나 수녀에게 밀렸기 때문으로 추측되는 등 이 당시 벌어졌던 일들을 보면 파스칼리나는 사실상 여교황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다만 파스칼리나의 직책은 여전히 일개 수녀에 불과했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대주교들이 수녀에게 임명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돼버려서 이 꼴을 보다 못한 추기경들이 계속해서 항의를 했지만 비오 12세가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파스칼리나를 지켜준 덕분에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파스칼리나는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하죠
이와 관련된 일화들이 많은데 프랑스 출신 티스랑 추기경이 당시 바티칸 국무원장인 도메니코 타르디니 추기경과 함께 교황 알현을 요청했는데 파스칼리나 수녀가 이를 거부해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티스랑 추기경은 파스칼리나 수녀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파스칼리나 수녀가 갑자기 근위병들을 불러들이더니 티스랑 추기경을 밖으로 모시고 나가라는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죠
수녀가 대놓고 추기경을 무력으로 제압해 쫓아내 버리라는 명령을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티스랑 추기경은 물론이고 명령을 들은 근위병들조차 모두 당황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근위병들이 티스랑 추기경을 강제로 붙잡고 나갔는데 모욕을 당한 티스랑은 화가 난 나머지 파스칼리나를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끌려나갔다고 하네요
또한 파스칼리나 수녀는 뒷날 요한 23세 교황으로 즉위하는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에게도 엄청난 결례를 저지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인 클라크 게이블이 바티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파스칼리나 수녀와 비오 12세 둘 다 게이블의 팬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파스칼리나 수녀가 원래 스케줄로 잡혀 있었던 론칼리 추기경의 교황 면담을 취소하고 대신 게이블의 교황 알현을 스케줄에 넣으면서 론칼리 추기경을 쫓아낸 것입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파스칼리나 수녀는 연예인의 교황알현과 같은 갖가지 이유들을 들며 추기경들이 교황을 알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식으로 추기경들을 길들였다고 하죠
참고로 뒷날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이 요한 23세로 등극하자 파스칼리나 수녀는 기자들로부터 만약 론칼리 추기경이 교황이 될 줄 알았더라면 그를 바람 맞힐 수 있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추기경은 여러 명이지만 게이블은 1명이잖아요" 라는 황당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상당수 추기경들이 이런 식으로 알현이 지연되거나 아예 알현을 거부당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앞에서 나왔던 티스랑 추기경은 교황 한 번 알현하려고 무려 60일이라는 시간을 대기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니 '여교황'의 통치에 못마땅한 추기경들과 파스칼리나가 언쟁을 벌이는 건 매우 흔한 일이 돼버릴 정도였죠
이러는 사이 비오 12세의 신경증은 더욱 심해져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신경증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계속 딸꾹질을 하다가 굴욕을 당하는 일도 있었고 일을 하는 도중에 파리라도 날아다니면 그 파리를 잡을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비오 12세를 전담하던 의사는 교황의 치료에 집중하지는 않고 파스칼리나 수녀를 대상으로 파파라치 짓을 하다가 의료계에서 매장당하는 황당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죠
결국 1958년 교황의 여름 별장인 간돌포 성에 머무르던 비오 12세는 몸상태가 안 좋아져서 여름 내내 그곳에서 나오지도 못하다가 끝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생전에 비오 12세는 무척이나 권위주의적이었던 데다 고집까지 셌고 이는 그의 오랜 친구인 파스칼리나 수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비오 12세의 재위기간 동안 바티칸은 '두 교황'의 통치에 이래저래 곤욕스러운 일을 많이 겪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이에 질려버린 추기경들은 이제는 좀 마음 편한 생활을 하고 싶다며 조용하고 야심이 없어 보이는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했죠
막강한 실권을 휘두르던 파스칼리나는 교황이 바뀌자 별다른 잡음 없이 순순히 물러났다고 합니다
바티칸이 권력을 세습받는 전제왕조도 아니었던 데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교황 비오 12세의 대리로서 직무를 수행했던 만큼 교황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를 잃게 된 파스칼리나 수녀는 바티칸을 떠나 스위스의 한 수녀원에서 몇 년을 보내다가 이후에는 자선 사업가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하죠
말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지원을 받아 자선 사업에 전념하다가 1983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에 위치한 수녀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엄청난 일 중독자로 유명했는데 한창 권세를 휘두르던 시절에는 바티칸 최고 권력자 역할과 교황 비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두 가지 일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할 정도로 유능했다고 하죠
심지어 말년에 자선사업을 할 때도 하루 4시간만 자면서 나머지 시간은 일에 열중했음에도 무려 90세까지 장수했던 걸 보면 그야말로 타고난 체력을 가진 존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스칼리나처럼 상관의 신임을 등에 업고서 권력을 누리는 측근 실세들은 보통 자신에게 권력을 나눠준 수장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아부하면서 권력을 누리는 경우가 많지만 파스칼리나 수녀는 다른 바티칸 성직자는 물론 자신의 직속상관인 교황 비오 12세에게까지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매우 강직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비오 12세도 충분히 능력이 있는 데다 워낙에 고집이 센 인물이다 보니 파스칼리나 수녀와도 종종 의견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에 교황의 집무실에서 서로 고함을 지르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고 심지어 비오 12세가 파스칼리나 수녀의 뺨을 때린 적도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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