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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정조. 신하들에게 욕하고 조롱하기까지 했던 조선왕들 중 굉장한 쌘캐이자 먼치킨 왕

by 사탐과탐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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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에게 욕하고 조롱하기까지 했던 조선왕들 중 굉장한 쌘캐이자 먼치킨 왕 정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먼치킨이라는 말을 알고 계시나요?

 

먼치킨이라는 단어는 많은 뜻이 있는데

고양이의 한 종류이기도 하고

던킨도너츠에서 판매하는 도넛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먼치킨이라는 단어는

흔히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기 캐릭터'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그냥 혼자서 모든걸 다 해내버리는 그런 최강 캐릭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먼치킨인 인물이 많았는데요

오늘은 그 중 최강의 먼치킨 왕인, 정조에 대한 이야기이죠

 

하지만 오늘은 정조의 전반적인삶 말고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조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굉장히 똑똑한 왕이었죠

 

그만큼 그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는 어떤 책을 다 외우기 전까지는

지독하리만치 그 책만을 읽었다보니

수많은 조선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든 경서를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었다고 하죠

 

그가 책을 완벽하게 외웠다는 증거도 존재하는데요

 

사관이나 승지들이 적절한 인용구를 찾지 못하거나

잘못된 인용을 했을땐

자신이 직접 어떤 책의 몇 페이지 몇번째 줄까지 알려주면서

써야할 인용구를 알려주거나 잘못된 인용은 고쳐주기도 했다고 하죠

 

이때 신하들이 정조가 말한 책의 몇번째줄까지 찾아보니

토씨하나 틀리지 않아서 깜짝 놀란 신하들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의학서적도 많이 읽었다보니

직접 자신의 병에 처방을 했을 정도였으며

심지어 허준의 동의보감이 부실하다고 말하며

책 내용을 보충 하기도 했다고 하죠

 

스스로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능력이 떨어지는 신하들을 많이 깔보기도 하는데요

 

여러 기록들에서 정조는 신하들에게

'니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고

'제발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를 할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왕이었지만

신하들은 도저히 반박할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죠

 

심지어 정조 15년때는 경연을 없애버렸는데요

정조는 초계문신제를 실시했는데

그는 더이상 신하들에게 배울것도 없고 신하들이 무식하니

자신이 중하급 관리들을 직접 교육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선시대에는 왕도 공부는 하기 싫었는지

과거 부터 경연을 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만약 경연을 잘 하지 않는 왕이 있으면 신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난리를 쳤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경연을 했어야 했죠

 

하지만 정조가 경연을 없앤다고 했을때는

신하들도 입꾹닫하고 별말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정조가 똑똑한건 신하들도 인정하고 있던 것인데

더 대단한점은 무예 실력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죠

 

과거 명군으로 일컬어지던 왕들은 모두 하나씩은 아쉬운점이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는 무예는 뛰어났지만 정치력은 좀 떨어졌고

세종과 성종은 지덕체 중 체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정조는 지덕체를 모두 갖춘 왕이었습니다

 

그가 화살을 100발 쏘면 항상 98발을 명중 시켰고

50발을 쏘면 49발을 명중 시켰다고 하는데요

 

전부 다 맞출수 있었지만 1발씩은 일부로 맞추지 않았던 것인데

겸손이 미덕이었던 시대이기도 하고

군주는 스스로의 재주를 자랑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어쨌든 활을 워낙 잘쏘다보니 이성계의 현신이라는 말도 나왔던

문무를 겸비한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백성들에게는 관대한 왕이었던 반면

신하들에게는 얄짤없이 불같은 성격을 보여줬다고 하죠

 

앞서말했다시피 신하들에게 공부 좀 하라며 핀잔을 주던 그이기도 했지만

어떤 신하를 높은 관직에 임명하면서

대놓고 "니 주제에 그런 중임을 맡을수 있겠냐?" 라고 조롱하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하들에게 욕도 잘 했는데

일을 잘 못하는 신하들에게는 자유자재로 욕설과 막말을 해버리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거나, 경박하다, 멍청하다라는 말을 하기도하고

'대신 누구누구의 몸에서는 동전 구린내가 나서

주변사람들이 그를 기피한다' 라고 한다던지,

아니면 ㅂㅅ 이나 호로자식 등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안드는 신하에게는

바로 욕설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부 일을 못하는 신하들에게 한것일 뿐

일을 잘하고 똑똑한 신하들은

비록 왕인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많은 대신들이 그 신하를 처벌해야 한다고 해도

정조는 오히려 그를 칭찬하며 벼슬까지 올려주었다고 하죠

 

이런 이유 덕분에, 정조가 신하들에게 욕을하고 조롱하고 악담을 퍼부어도

성군이나 명군으로 추앙을 받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설에는 그가 어릴적 생명의 위협을 워낙 많이 받다보니

잠도 못자서 책만 읽었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익혔다라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인지, 그는 먼치킨스러운 점도 많지만

반대로 술과 담배를 굉장히 즐겼다는 기록도 많이 등장하고 있죠

 

정조는 술에 취하면 술버릇이 굉장히 고약했다고 하는데

신하들에게 정말 최악이었던 점은

정조의 술버릇이 바로 '신하들에게 억지로 술먹이기' 였다고 합니다

 

왕이 내리는 술을 안먹었다간 훗날 자신의 신변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신하들에게는 정말 무서운 술버릇이었죠

 

정조는 애주가 이기도 하지만

남들과 함께 취하도록 술 먹는것을 좋아했던 것인데요

 

오죽하면 수원화성 팔달문 시장 입구에는

정조가 술을 먹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에는 '불취무귀(不醉無歸)' 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취하지 않은 자는 집으로 돌아갈수 없다' 라는 무시무시한 글이죠

 

어느날 정조는 성균관 제술 시험에서 합격한 유생들을 불러 연회를 벌였는데

그때 유생들에게 "옛 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의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으니,

너희들은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각자 양껏 마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부승지 신기에게는 유생들에게 잔을 돌리라하고

승지 민태혁과 각신 서영보에게는

유생들이 술을 양껏 먹고 있는지 감시하라고까지 명령했다고 하죠

 

이때 오태증이라는 유생은 평소 술을 잘 마셨기에 취하지 않았는데요

 

정조는 그런 그에게, "자네의 할아버지 이던 오도일이 증조할아버지 숙종 시절,

이곳에서 술을 먹고 취해 넘어진적이 있다네" 라고 말하며

억지로 술을 더 먹였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래서 술에 취한 오태증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같은장소에서 만취한채 넘어졌는데

정조는 그런 오태증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흐뭇해 했다고 합니다

 

정조는 술먹고 실수하는 모습을 비판하기 보다는

술을 먹으면 취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면서

애주가 다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죠

 

또한 정조는 창덕궁에 있는 부용정에서 낚시를 하곤 했는데

이때 채제공이나 심환지,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낚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고기를 낚지 못하면 벌칙으로 술을 먹였다고 하죠

 

그의 술 사랑 일화는 또 있는데요

 

어느날 진사 이정용이 술에 만취해 궁궐 담벼락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통금시간이 넘도록 그곳에서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경비를 서던 포졸들에게 붙잡혀

형조로 넘겨진 뒤 처벌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죠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요즘 사람들은 술이 약해서 제대로 마실줄도 모르는데

이자는 술도 잘마시고 그 멋을 알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하다.

상으로 쌀 한포대를 주고 풀어줘라" 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정조는 오히려 관료나 유생들이 주량이 너무 약한걸 탓하며

이정영이 만취한걸 가상하다고 칭찬했던 것이죠

 

또한 세번이나 장원급제를 한 정약용에게는

옥으로 만든 필통에 소주를 가득부어 마시라고 했는데

그때 정약용은 왕이 하사하는 술이니

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시면서

속으로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정조는 정약용에게 '삼중소주' 라는 술을 하사했는데

문제는 이 삼중소주가 세번이나 증류했고

물을 타지 않은 최소 70도 이상의 독한 술이었다고 하죠

 

왕이 이렇게 술을 좋아하다보니 백성들 역시 영향을 받았는지

한양에 술집이 많이 생겼는데

갑자기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까

술집을 없애야 한다고 상소가 올라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술 외에도 그는 굉장한 골초이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그는 조선을 흡연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정조는 담배처럼 유익한 것도 없다며

답답한 속과 꽉 막힌 심정을 뚫어주는것도 담배라고 말하면서

이 담배를 백성들에게도 널리 베풀어야겠다고 했었죠

 

또한 담배 덕분에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담배는 소화에도 좋고 추위나 더위도 쫓아낸다 라면서

담배를 극찬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담배에 대한 시까지 썼으며

책문의 시험문제로 '담배의 유용성에 대해 논하라' 라고 내기도 했죠

(책문 :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서 답하게 하던 과거시험 과목)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담배를 이롭게 사용하고 생활에 윤택하면 된다

담배만 천하게 여길 까닭이 없다' 라는식으로 답안을 썼는데

이 답안을 본 정조는

"담배가 출현한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온 백성이 담배를 피우게 해서 그 효과를 확산시켜

담배를 베풀어 준 하늘에 보답하자" 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 정조의 바람 덕분이었을까요?

 

4~5살 어린 아이들까지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어린 여자애들도 길을 걸어다니며 담배를 폈던것이죠

 

심지어 채제공이 70대의 나이에 어린 유생들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자

그들에게 한 소리 했는데, 유생들이 채제공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친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기저기서 담배 예절에 대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기도 했죠

 

정조는 먼치킨스러운 모습도 분명히 있지만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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