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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조선시대 왕비들의 빡쌨던 삶

by 사탐과탐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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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비들의 빡쌨던 삶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비의 삶은 동화 속에 나오는 왕비처럼 화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대 조선의 왕비들은 엄격한 궁중에서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며

왕을 내조하는 일을 맡아야 하는 동시에 후궁들과 신경전까지 벌여야만 했죠

오늘은 이 조선의 왕비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왕비가 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고 하죠

첫 번째는 세자빈 또는 왕실 종친의 부인으로 간택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위에 오르면서 같이 왕비가 되는 경우고

 

두 번째는 원래 있던 왕비가 죽거나 퇴출되었을 때

새로 들인 왕비를 '계비'라고 부르는데

이 계비로 간택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원래 후궁이었던 사람이

왕비가 죽거나 쫓겨난 후 승진해서 왕비로 책봉이 되는 경우죠

 

조선시대에 있었던 대부분의 왕비들은 계비를 제외하면

어린 시절 세자빈이나 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가

남편이 왕이 되면서 같이 왕비의 지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처음 조선이 건국된 후 나라에 왕이 둘일 수는 없듯이

왕비도 한 명밖에 둘 수 없다는 성리학의 원리에 따라 한 명의 왕비만을 두다가

왕비가 죽거나 쫓겨났을 경우 다시 계비를 들일수 있는 일부일처제가 정착됐죠

덕분에 여러 명의 왕후를 뒀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의 왕비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왕비나 세자빈이 되려면 초간택과 재간택 삼간택이라는

3번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해야만 했죠

원칙상으로는 양인 집안의 딸이면 누구든 간택의 대상자가 될 수 있었지만

 

왕비나 세자빈을 누구로 뽑을 것인가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여러 세력이 미는 후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세도정치가 판을 치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간택은 형식상 치르는 절차에 불과할 뿐이었고

실제로는 세도가의 딸들 중에서만 왕후가 간택되었다고 하죠

 

왕실의 혼사는 중요한 국가의 대사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간택이 진행되는 시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어떤 집안도

혼인을 할 수 없는 금혼령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네요

그런 과정을 거쳐 왕비로 간택을 받게 되면

이제 교육을 받은 후 왕비로서의 의무를 시작해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가 바로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내명부를 관리하는 일과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일

그리고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들을 주관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왕비는 후궁들과 궁녀들이 속해있는 조직인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위로는 왕실 어른들을 섬기고 아래로는 내명부의 여성들을 관리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 궁중의 질서를 세울 의무가 있었습니다

 

특히 내명부에 속한 사람들은 왕의 유모나 왕비의 어머니

그리고 왕실종친과 조정관료들의 부인등이 속해있는

외명부의 모범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 내명부 사람들을 관리하고 감독해야만 했죠

 

그리고 왕비에게 주어진 의무 중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

바로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왕비의 임신과 출산은 왕실에서도 가장 큰 경사로 여겨졌죠

 

왕비가 임신한 지 7개월이 지나면 산실청이라는 기관이 설치되고

정 2품 이상의 고위관직자 중에서 아들을 많이 둔 사람을 골라

왕비의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으로 임명할 정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쏟았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이후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는

왕비가 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고

왕자를 전담하는 유모와 보모가 따로 배정되었다고 하네요

 

궁궐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바로 외전과 내전이었는데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는 공간을 말하며

내전은 왕과 왕비가 치르는 공식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도 이루어지는 공간을 말합니다

 

해마다 왕이 외전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잔치를 하듯이

왕비도 내전에서 내명부와 외명부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죠

그리고 세자를 책봉하거나 세자가 혼인을 하는 등

큰 행사가 있을 때에도 내명부와 외명부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의 축하를 받고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왕의 어머니인 대비를 위한 잔치인 '풍정'이나

노인을 공경하는 뜻에서 나이가 많은 여성들에게 양로연을 베풀기도 했는데

양로연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신분이 낮은 천민들도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농업국가인 조선의 국왕들은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직접 밭을 가는 '친경'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비는 무명이나 명주의 직물을 짜는 길쌈을 권장하기 위해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고

이후 실을 뽑아내기까지 하는 '친잠례'를 했죠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누에를 키워

고치를 만드는 양잠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국에 누에를 쳐서 실을 뽑는 '잠실'을 만들었는데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비가 직접 양잠업에 힘을 쓴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여기까지만 봐도 알 수 있듯 조선시대의 왕비들은

한 나라의 국모로서 매일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만 했죠

뿐만 아니라 유교에 뿌리를 둔 국가의 왕족이다 보니

 

엄격한 위계질서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남편인 왕은 물론 왕실 어른들의 뜻을 잘 따라야만 했고

후궁들을 비롯한 아랫사람에 대한 질투를 하는 것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을 할 때마다

궁궐의 엄격한 예의와 법도를 따라 주변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야만 했죠

 

때로는 외척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친정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태종의 비였던 원경왕후는 동생들을 잃어야만 했고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는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죠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 씨는

중종반정으로 인해 남편과 생이별을 당했으며

숙종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 민 씨는 폐위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의 부인 신 씨와 광해군의 부인 유 씨는

남편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같이 폐위되었죠

 

겉으로 보기에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으로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아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실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야만 했던 사람들이

바로 왕비들이었다고 하네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역대 조선의 왕비들 중에는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나라이다 보니

왕실은 물론 사대부들도 동성동본 간의 혼인을 꺼려했기 때문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역대 조선의 왕비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들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 씨와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 씨

그리고 효명세자의 세자빈이었던 신정왕후 조 씨로

이들은 모두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녀들의 남편은 모두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죠

 

가장 어린 나이에 죽은 왕비는 헌종의 정비인 효현왕후 김 씨로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던 왕비는 영조의 정비였던 정성왕후 서 씨로

그녀는 무려 33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반면에 중종의 정비였던 단경왕후 신 씨는

겨우 7일 만에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났죠

 

조선에서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가문으로는

신의왕후와 소혜왕후를 비롯해 무려 6명의 왕비를 배출한 청주 한 씨 가문과

문정왕후와 폐비 윤 씨 등 5명의 왕비를 배출한 파평 윤 씨 가문

그리고 원경왕후와 인현왕후, 명성왕후등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여흥 민 씨 가문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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