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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백의민족.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흰옷만을 고집했던 이유

by 사탐과탐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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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흰옷만을 고집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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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에 찾아왔던 많은 외국인들은

조선인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다 새하얀 옷을 입고다녔다는것이죠

 

이것에 대해 얼마나 강한 인상을 받았으면

독일인 오페르트는 그의 저서 <금단의 나라 : 조선기행>에

"옷감 빗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 라고 기록해 뒀으며

라게리 라는 사람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있다"

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조선인들이 시장에 바글바글 모이는 걸 본 외국인들은

솜밭같다고 말하기도 했을정도로 흰옷을 좋아했죠

 

그만큼 당시 조선 사람들은 흰옷 입는것에 집착하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또한 과거부터 흰옷만을 고집해왔던 민족이라서 그런지

우리를 '백의민족'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과거 우리 한민족 조상들은

왜 이렇게 까지 흰옷 입는것을 좋아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흰옷을 선호하는 이유를 여러가지로 들었습니다

 

바로 염색기술이 낙후되어 흰옷밖에 못 입고

그렇다고 염색을 할려고 해도 궁핍해서 할수 없었다는 주장

그리고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과 한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한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한민족이 과거부터 겪은 고통과 많은 불행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백의를 상복처럼 입고 다닌다는 주장 등이 원인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이유들은 틀렸고 왜곡된 주장인데요

 

그냥 언뜻 생각했을때 조선 백성들이 입고 다닌 흰색옷은

약간 누리끼리한 빛이 도는 자연 흰색 일거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사실 완전 깨끗하고 새하얀 순백색의 색깔이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는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의 기록에 많이 드러나 있죠

 

이사벨레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에는

'한국사람이 빨래하면서 내는 흰색은

세상의 어떤 빨래집에서도 그토록 희게 할수는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인들이 냇가에서 무명으로 만든옷을

새하얗게 빨고 있는 모습을 본 님 웨일스는

"이상주의와 순교자의 민족이 아니라면

이처럼 깨끗한 청결을 위해

그토록 힘든 운동을 감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정도로 한국에서는 완전 깨끗한 순백색 옷을 원했던걸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직물에 아무런 염색을 하지 않았을 때의 색은

완전 흰색이 아니고, 약간 누런 아이보리색에 가까운데요

 

그런데 여러 기록에서 보이는것처럼

조선인들이 눈부시도록 하얀색 옷을 입을수 있었던 것은

사실 조금 누리끼리한 자연 흰색옷감을

하얗게 염색이나 표백을 한뒤에 옷을 만들어 입었었기 때문입니다

 

<규합총서>에 의하면 조선 여인들은 흰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을 잿물에 넣어 수 차례 빨아 누런색이던 면직물을

하얗게 표백했다고 기록되어 있죠

그래야지 섬유 특유의 누런빛을 뺄수 있어서

다른 색으로의 염색도 쉬워지기 때문에

옷감으로 완성 후에 하얗게 표백하는것이 널리 퍼져있던 것입니다

 

당시로썬 굉장히 고급 기술력이 들어갔던 것인데

이런 이유로 염색기술이 낙후되어서 흰옷을 입었다는 말은 틀린것이죠

 

거기다가 다들 아시다시피 흰옷을 입으면

때가 타기도 쉬운데요

 

특히나 빨래하기도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더 더러워지기 쉬운 흰옷을 입고 깨끗히 유지하는데는

오히려 더 많은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더러워지면 자주 빨았어야 했는데

세탁을 하기 위해선 요즘 같이 세제가 없던 당시에는

필수적으로 노동력과 많은 물, 세탁하는데 필요한 재료등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었을 뿐만아니라 여성들이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심지어 의관이 단정하지 못하면

돌아 다닐수도 없었던 꼰대의 나라 조선에서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을정도로 옷이 더러워 졌다면

다시 옷을 만들어 입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옷 한 벌을 염색하려면 그 남을 심는 밭이

네 식구가 한 달 먹을 곡식이 나는 땅을 버리는 것이 되니,

국내 전체를 계산한다면 손실이 매우 크다." 라고 했을 정도로

염색은 비용이 든다고 호소하기도 했죠

 

따로 흰색 염료를 만들기 위해 식량을 심을 밭에

염료 재료를 심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고 궁핍해서 백의를 입었다는건 아니고

그만큼 흰옷을 좋아했기 때문에 입었던 것이죠

 

고려가 원나라에 침략을 받은 이후

슬픔 때문에 흰옷을 입었다는 주장도 아닌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고려 이전 시대부터 한민족들은 흰옷을 입는것을 선호했기 때문이죠

신라, 고구려, 부여에서도 흰옷 입는걸 좋아하거나

자주입었다는 기록이 있죠

 

삼국지 위서동이전 부여편에 의하면

'부여인들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수서 동이열전 신라편에는

'풍속, 정치, 형벌, 의복은 대략 고려, 백제와 같다.

옷빛은 흰 빛을 숭상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고구려 벽화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

삼국시대때 각 나라들의 의복 문화가 대체로 같다는 기록도 있으니

고구려 역시 흰옷을 선호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죠

 

거기다가 고구려에서 쓰던 관모 중

왕이 쓰던 백라관은 흰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글들을 봐도 고려시대 이전부터

한민족은 흰색 옷 입는것을 굉장히 좋아했던것일뿐

몽골이 쳐들어와서 그랬다는 것이나 슬퍼서 그런것이다

또는 상복이다 하는것 또한 근거가 많이 부족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외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곽원은

"고려에서는 남자와 여자 옷은 흰것을 숭상합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고

고려를 방문했었던 서긍 이라는 인물은

"고려왕은 평상시에는 검정 두건에 흰 모시 도포를 입고 있는데

이는 백성과 다를 바 없다" 라고 고려도경에 기록해 두기도 했죠

 

고려에서도 신분에 관계없이 흰옷 입는것을 선호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 사신 동월이 성종때에 조선을 다녀가서 지은 <조선부>에는

"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까지 했죠

 

이런식으로 과거부터 한민족은 흰색 옷을 즐겨 입는다고

널리 소문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할 정도로 돈도 많이 드는 흰색옷만을 고집하다보니

이는 국가적인 낭비로까지 여겨졌는데

그러다보니 여러차례 '백의 금지령'이나

다른색으로 염색을 권장하기도 했는데요

 

제발 흰옷 좀 그만 입으라고

나라에서까지 통제를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13세기 고려의 충렬왕이 흰옷을 입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렸지만

백성들의 흰옷 사랑은 멈출줄을 몰랐다고 하죠

 

거기다가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왕들이

백성들에게 강제로 흰옷을 입지못하게 했는데요

 

태조와 태종, 세종, 그리고 연산군과 인조, 현종

거기다가 숙종과 영조까지 여러차례 백의 금지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방색 중 동쪽을 상징하는 색인

푸른색 옷을 입으라고 권장하기도 했으며

숙종은 아예 푸른색 옷을 입도록 국명을 내리기까지 했죠

 

하지만 흰색 옷한벌 입었다고 처벌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백성들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땐 검은옷을 입으라는 칙령을 반포하기도 했고

1897년 광무개혁때는 아예 흰옷 입는것을 금지시키기까지 했죠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때는 어땠을까요?

 

핍박받던 일제강점기때도 한민족의 흰옷 사랑은 그대로 였습니다.

 

오히려 당시 흰옷은 민족의 정체성처럼 되어버렸고

이후 일제에 항거하는 상징으로써 더 흰옷을 입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조선총독부에서는 색깔옷을 입는걸 권장했지만 잘 되지 않았기에

이후에는 아예 정책적으로 흰옷 입는것을 금지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신문을 보면 색깔입는 옷을 입으라는 선전도 많았고

색깔있는 옷을 입게 하는 장려운동과

흰옷 폐지 운동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이후에는 흰옷입은 조선인들을 탄압하기도 하는데

일본 경찰들은 길을 돌아다니다가

흰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옷에 먹물을 끼얹어버리기도 했으며

흰옷 입은 사람은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관공서 출입도 하지 못했고 행정상 불이익을 주기도 하면서

흰옷 입는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죠

 

그리고 이때 흰옷을 선호하는

한민족의 풍습을 비하하고 왜곡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흰옷은

한민족의 얼이자 정체성으로 강조 되어버렸으며

일반 민중들의 더 강력한 반감만 불러 일으켰죠

 

그리고 독립을 맞이한 이후

서양식 복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흰옷에 집착하는 문화가 빠르게 사라져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한민족 조상들이 흰옷을 자주 입었던 이유는

바로 순우리말로 해(日)와 흰(白), 그리고 하양은 어원이 같다고해서

흰색은 빛과 태양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형의 크고 작음이 어디에 있고 색의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는 불교 사상과

'무위는 나를 찾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며, 비움은 곧 그득함'이라 하였던

도교 사상에서 한민족의 의복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죠

(무위(無爲) :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인위적 행위가 없음을 뜻)

 

도교에서는 흰색은 자연스러운것이고

색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흰옷을 입는 비율이 늘어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부터였는데요

 

당시 유교를 숭배하던 조선에서는 색을 욕망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색은 점잖지 못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여기기까지 했으며

반면에 흰색은 자연과 같은 색이라고 여겨지다보니

흰색을 선호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이후 불교와 도교, 유교까지 여러 종교사상들이 합쳐져서

인공적인것을 배제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다보니

흰색을 숭상하는 전통까지 만들어 진것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무조건 흰옷만 입었던 것은 아닌데요

 

한민족 모두가 흰옷 입는것을 선호했던 것일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경우도 있었으며

특히나 아이들은 색동저고리 같은 색있는 옷을 많이 입었었다고 하죠

 

또한 고구려의 벽화들을 봐도 흰색 뿐만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색깔의 옷을 입었던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계열의 복식 문화를 공유하는

백제와 신라, 가야도 마찬가지였으며

<고려도경>에도 고려 여성들이

노란색 옷을 많이 입었다는 기록도 있죠

 

1898년 정동에서 열린 서양인 선교사 부부의 결혼식에

어느 한 조선인이 초대되어 그곳에 갔을때

옷색깔 때문에 벌어진 일도 있는데요

 

신부복이 흰색인걸 본 조선인은 '흰옷은 상 중에나 입는것이고

신부는 반드시 색깔이 있는 밝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죠

 

그 모습을 본 한 서양인이 자신에 일기에 기록해 두었던 것인데

이를 보면 당시 조선인들이 흰색옷을 즐겨 입긴 했지만

결혼식이나 잔칫날 등 경사에는

여러가지 색이 있는 옷을 입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이나 TV 등 에서 외국인들이 나오는걸 보면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깔끔하고 깨끗하다는걸 알수 있는데요

 

과거부터 이어져 온 한민족의 그런 습성(?)이

흰옷을 숭상하고 선호하게 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진짜 완전 새하얀 옷을 입고 수백 수천명이 모여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솜뭉치 같았을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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